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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 설교

제목
창세기 강해(48) 에덴동산(1) [창 2:8-9]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0.10.15
창세기 강해 마흔 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먼저 여러분에게 잠시 행복한 상상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상상 속의 주인공이 되어 이제 말씀드리는 공간으로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예쁜 꽃들이 군데군데 수놓인 초원 위에 여러분은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이 초원 곳곳에는 싱그러운 빛깔의 잎이 풍성한 나무들도 있지요. 봄날의 햇볕 같은 따스한 빛이 온몸을 포근히 감싸 줍니다. 어디선가 산들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살짝살짝 흩날려 주고요.

시선을 위로 돌리자 맑고 푸른 하늘에 눈부시게 하얀 구름이 아름다운 꽃 모양들을 이루며 둥실둥실 떠 있습니다. 구름들은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며 아름다운 장면들을 연출합니다. 그런데 다시 시선을 아래쪽으로 향하니 구름이 하늘이 아닌 땅에서도 흘러갑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진짜 구름이 아니라 커다란 호수에 반사되어 보이는 구름입니다. 호수가 얼마나 맑고 깨끗한지 하늘이 마치 호수 속에 담긴 것 같습니다. 호수의 물결이 잔잔하게 일렁일 때마다 아름다운 오색찬란한 빛들이 반짝반짝 춤을 추는 듯합니다.

아름다움에 취하여 눈을 지그시 감아 봅니다. 그러자 바람에 실려 온 달콤한 꽃향기가 코끝을 맴돌아 충만함을 더합니다. 어디선가 맑고 고운 새소리가 들려옵니다. 때론 한 마리가 청아한 소리로 노래하며, 때론 여러 마리가 하모니를 이루며 노래합니다.

이곳은 어떠한 근심이나 걱정도 없습니다. 항상 마음이 평안하며 늘 잔잔한 행복감에 젖어 있지요. 더구나 여러분 곁에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며 무슨 말을 해도 오해가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여럿이 함께 있어도 힘들지 않은 곳! 참 평안이 가득한 곳입니다.

이런 곳을 상상만 해도 마음에 평안이 임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은 바로 둘째 하늘에 있는 에덴동산의 일부를 묘사한 것입니다.

본문 8절을 보시면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셨다” 했습니다. 여기서 ‘그 지으신 사람’이란 창세기 2장 7절에 나오는 첫 사람 아담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생령의 존재로 창조된 아담을 위해 둘째 하늘에 에덴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이 에덴동산이 있는 쪽을 ‘동방’이라고 했지요. 이는 둘째 하늘 안에서 ‘동쪽’에 에덴동산이 있다는 의미일까요? 동방의 반대편에는 어떤 공간이 있을까요?

바로 루시퍼와 어둠의 영들이 머무는 영역이 있지요. 둘째 하늘의 공간은 이처럼 크게 두 영역으로 구분됩니다. 그렇다면 어둠의 영역은 둘째 하늘의 서방(西方)에 있을까요? 그런 것은 아니지요. 동방은 방향을 나타내는 표현이 아닙니다.

그러면 오른쪽 또는 왼쪽이라 하지 않고 왜 굳이 ‘동방’이라고 표현하셨을까요? ‘동방’이라는 말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동방’은 ‘빛으로 둘린 공간’을 의미합니다. 지구에서 해 뜨는 쪽은 동방이지요. 동방은 이처럼 빛이 시작되는 곳이며 빛으로 둘린 공간입니다. 따라서 에덴동산이 동방에 있다는 것은 둘째 하늘의 빛의 영역에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루시퍼와 악한 영들이 머무는 공간은 어둠의 영역에 있지요. 에덴동산은 빛으로 둘린 공간에 있음을 ‘동방’에 있다고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둘째 하늘의 빛으로 둘린 공간에 에덴동산을 창설하셨다는 뜻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님들에게 에덴동산을 보여 주실 때에 해 주변의 공간을 열어 주시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성도님들 중에는 해 속이나 해 주변의 열린 공간을 통해 에덴동산을 보신 분들이 많지요. 그렇다하여 에덴동산이 해가 있는 그 위치나 해 주변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하늘 어디에서나 영의 공간을 열어서 우리에게 에덴동산을 보여 주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늘 해를 중심으로 보여 주시는 것은 이유가 있지요. 바로 빛이 해로부터 나오듯이 에덴동산은 빛으로 둘린 영역에 있음을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해를 중심으로 영의 공간이 열린다는 것을 알면 여러분이 에덴동산을 보고 싶을 때에 ‘어느 쪽일까?’ 하고 애써 찾지 않아도 됩니다. 해와 해 주변을 보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살게 될 곳의 이름을 ‘에덴동산’이라 하셨지요.

태양계의 행성들도 특징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예를 들어 태양에 두 번째로 가까운 행성을 한자로는 금성(金星)이라 부르며 순우리말로는 샛별이라고도 부르지요. 그런데 영어로는 ‘비너스’라 부릅니다. 비너스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미(美)의 여신의 이름이지요.

금성이 새벽녘 동쪽 하늘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행성들의 특징에 따라 이름과 애칭을 붙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둘째 하늘의 빛의 영역에 붙여 주신 ‘에덴’이라는 이름에는 무슨 뜻이 담겨 있을까요? ‘에덴’의 의미는 ‘죽음이 없고 평화로운 곳’입니다. 에덴은 빛의 세계이기에 죄가 없으므로 죽음도 없지요.

또한 악이 없기에 다툼이나 분쟁도 없으며 평화만 가득합니다. 이러한 에덴 안에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살도록 준비된 곳이 바로 에덴동산이지요. 그런데 이곳을 ‘동산’이라 표현했다 해서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동산의 개념으로 좁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마을 부근에 있는 작은 산 또는 언덕, 정원이나 숲 등을 동산이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한편 ‘꿈의 동산’, ‘어린이 동산’과 같은 표현도 있습니다. 여기서 ‘동산’은 ‘행복하고 평화로운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지요. 아담을 위해 에덴에 창설하신 곳을 에덴동산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 둘째 의미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에덴동산의 크기는 지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지요. 에덴동산 사람들은 죽지 않고 계속 번성합니다. 그러므로 첫 사람 아담 이후 지금까지 그 인구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만일 에덴동산이 지구에 있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인구가 지구를 벌써 채웠을 것입니다.

따라서 에덴동산은 지구에 있을 수 없지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매우 넓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에덴동산의 자연은 순전히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운행이 됩니다.

지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칙에 의해 해와 달과 별들 사이의 인력으로 운행되지요. 그로 인해 지구에 사시와 징조가 나타납니다. 둘째 하늘에도 별이 많이 있지만 에덴동산은 별들 간의 인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붙들려 있습니다.

에덴동산의 환경을 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에덴동산에는 낮과 밤의 구분이 없습니다. 천국처럼 항상 밝은 낮이지요. 또한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기에 가장 알맞은 조건으로 온도, 습도 등이 항상 유지되지요.

그래서 기후가 급격하게 바뀌는 일이 없습니다. 다만 기온이 약간씩 바뀔 때는 있지요. 밤과 낮의 구분이 없는 대신 기온의 변화를 통해 쉴 시간과 활동할 시간을 분간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8절에 보면 에덴동산에서 ‘날이 서늘할 때’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사전에서는 ‘서늘함’을 ‘물체의 온도나 기온이 꽤 찬 느낌이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날이 서늘해지면 기온이 내려가서 얇은 옷이라도 하나 더 입어야 하지요.

물론 에덴동산의 서늘한 상태는 이 땅과는 다릅니다. 낮보다는 기온이 낮긴 하지만 포근한 바람이 불면서 쾌적함을 느낄 수 있는 상태입니다. 에덴동산 사람들은 이렇게 날이 서늘해지면 쉴 시간이 되었음을 압니다.

지구에서는 해가 지면 밤이 올 것을 알고 집에 돌아가 쉴 시간이 되었음을 알지요. 이처럼 에덴동산의 사람들은 날이 서늘해지는 기온의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은 항상 낮과 같이 밝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쉴까요? 에덴동산에는 개인이나 가족단위의 집은 없습니다. 다만 아름다운 장막들이 군데군데 있어서 쉴 때는 그곳으로 들어갑니다. 에덴동산 사람들은 옷을 입지 않고 발가벗은 채로 생활합니다. 그들은 악이 전혀 없기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체의 이성을 보아도 간음하지 않고요.

이 땅에서도 어린 자녀가 발가벗은 채로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아이가 태어난 지 백일 또는 1년이 되어 기념사진을 찍을 때에 발가벗겨 놓고 찍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걸 부끄러워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사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에덴동산은 악이 전혀 없는 곳이므로 모두가 발가벗은 채로 지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것이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천국도 악이 전혀 없는 곳인데 왜 천국에서는 옷을 입을까요?

다음 시간에 이어서 증거하겠습니다.

2010-10-18 오후 10:30:35 Posted
2010-11-23 오전 9:20:02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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