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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제목
창세기 강해(50) 네 강의 이름에 담긴 영적인 의미와 대략적인 위치 [창 2:11-14]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0.11.05
창세기 강해 쉰 번째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구에 큰 강 넷을 친히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네 강을 이룬 물은 둘째 하늘 에덴에서 쏟아졌지요. 하나님께서 둘째 하늘의 창을 열어 이 땅의 네 곳에 물을 쏟아 부으심으로 큰 강 넷을 만드셨습니다. 6일 창조 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구 곳곳에도 자연히 강들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이 네 강을 굳이 직접 만드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네 강은 인류 문명의 발상지로서 인간 경작의 주요 무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네 강의 이름에 담긴 영적인 의미와 대략적인 위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을 해석한 주석이나 다른 책들을 보면 강의 이름과 지명을 구약 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를 근거로 해석합니다. 물론 원어의 의미를 참고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강들에 부여하신 영적인 의미를 알아야 그 의미를 온전히 안다 할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이나 이 네 강의 근원을 지구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러나 에덴동산과 네 강의 근원지는 지구가 아닌 둘째 하늘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연구를 하고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서 찾는다 해도 지구에서는 찾을 수가 없지요. 영의 세계는 육의 세계와 차원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첫째 강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1~12절에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했습니다.

첫째 강의 이름 ‘비손’의 문자적인 의미는 ‘풍족하게 흐른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비손 강에 “대륙과 대륙을 연결한다. 대륙 간의 길을 터놓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풀어 주셨습니다.

비손 강의 위치를 알게 되면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비손 강은 하윌라 온 땅에 둘렸다 했지요. 이 하윌라는 오늘날의 인도 부근입니다. 인도는 4대 문명 발상지 중의 하나인 인더스 강 유역에 있지요.

지도를 보시면, 인더스 강 유역은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 지점에 있습니다. 옛날 동서통상로였던 실크로드도 이 지역에 걸쳐 있지요. 하나님께서 만드신 비손 강이 오늘날의 인더스 강과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 처음 모양이 많이 변형되었지요.

그런데 대략적인 위치는 인더스 강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위치를 확인해 보니 비손 강이 왜 대륙과 대륙을 연결하며, 대륙 간의 길을 터놓는다 했는지 아시겠지요? 비손 강이 둘러싼 하윌라 땅에는 정금과 베델리엄과 호마노가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베델리엄’은, 다른 버전의 성경에는 ‘값진 향료인 브돌라’라고 나옵니다. 또한 유대의 역사학자 요세푸스도 베델리엄은 인도, 아라비아, 바벨론 등의 특산물로 값비싼 향료라고 했습니다. 호마노는 보석의 일종이지요. 하윌라는 이처럼 정금과 보석과 귀한 향료가 산출되는 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하윌라 땅에서 이처럼 정금과 베델리엄과 호마노가 남을 굳이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을까요? 이는 그곳이 장차 우상숭배의 온상(溫床)이 됨을 예시하신 것입니다. 온상이란, 어떤 현상이나 사상, 세력이 자라나는 바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지요.

하윌라 땅은 우상숭배의 온상입니다. 그것을 증명하듯, 인도에서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시크교가 발생했습니다. 이 종교들은 금과 보석으로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서 향을 피우지요.

어떤 자료에서는 인도신화에 나오는 신의 수가 3억 3천만 개나 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상도 가지각색이며 우상을 섬기는 의식을 늘 행하고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비손 강이 흐르는 하윌라 땅이 우상숭배의 온상이 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본문 11절에 비손 강이 “하윌라 온 땅에 둘렸다” 말씀한 것처럼, 비손 강은 당시에 상당히 넓은 지역을 흐르는 매우 큰 강이었습니다. 따라서 우상을 섬기는 문화도 넓은 지역에 걸쳐서 발달했음을 알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하윌라 땅에 우상숭배가 만연하게 될 것을 아시면서 왜 그곳에 큰 강을 만들어 주셨을까요? 그곳에 강을 두지 않으셨다면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 살지 않았을 테고, 우상숭배의 온상도 안 됐을 텐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온전한 공의 가운데 이루길 원하셨지요. 시편 96편 4~5절에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시며, 찬양과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루시퍼와 악한 영들도 사람들에게 경배받기를 원하지요. 사람들을 사주하여, 하나님 외에도 여러 신이 있는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러한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단에게 속아서 그 신들을 섬겨왔습니다. 이는 결국 루시퍼와 악한 영들을 섬기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헛된 신들과 우상이 생겨남을 미연에 방지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버려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 헛된 신이 많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이 진실로 참 신은 하나님 한 분임을 깨닫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 의지 가운데 스스로 하나님을 찾고 만나기를 바라셨지요.

만일 거짓 신들이 아예 생겨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인생들이 하나님을 섬긴다 해도 그것은 스스로 자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 계시다면 거짓 신과 참 신을 구분할 필요 없이 무조건 하나님만 섬기면 됩니다.

이렇게 됐다면, 루시퍼는 공평하지 못하다고 하나님께 송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루시퍼와 동등한 조건이 아닌 더 나은 조건을 갖추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공의에 맞지 않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거짓 신이 생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짐을 미연에 막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많은 신들이 생겨나도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이 참 신, 하나님을 찾고 섬기길 원하셨지요.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시작하신 목적도 이렇게 하나님을 스스로 찾고 믿는 자녀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참 신이심을 깨달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짓 신을 섬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가운데에도 이방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가 만연하곤 했지요.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이 참 신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헛된 신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간곡히 호소하셨습니다. 때로는 자녀를 빼앗긴 아비의 심정으로, 때로는 아내를 잃은 남편의 심정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지요.

이사야 1장 2~3절에 보면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습니다.

호세아 2장 19~20절에는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말씀하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한편, 놀라운 권능의 역사를 나타내심으로 하나님이 참 신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우상숭배가 가장 심했던 아합 왕 때에는 누가 참 신인지를 보이는 대결이 있었지요. 엘리야 선지자 혼자서 이방 신의 제사장 850인을 상대했습니다. 누가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제물을 태울 수 있는지를 겨루었지요.

850인이 섬긴 바알, 아세라는 거짓 신이기에 불을 내리지 못했지만, 엘리야가 섬기는 하나님은 참 신이시기에 불을 내려 주셨습니다. 열왕기상 18장 39절에 이 광경을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고 고백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세우신 선지자들을 통해 이처럼 하나님이 참 신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이 듣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께서도 외면하셨습니다. 그 결과, 전쟁과 기근과 질병 등의 시험 환난이 임했지요.

환난 가운데 받는 고통이 심해지면 다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을 싸매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하나님이 창조주요, 참 신임을 나타내십니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지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권능도 오직 하나님께만 속합니다.

시편 62편 11절에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루시퍼에게는 죄를 짓게 하는 능력은 있으나 창조의 권능은 없습니다. 죄인들에게 시험 환난을 줄 수는 있으나 인간에게 생명과 행복을 줄 수는 없지요.

그러므로 마음이 선한 사람, 진실한 사람은 세상에 많은 신들이 있다 해도 참 신이신 하나님을 찾고 섬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사람들을 자녀로 삼으시고, 영생과 천국을 주시지요.

본문 13절에 둘째 강의 이름과 대략적인 위치가 나옵니다.
바로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했습니다. ‘기혼’의 문자적인 의미는 ‘차고 넘치도록 흐른다.’입니다. 영적인 의미는 ‘뽐내다. 견줄 만하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 강에 이런 의미를 담아 주셨을까요? 기혼 강 유역에서 발생한 문명이 뽐낼 만큼 뛰어날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혼 강은 구스 온 땅에 둘렸다 했습니다. 첫째 강인 비손처럼 굉장히 넓은 지역에 걸쳐 흘렀던 것입니다.

구스는 어디일까요? 구스는 오늘날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 해당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구스는 그보다 광범위합니다. 아프리카에서 나일 강과 홍해 사이에 있는 지역을 모두 구스 땅으로 잡습니다. 오늘날 이 지역에는 나일 강이 흐르고 있지요.

나일 강은 몇 개의 원류(源流)가 합류한 것입니다. 먼저는 수단에서 흘러나온 백나일과 에티오피아에서 흘러오는 청나일이 합류하지요. 그리고 다시 에티오피아에서 흘러오는 또 다른 지류인 아트바라 강이 합류합니다.

나일 강이 이집트 영내로 들어가면 더 이상 합류하는 지류가 없고, 북쪽으로 흐르다가 지중해로 빠집니다. 구스 땅에서 발원한 강이 나일 강을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구스 땅에서 발원한 강이 바로 성경에 나온 기혼 강에 해당하지요. 물론 현재 강의 모양은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셨을 때의 모양에서 많이 변형된 모습입니다.

큰 강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곳에는 강물을 타고 내려온 퇴적물이 쌓여 삼각주라는 지형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삼각주는 매우 기름진 땅으로써 다양한 동식물이 깃들어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에게도 매우 유익한 땅이지요.

먼저는 농사를 짓기가 좋습니다. 또한 민물이 풍족하면서도 바다와도 접해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이점으로 인해 삼각주에서 도시와 문명이 시작된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나일 삼각주가 바로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사실입니다.

이 나일 삼각주 유역에는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가 있으며,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도 있지요. 또한 이 지역에서 발생한 고대 이집트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입니다. BC 3200년경에 시작되어 약 3천 년간 번성했습니다.

이 고대 이집트 문명은 세계 다른 어떤 지역보다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지요. 그래서 이집트에 가면 뛰어난 문화 유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들 수 있지요. 기자 지구에 있는 쿠푸 왕 피라미드는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건축물입니다.

이집트에는 이 외에도 80기 이상의 피라미드가 있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박물관인 이집트 박물관에는 12만점 이상의 유물이 전시돼 있지요. 주로 고대 이집트 왕조의 유물인데,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려면 며칠이 걸린다고 합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황금 가면으로 유명한 투탕카멘의 유물입니다.

이처럼 기혼 강 유역에서 싹튼 문명은 후세에 뽐낼 만한 유물과 유적을 남겼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될 것을 아시고 ‘뽐내다. 견줄 만하다’는 의미의 ‘기혼’이란 이름을 이 강에 붙여 주셨습니다.

이곳에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등 불가사의한 건축물이 세워지고, 문명이 뛰어나게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지요. 이 지역이 에덴동산에 살던 아담과 연관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차후에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셋째 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4절 전반절에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했습니다.

셋째 강의 이름인 힛데겔은 티그리스 강의 히브리어 명칭입니다. 힛데겔의 문자적인 의미는 “화살처럼 빠르게 흐른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강에, 영적으로 ‘척박하다, 방해하다’는 뜻이 있다 하셨습니다.

왜 이런 의미를 갖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이 강 유역에서 발생한 나라들과 이스라엘과의 관계성 때문입니다. 힛데겔은 앗수르 동편으로 흐른다 했지요. 티그리스 강은 오늘날 터키에서 발원하여 이라크를 거쳐 흐르다가 페르시아 만으로 빠지는 강입니다.

이 티그리스 강 상류를 중심으로 BC 3천 년경에 이미 번성했던 고대 국가가 있었는데, 바로 앗수르입니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 지역을 앗수르가 차지하고 있었지요. 앗수르에 있는 도시 이름도 앗수르인데, 지도를 보시면 앗수르 바로 오른편에 티그리스 강이 있지요.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번성했던 앗수르는 BC 721년에 북 이스라엘을 점령했습니다. 그런데 BC 625년에 이 땅의 주인이 바뀌지요. 바벨론이 이 땅을 차지한 것입니다. 바벨론은 점차 세력을 넓히다가BC 586년에는 남 유다까지 점령했습니다.

바벨론이 남 유다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유다의 귀족들을 포로로 3차에 걸쳐 바벨론으로 끌고 갔지요. 그때 포로로 끌려간 사람 중에 다니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서에 “힛데겔 강”이 등장합니다.

다니엘서 10장 4절에 “정월 이십사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가에 있었다.”고 했지요. 그런데 이때는 이 땅의 주인이 바벨론에서 바사로 또 바뀐 상황입니다. BC 539년 바벨론은 바사에게 멸망당했지요.

이에 이스라엘 영토도 약 BC 330년경까지 바사의 지배를 받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힛데겔 강 유역을 차지한 나라들은 이스라엘 땅을 정복하고 지배했지요. 그 결과 이스라엘 땅은 황폐해지고 척박한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티그리스 강이 있는 나라는 여전히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습니다. 바로 지금은 이 지역에 이라크가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힛데겔 강 유역을 차지하는 나라들이 이스라엘과 어떤 관계가 될지를 아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처음 힛데겔 강을 만드셨을 때와 현재 티그리스 강의 모양은 차이가 납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 볼 때에 티그리스 강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다른 지역에 있지는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네 강 중 셋을 살펴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둘째 하늘 에덴의 물이 이 땅에 쏟아져서 네 강이 형성된 것을 모릅니다. 성경학자들도 성경을 문자적으로 풀어서 에덴동산이 네 강 유역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지요.

영의 세계를 알지 못하면 이렇게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성경을 풀어 주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다음 시간에는 넷째 강을 마저 살펴본 다음, 다시 에덴동산으로 돌아갑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매우 오래 살았지요. 그 긴 세월동안에 있었던 많은 일들 중 이 땅의 일들과 관련된 몇 가지 사건을 말씀드릴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공룡과 피라미드에 관한 비밀이 그 두꺼운 베일을 벗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풀어 주시는 영계의 일들은 신기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우리에게 교훈되는 내용도 있지요. 성도님들은 지식적으로 잘 정립하시고 영적으로도 잘 양식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영적인 소양을 갖춘 참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11-08 오후 10:24:34 Posted
2010-11-23 오전 9:20:3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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