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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제목
창세기 강해(53) 공룡(1) [창 2:15]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0.11.26
창세기 강해 쉰세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에덴동산에서 아담 곁에 있었던 두 존재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바로 그룹과 공룡이지요. 그룹은 원래 셋째 하늘에 속한 영물(靈物)이며 공룡은 둘째 하늘에 속한 존재입니다.

공간을 기준으로 분류한 차원의 개념에서 보면, 그룹은 3차원에, 공룡은 2차원에 속하지요. 둘이 아담을 돕는 분야도 달랐습니다. 그룹은 아담을 호위하고 에덴동산을 지켰지요.

에덴동산에 있는 그룹 중 머리급들은 아담을 호위하며 어디를 가든지 동행했습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의 경계를 담당하는 그룹들과도 긴밀히 교통했습니다. 에덴동산을 지키는 일은 아담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명이었지요.

반면 공룡은 아담에게, 쉽게 말해 애완동물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저 때때로 함께 놀며 즐거움을 얻는 대상이었지요. 이처럼 아담을 돕는 면에서도 그룹은 공룡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물론 에덴동산에 공룡이 많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우두머리격인 공룡이 이처럼 아담과 절친한 관계였지요. 앞으로 계속 등장하는 공룡도 이처럼 아담 가까이에 있었던 바로 그 공룡임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담이 지구를 왕래할 때에 그룹은 동행했지만 공룡은 함께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룹은 영물이기에 자유자재로 지구를 왕래할 수 있지요. 반면 공룡은 에덴동산의 흙으로 만들어졌기에 만일 지구에 오려 한다면 아담처럼 비행체를 타야합니다.

그러나 공룡이 굳이 아담과 함께 지구를 왕래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공룡이 관여할 분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룡은 아담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아담과 늘 동행하는 그룹을 부러워했습니다.

공룡이 사람처럼 인성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아담과 함께하면서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지요. 공룡은 아담이 함께해 줄 때는 좋았지만 그룹과만 동행할 때는 좋지가 않았습니다.

그룹에 대한 공룡의 부러움은 세월이 갈수록 점점 커졌지요. 사람이 키우는 애완동물도 서로 시기, 질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한집에 여러 마리가 있다면 주인의 관심과 사랑을 더 받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지요.

공룡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해 에덴동산에 특별히 창조하신 동물입니다. 지구의 동물보다 머리가 훨씬 좋았으며 아담과 교감하는 능력도 뛰어났지요. 따라서 아담에게 더 사랑받고 싶어 하고, 그룹을 부러워했던 것입니다.

공룡 안에 생겨난 부러움은 점차 쌓여서, 도가 넘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공룡은 에덴동산의 흙으로 창조됐기에 원래 악한 성분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러움이 계속 쌓이다 보니 급기야 시기, 질투라는 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었지요.

그룹과 공룡의 역할은 엄연히 달랐다 했습니다. 공룡이 그룹의 역할을 못하듯이, 그룹 역시 공룡의 역할을 못하지요. 따라서 공룡은 자기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며 그것으로 만족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분수에 지나는 욕심을 품으니 문제가 생겼던 것입니다.

우리 몸의 각 지체도 고유의 역할이 있지요. 눈, 코, 입, 귀, 손, 발 모두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그런데 발이 손을 부러워하여 손이 되고자 하거나 손이 눈을 부러워하여 눈이 되려고 한다면 어찌되겠습니까?

교회 안의 각 지체들, 곧 모든 직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황이나 때에 따라서 더 중요해 보이는 사명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하지 않은 사명은 단 하나도 없지요.

예를 들어 저는 당회장의 사명을 맡고 있는데 만일 성도님들이 없다면 당회장이란 사명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명에 따라 어떤 사람은 드러나서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은 드러나지 않게 일하기도 합니다.

이때도 드러난 사명이 더 중요하고 드러나지 않는 사명이 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직분자는 먼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며, 다른 사명을 맡은 지체들도 존중해야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꼭 필요함을 깨닫고 서로 협력해야 하지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더 사랑받고 인정받으며 좋은 것을 누리는 모습을 볼 때 사람마다 반응이 다릅니다.

먼저 ‘저 사람은 좋겠다.’ 하며 부러워하고 마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저 사람은 나보다 나은 것도 없는데 왜 저 사람만 칭찬받고 사랑받을까’ 하면서 판단하고, 시기, 질투하는 사람도 있지요.

이 외에 ‘저 사람은 저렇게 사랑받는데 나는 이게 뭔가?’ 하면서 낙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서운해하고 슬퍼하지요. 이런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모두 마음에 악이 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부러워하는 것도 악입니까?’ 시기심에서 부러워하는 것은 악에 속합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은 자신보다 더 중요하고 큰일을 감당하는 일꾼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일꾼이 잘해 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니 함께 기뻐하고, 어찌하든 도와주려고 하지요. 또한 그러한 일꾼을 본받아 자신도 발전하는 계기를 삼습니다.

성도님들은 아담 곁에 있었던 공룡과 그룹을 통해 자신은 정녕 진리와 함께 온전히 기뻐하는 마음인지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공룡은 자기 역할에 만족하지 못했고 그룹을 심히 부러워했습니다. 그 부러움이 계속 쌓여서 위험한 지경까지 빠져들어 갔지요. 공룡이 이렇게 되어 가는 것을 주시하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바로 사단이었지요.

에덴동산은 어둠의 영역과 맞닿아 있습니다. 어둠의 영역에 있는 악한 영들은 항상 에덴동산을 넘보며 아담을 넘어뜨릴 기회를 노리고 있었지요. ‘자신들의 세력을 발붙일 만한 곳이 에덴동산 어디에 있을까’ 하며 늘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공룡이 그룹을 심히 부러워하는 것이 사단에게 감지됐던 것입니다. 사단은 실낱같은 작은 기회도 놓치지 않고 포착합니다. 사단은 공중에 퍼져 있는 전파와 같아서 비진리의 생각을 할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바로 접선을 시도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생각으로 그를 사주할 수 있습니다. 미운 상대를 오해하고, 판단하며, 정죄하는 생각이 자꾸 들게 조종하지요. 또 만일 물질을 욕심내는 사람이 있으면 사단은 불의한 생각을 주입합니다.

‘돈 벌 수 있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치면 안 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편법을 쓰니까, 괜찮아.’
‘손해 보면 나만 바보야.’
정도를 벗어나면서까지 욕심을 채우도록 생각을 통해 부추기는 것입니다.

사단은 공중에 두루 퍼져서 자기가 주는 생각을 받아들일 만한 사람을 찾습니다. 세계 69억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도 마음에서 비진리가 움찔거리는 사람을 정확히 감지하지요.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사단의 생각 곧, 비진리의 생각, 악한 생각을 주입합니다. 만일 사람 편에서 이것을 받아들이면 이내 마음의 악이 발동하게 되지요.

물이 부글부글 끓으면 넘치기도 하고, 수증기가 되어 용기 밖으로 나갑니다. 사단의 생각을 받아들인 사람도 악한 감정이나 정욕을 스스로 억누르지 못하고 표출하게 됩니다. 얼굴 표정이 변하고, 말투가 바뀝니다. 악한 생각, 정도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지요. 이렇게 악을 행동으로 나타낼 때는 마귀의 역사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역사를 받기 시작하면 더 나쁜 행동들도 서슴지 않고 나타내지요.

성도님들은 사단, 마귀가 이렇게 순차적으로 역사함을 잘 알아서, 조금의 빌미도 내어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말씀하셨지요. 늘 불같이 기도하셔서 영적으로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마음과 생각에서 비진리와 악을 발견하면 즉시 돌이키고 벗어내서 사단에게 틈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공룡은 사단이 역사할 수 있는 틈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사단이 짐승인 공룡을 사주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짐승은 사람과 달리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이성이 없고 거의 본능에 의해 행동하지요. 그래서 사단이 사주하기에는 사람보다 짐승이 더 쉬운 대상입니다. 사단이 하와를 미혹할 때도 짐승인 뱀을 통해 사주하지요. 뱀이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뱀에게 그럴 만한 요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 1절 전반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고 말씀했습니다. 뱀은 모든 들짐승 중에서 간교한 속성이 가장 많았지요. 사단의 사주를 받을 만한 요소가 다분했던 것입니다. 사단도 짐승을 조종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도 필요에 따라 짐승들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열왕기상 17장 4~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까마귀들을 명하여 엘리야를 먹이신 장면이 나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그릿 시냇가로 가서 머물자,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민수기 22장 28~30절에는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열어 발람을 깨우쳐 주신 기록이 나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짐승을 원하시는 대로 움직이실 수 있습니다. 반면, 사단은 악한 속성을 가진 짐승들만 사주할 수 있지요. 짐승의 본능 속에 있는 간교함, 시기, 질투, 탐욕 같은 나쁜 속성이 사단이 접속할 수 있는 근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공룡을 어떻게 사주해 나갔을까요? 앞서, 사단은 공룡이 그룹을 부러워하는 정도가 점점 커지는 것을 감지했다고 했습니다. 공룡의 부러움은 자칫 시기, 질투와 같은 악으로 변질될 수 있는 수위까지 이르렀지요. 사단은 이러한 공룡을 겨냥하여 비진리의 전파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공룡이 그 전파를 받아들이기까지 계속 보냈지요. 여러분이 어떤 방송을 시청하려면 전파를 수신하는 안테나를 설치해야 합니다. 그런데 위성 접시 안테나를 사용하는 경우 크기가 작을 때는 전파가 잡히지 않다가도 큰 것으로 바꾸면 전파가 잡히기도 하지요.

이처럼 공룡의 부러움이 작을 때는 사단이 비진리의 전파를 보내도 공룡에게 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러움이 계속 쌓여서 커지자 사단이 보내는 비진리의 전파가 공룡에게 와 닿았지요.

사단은 공룡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비진리의 생각을 심어 주었을까요? 처음에는 ‘너희도 아담에게 부탁해서 그룹처럼 되게 해 달라고 해. 그러면 아담과 함께 지구도 다녀올 수 있고 항상 아담 옆에 있을 수 있잖아’ 이런 생각을 심어 주었습니다.

물론 공룡은 이런 사단의 생각을 자기 스스로 한다고 여겼지요. ‘나도 그룹처럼 되고 싶다. 아담에게 그룹처럼 되게 해 달라고 부탁할까? 그룹처럼 되면 지구에도 가볼 수 있고, 항상 아담 곁에 있을 수 있을 텐데.’ 이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공룡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사단은 계속 역사해 나갔습니다. 그러자 막연히 ‘그룹처럼 되고 싶다.’는 부러움의 생각이 이제 분명한 목표를 향해 발전하게 되었지요. ‘나라고 그룹처럼 안 될 이유가 없지. 반드시 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게 과연 무엇일까?’ 이렇게 집요하게 궁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사단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더 교묘하게 공룡을 미혹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게 해 달라고 청하라는 것이었지요. “선악과를 먹으면 공룡 너희들도 그룹들과 같아질 수 있으니 주인인 아담에게 청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단이 주는 생각은 공룡에게 너무나 달콤했지요.

그래서 “자신들이 선악과만 먹으면 그룹처럼 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 공룡은 스스로 생각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생각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급기야 아담에게 청하러 갔지요. “저 그룹들은 사랑을 받는데, 왜 우리는 저들처럼 되지 않는지를 알려 주십시오. 분명 저 선악과에 응답이 있을 것이니 저것을 따서 우리가 먹게 하여 주소서.”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황당한 요구이지요. 선악과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조차 금하신 열매입니다. 공룡도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으면 그룹처럼 될 수 있다’는 사단의 말에 미혹되어 완전히 판단력이 흐려진 것입니다.

이에 아담은 당연히 공룡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이때 딱 잘라서 “안 돼”라고만 말하지는 않았지요. 선악과가 어떤 열매인지, 하나님께서 선악과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셨는지 등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공룡은 물론이고, 아담 자신도 결코 먹으면 안 되는 열매임을 분명히 알려 주었지요. 그러나 공룡은 아담의 말을 전혀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이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말들이 공룡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공룡은 ‘자신이 선악과를 먹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어둠의 그림자가 더 짙게 공룡에게 드리우기 시작했지요. 그 후로 공룡은 선악과를 따 먹을 기회만을 노렸습니다. 공룡은 단순하여,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담과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로 인해 얼마나 무섭고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공룡은 한 번 사단이 준 생각을 받아들인 후, 물리치지 않고 계속 받아들인 결과 이처럼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큰 사고를 치고 맙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이 시간은 공룡이 사단의 미혹을 받아 변해가는 과정을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옛날이야기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왜 영계의 일을 이렇게 자세히 풀어 주시는지를 깨달아야 하지요.

공룡은 악이 전혀 없는 에덴동산에 살았지만 사단의 사주를 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담의 곁을 늘 호위하는 그룹에 대한 부러움이었지요. 이것은 당장에는 명백한 악이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선으로 바꾸지 않고, 계속 발전시켜 나가니 결국은 악으로 변질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육의 속성, 악의 속성, 죄의 속성이 모두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악도, 죄도 아닌 것처럼 보였으나, 조금씩 용납하다 보면 어느새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버리지요. 이에 대해 고린도전서 5장 6절 후반절에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올해 들어 제가 단에서 육체의 일들에 대해 그처럼 강하게 외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기준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일들도 조금씩 허용하다 보면 어느새 죄에 물들게 되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거룩하고 온전해야 합니다. 흠도 점도 티도 없어야 하지요.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죄로 발전될 여지가 있는 육체의 결여 분야까지 깨우쳐 주셨습니다. 진실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잠언 13장 24절에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말씀하셨지요. 그러므로 제가 육체의 일들에 대해 호되게 경계할 때도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저는 개척 당시 7주 동안 아무런 잘못 없이 아버지 하나님께 책망의 말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를 변함없이 사랑했고, 오직 눈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지요. 이것이 참 사랑입니다. 하물며 자신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신다면 얼마나 더 감사하고 사랑해야 하겠는지요.

모든 성도님들이 이제 더욱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달아 정녕 흠과 티가 없는 자녀들로 변화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11-29 오후 10:45:00 Posted
2010-12-20 오전 10:38:39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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