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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제목
창세기 강해(49)  [창 2:8-10]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0.10.22
창세기 강해 마흔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에덴동산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성도님들은 에덴과 에덴동산의 차이를 잘 이해하셨습니까?

이해하기 쉽게 서울과 서울대공원을 비유 들어 보겠습니다. 서울과 서울대공원은 엄연히 다르지요? 서울대공원은 공원들 중 하나로 ‘서울’이라는 이름을 가졌을 뿐입니다. 서울과 서울대공원은 면적이 다르고 용도도 다르지요.

이처럼 에덴과 에덴동산도 확연히 다릅니다. 에덴동산은 둘째 하늘의 에덴 안에 있는 특별한 공간이지요.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조성해 주신 곳입니다.

둘째 하늘의 에덴 안에는 에덴동산 외에도 특별한 공간이 더 있지요. 예를 들어 장차 성도들이 주님과 7년 혼인 잔치를 하는 공간도 ‘에덴동산’이 아닌 ‘에덴’에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에덴동산의 환경을 몇 가지 말씀드렸습니다.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고, 밤이 없다 했고, 기온의 변화로 시간의 흐름을 안다 했지요. 개인적으로나 가족 단위의 집이 없고 아름다운 장막에서 쉰다 했고요. 그리고 대부분이 발가벗은 채 생활해도 악이 없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 했습니다.

천국도 악이 전혀 없는 곳인데 왜 천국에서는 옷을 입을까요? 천국은 이 땅에서 인간 경작을 받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옷을 입지 않는다 해서 죄를 지을 리는 없지만 이 땅에서 옷을 입고 지냈던 사람들이므로 천국에서도 옷을 입는 것이 자연스럽지요. 또한 천국에서는 옷이 그 사람의 상급과 영광을 나타내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도 간혹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머리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에덴동산은 매우 넓고 인구도 무척 많기에 나름대로 조직이 있고 질서가 세워져 있습니다,

일정한 단위로 그룹이 나뉘고 각 그룹마다 머리가 있지요. 그룹에 소속된 사람들은 머리의 지시에 따라 순종하며 조화롭게 살아갑니다. 이처럼 머리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도록 옷을 입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옷은 머리 된 사람이라는 지위를 나타내는 구별 수단일 뿐이지요.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 몸을 치장하기 위해서 입는 것이 아닙니다.

에덴동산의 자연환경은 지구와 거의 비슷합니다. 온갖 꽃과 나무들이 있고 각종 동물이 있지요. 새, 짐승, 곤충, 물고기를 비롯한 각종 동물들이 있습니다. 6일 창조 동안 지구에 창조된 동식물들이 에덴동산에도 모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같은 종류라 해도 지구에 있는 것과 에덴동산에 있는 것의 빛깔은 매우 다릅니다.

비둘기를 예로 들면 지구에도 에덴동산에도 흰 비둘기가 있지요. 그런데 같은 흰색이라 해도 그 빛깔이 확연히 다릅니다. 에덴동산의 흰 비둘기는 눈부시게 밝고 맑은 흰빛이지요. 지구에 있는 흰 비둘기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 빛깔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한 가지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동일한 꽃을 동일한 조건에서 일반 카메라와 HD(고화질)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합시다. 이때 어떤 카메라로 촬영한 꽃이 더 예뻐 보일까요? 고화질 카메라로 촬영한 꽃이지요.

이처럼 에덴동산 동식물들의 빛깔이 지구의 것들보다 훨씬 곱고 아름답습니다. 에덴동산은 악이 없는 영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오염될 일도 변질될 일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처음 창설했을 때나 지금이나 동일하지요. 처음 그대로 깨끗하고 맑고 아름다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지구처럼 높은 산은 없습니다. 완만한 언덕들이 군데군데 있어서 지형의 기복을 만들지요. 지구에는 높은 산이 있어서 멋진 경치를 만드는데 에덴동산엔 산이 없으니 경치가 밋밋할까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에덴동산에서는 구름이 멋진 경치를 만들어 줍니다. 다양한 모양으로 시시각각 변하며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지요.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구름을 위에서 내려다 본 적이 있으신지요? 구름이 바다를 이루고, 산을 이루며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기도 하지요.

에덴동산에는 이 땅의 구름보다 훨씬 빛나고 예쁜 구름들이 멋진 경관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환경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차 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본문 9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에덴동산에도 지구처럼 수많은 식물들이 있지요. 그중에는 열매 맺는 과일나무들도 많습니다.

본문 전반절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다”는 말씀과 같지요. 에덴동산 사람들은 이러한 과일들을 먹고 삽니다. 그런데 수많은 과일나무 중에서 조금 특별한 두 나무가 에덴동산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지요.

에덴동산의 중앙인 이곳은 다른 곳보다 지형이 더 높아서 두 나무는 눈에 잘 띕니다. 서울에 있는 남산타워도 눈에 잘 띄지요. 또 남산타워 전망대에 올라가면 서울 전역이 보입니다. 날씨가 좋을 때는 인천 앞바다까지 보인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중앙에 두 나무를 두셨습니다. 이 두 나무는 잎사귀가 매우 풍성하며 열매도 많이 맺혀 있습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들은 모두 맛으로나 향으로나 빛깔로나 이 땅에 있는 것들보다 훨씬 좋지요.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이 두 나무의 열매는 그 가운데서도 월등히 뛰어납니다. 눈으로 보기에도 확연히 차이가 나지요. 두 나무의 열매는 두 손으로 안아야 할 만큼 상당히 큽니다.

이와 비슷한 크기의 이 땅 과일로 ‘메론’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 메론 크기 : 지름이 보통 20~25센티) 생명나무의 열매 곧 생명과일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인 선악과는 모양이나 빛깔이 분명히 다릅니다.

먼저 선악과는 이 땅의 과일 중에서 복숭아와 비슷한 모양이며 분홍빛입니다. 그리고 생명과일은 사과와 비슷한 모양에 홍조를 띱니다. 아주 빨갛지 않으면서 약간의 홍조를 띤 아름다운 빛깔이지요.

그런데 생명과일은 에덴동산뿐만 아니라 천국에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7절 후반절에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2장 2절에서는 새 예루살렘의 생명수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생명나무의 종류는 여러 가지임을 알 수 있지요.

새 예루살렘에는 열 두 종류가 있고요. 새 예루살렘의 생명나무에서는 열두 가지 생명과일 열매가 끊임없이 맺힙니다. 이런 여러 생명과일 중에서 에덴동산에 있는 것은 모양과 빛깔이 홍조를 띤 사과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와 생명과일의 모양과 빛깔이 확연히 다르게 만드셨기에 두 가지가 절대 헷갈리지 않습니다. 어느 것이 생명과일인지 어느 것이 선악과인지 분명히 알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열매 중에서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결국 선악과를 먹고 말았지요. 두 과일은 모양도 빛깔도 다르기에 “선악과가 생명과일인 줄 알고 실수로 먹었습니다”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삶 속에서 항상 선과 악을 만날 수 있고, 영과 육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때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지, 무엇이 영이고 무엇이 육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지요.

악이 선인 줄 알고 악을 택하거나 육이 영인 줄 알고 육을 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 우리 예수님께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은 모든 선택의 기로에서 선한 편에만 서시고 오직 영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또한 여러분이 영을 취할 때마다 기뻐하시며 신령한 은혜와 능력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천상의 과일들은 그 향취와 맛이 신선하면서도 그윽합니다.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에서 살살 녹는 듯하지요. 이 땅의 어떤 과일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과 향을 갖고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천국에 대한 계시를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제게 천국 과일의 맛을 느끼게 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그 과일 맛과 향에 휩싸여서 온몸이 생기로 충만해졌지요.

성도님들도 장차 천국에 가시면 이 생명과일을 마음껏 드실 수가 있습니다. 천국에 있는 생명과일은 에덴동산의 것보다 맛과 향이 훨씬 진합니다. 물론 천국에서도 낙원보다는 새 예루살렘의 생명과일이 훨씬 더 맛있고요.

더구나 새 예루살렘에는 생명과일만도 그 종류가 열두 가지나 있다 했지요. 그러므로 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그 맛과 향을 직접 확인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본문 10절로 들어가겠습니다.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이어지는 11절부터 네 강의 이름과 강이 흐르는 지역이 나오지요. 이 네 강의 발원지는 ‘에덴’이라 했습니다. 에덴동산이 아니지요. 에덴에서 발원한 강이 에덴동산으로 흘렀습니다.

그러면 이 강의 발원지에 있는 물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6일 창조 역사 중 둘째 날 지구를 덮고 있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생겼지요. 물은 궁창을 기준으로 궁창 아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었습니다.

궁창 아래 물은 창조 셋째 날에 지구의 바다를 이룹니다. 그리고 궁창 위의 물은 둘째 하늘로 옮겨졌다 했지요. 바로 이때에 둘째 하늘로 옮겨진 물이 에덴의 강을 이루는 근원이 되었습니다.

에덴에서 발원한 강은 에덴동산을 두루 돌아 흐릅니다. 천국 생명수강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와 천국을 두루 돌듯이 에덴동산에도 두루 돌며 흐르는 강이 생긴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자연환경은 지구와 매우 비슷하여 물이 꼭 필요합니다. 에덴동산의 동식물은 이 물로 인해 충만함을 입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요.

에덴동산에서 살게 될 아담과 그의 후손들에게도 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생령의 존재이긴 하지만 흙으로 지어진 몸을 가졌지요. 몸에는 피가 순환합니다. 이것은 그 몸에 물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에덴동산에도 물이 필요하기에 하나님께서는 궁창 위의 물을 둘째 하늘로 옮기셨고 에덴의 강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10절 후반절에 보면 강이 또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다” 했지요. 여기서 ‘거기’는 에덴의 강 발원지입니다. 둘째 하늘에 있는 물의 근원지이지요.

이 둘째 하늘로 옮겨진 궁창 위의 물은 에덴동산 강의 근원지도 되며 ‘네 강’의 근원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네 강은 에덴동산이 아닌 지구에 있습니다. 둘째 하늘에 옮겨졌던 물이 다시 지구의 네 곳으로 쏟아져서 큰 강을 만들었지요.

6일 창조 역사 중 넷째 날 이후 지구에 기상현상이 나타났고 육지에 비가 내렸다 했습니다. 그 전에는 지구에 바닷물만 있었고 육지에는 물이 없었지요. 비가 내린 후에야 육지에도 물의 흐름이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이때는 많은 물이 흐르는 강은 아직 생기지는 않았다 했지요. 일반적으로 계곡의 가느다란 물줄기들이 여러 개 모여서 시내를 이루고 또 여러 시내가 모여 강을 이룹니다.

그런데 인류 문명의 발상에 영향을 준 큰 네 강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둘째 하늘에 있는 물을 지구의 네 곳에 쏟아 부으심으로 만드셨지요. 집중호우가 내릴 때에 보면 마치 하늘에서 물을 들이 붓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구에 네 강을 만드실 때에 둘째 하늘의 창을 열어 에덴의 강의 근원된 물이 네 지역으로 쏟아지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또 한 번 성경에 나오지요. 바로 노아 홍수 때에도 하늘의 창들이 열려서 둘째 하늘의 물이 지구에 쏟아졌습니다. 그때는 지구의 전역에 하늘이 열려 40일간 비가 내렸지요.
그 결과 지구의 가장 높은 산까지 물속에 완전히 잠기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7장에서 다시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처럼 지구에 굳이 네 개의 강을 친히 만드셨을까요? 이는 ‘4’라는 숫자가 지닌 영적인 의미와 연관이 있습니다. 4는 먼저 ‘고난’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한 햇수가 약 400년이고, 출애굽 후 광야 생활한 햇수는 40년이었지요. 우리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도 40일 금식 기도를 하셨습니다.

다음으로 4는 사람의 수이자 땅의 수입니다. 그래서 땅의 온 지면을 나타낼 때에 동서남북으로 사방을 표현하지요. 하나님께서 강을 세 개만 만드실 수 있고, 일곱 개를 만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4가 땅의 수요, 사람의 수이기에 네 개를 만드신 것입니다.

아담이 이 땅으로 쫓겨나면서 인간 경작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이 네 강을 중심으로 번성하지요. 이 네 강 유역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인류문명의 발상지와도 겹칩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요. 사람이 마시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꼭 필요합니다. 농사를 짓는 데도 필수적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강 주변에 모여들었고 촌이 형성됐으며 점점 그 규모가 커졌습니다.

이처럼 강은 인류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요. 하나님께서 이러한 강 넷을 친히 만드심으로 인간 경작을 위한 조건이 이제 모두 갖춰졌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강들은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셨을 때의 모습에서 많이 변형되었습니다. 수많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지형이 변하면서 강의 위치도 달라졌지요. 현존하는 강의 이름과 같다하여 강의 위치와 모습도 지금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고려하지 않고 성경을 문자적 그대로 해석하여 현재 지구에서 그 강을 찾고자 한다면 자칫 오류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네 강을 만드신 때는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래 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아담을 지으시고 에덴동산에 이끌어 들이신 후 지구에 이 네 강을 만드셨습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자손을 낳으며 셀 수 없이 오랜 세월을 지냈지요. 따라서 이 네 강의 역사도 무척 오래됐음을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시간부터 네 강의 이름에 담긴 영적인 의미와 대략적인 위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에덴동산의 환경과 동산 중앙의 두 과일 그리고 에덴에서 발원한 강을 말씀드렸습니다. 에덴에서 발원한 강은 에덴동산을 두루 적시고 흐르며 그곳의 동식물에게 생명과 충만함을 줍니다. 또한 에덴의 강 발원지의 물은 지구의 네 곳에도 쏟아져서 큰 강을 만들었다 했지요.

강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물을 공급해 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 유역에 모여들었고 문명을 발달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사람에게 필수적인 물을 얻을 수 있는 강을 친히 지구의 네 곳에 만들어 주셨지요.

사람은 육으로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영으로도 물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물인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어야 참으로 복된 사람이 될 수가 있지요.

시편 1편 3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이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받는 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거둠의 해 2010년 이제 육적으로도 추수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성도님들의 삶에는 어떤 과실이 맺혔으며 삶이 얼마나 윤택해졌는지요? 범사에 얼마나 형통한 복을 받고 있습니까?

몸과 마음이 늘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한 분들은 분명 많은 열매를 맺으며 범사가 형통할 것입니다. 이제 후로 더 많은 성도님들이 복 있는 사람이 되어 아름답고 온전한 열매로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10-25 오후 10:22:54 Posted
2011-04-18 오전 9:01:29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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