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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제목
창세기 강해(75)  [창 3:12-14]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1.09.30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은 일에 대해 물으시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선악과를 먹은 일에 대해 아담과 하와가 책임을 회피하는 장면과 죄로 인한 저주가 ‘땅’에 임한 결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2절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니 아담이 답변한 내용입니다. 이렇게 물으신 이유는 아담에게 진실한 답을 듣기 위함이었지요. 아담은 자신이 죄를 범한 까닭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자신이 선악과를 먹었다고 시인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아내를 들먹였지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듯하면서 근본 책임은 아내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물론 아내 하와가 선악과를 먼저 먹은 것은 사실입니다.

아담의 대답처럼 하와가 먼저 먹고 아담에게 주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와에게 묻지 않고 먼저 아담에게 물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첫째 하늘과 에덴동산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최고 머리로 존중해 주신 것입니다. 물론 그 안에는 아내 하와도 포함돼 있지요. 최고 머리라는 직임에는 최고 책임자라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권세와 함께 책임도 따르지요.

하나님께서도 하와가 먼저 선악과를 먹은 사실을 아십니다. 하와는 아담의 사랑받는 아내였지만 아담의 권세 아래 있는 하나의 지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최고 권세자로서 위엄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시려 했습니다. 큰 허물이 드러나 퇴진을 당한다 해도 명예롭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지요. 그런데 이 순간에도 아담은 어떻게든 자신의 책임을 줄여 보려고 자기 아내를 거론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진실하지 못하고 나약한 모습인지요.

더욱이 아담은 그냥 “아내가 줘서 먹었습니다.”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줘서 먹었나이다”라고 표현했지요. 이 말엔 어떤 감정이 담겨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에게까지 책임을 전가하고 있지요.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여자가 선악과를 줘서 먹었으니 만일 하나님께서 아내를 주시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책임을 아내는 물론 하나님에게까지 떠넘기며 자신은 어떻게든 모면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지요. 아담은 불순종의 죄를 범한 후 육신의 생각이 활발하게 작용하여 짧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변질되었습니다. 그러면 하와는 어떻게 됐을까요?

13절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와는 아담에게 속한 지체이기에 주체인 아담에게 총체적인 책임이 있다 해도 하와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지요. 더구나 하와가 먼저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아담도 선악과를 먹도록 했지요. 그런데도 하와는 하나님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답을 합니다. 하와도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은 채 뱀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했습니다. 하지만 “뱀이 나를 꾀므로”라는 말은 자신이 꼬임에 넘어갔음을 인정한다는 뜻이지요. 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 했지만 자신이 꼬임에 넘어감으로 인해 선악과를 먹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잘못했을 때 하와처럼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가 나를 미혹해서 내가 넘어갔다” “그가 나를 화나게 해서 혈기를 냈다” “그가 나를 속여서 손해를 봤다” 이런 식이지요. 자신이 잘못을 하긴 했지만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이미 자신의 잘못이 드러났기 때문에 피할 도리가 없으므로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서 책임을 반감시키려 하지요. 물론 이때 원인을 제공한 사람, 즉 미혹하거나 속이거나 화나게 한 상대도 잘못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탓을 하면서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체도 큰 악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그의 탓으로 돌린다 해도 자신의 허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래 있던 허물 위에 남의 탓을 한 악(惡)이 가중될 뿐이지요.

혹 여러분 중에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 이런 식으로 기도하는 분이 계신지요?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용서해 주세요.” 이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지요. 먼저 자신의 잘못을 철저히 인정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회개하는 자녀의 기도를 받으시고 죄 사함을 주십니다.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자신의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책임까지 확실히 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오히려 신뢰를 주고, 결과적으로 사회에서도 성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지요.

실제로 2007년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지에 “연봉을 올리고 싶으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신문에 따르면 억대 연봉자들이 연봉 3천만 원 미만의 사람보다 “미안하다”고 사과할 의향이 두 배나 됐지요. 자신의 잘못을 담담히 인정하는 사람이 용기 있고 정직한 사람이기에 앞으로 크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 잘못을 숨기려고 하거나 축소시키려 하며 환경 탓, 사람 탓하는 사람은 발전하기 어렵고 오히려 퇴보하지요. 어떤 상황에서도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고,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으려면 참마음을 이루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7월 기관장 교육을 통해 믿음의 반석에 서지 못하는 이유 아홉 가지를 알려드렸습니다. 혈기, 감정, 미움·시기·질투, 거짓, 판단과 정죄, 변개함, 간음, 욕심, 배신, 우리 성도님들은 지금쯤 대부분 뽑아 버리셨지요? 아직 남은 게 있다면 신속히 벗어 버리셔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 사단이 아무리 살펴봐도 미혹할 거리가 없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반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시고 마음껏 축복해 주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일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공의 가운데 심판을 내리십니다. 먼저 뱀에게, 다음은 하와에게, 마지막으로 아담에게 어떤 벌을 내릴지 말씀하셨습니다.

14절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여기서 먼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뱀이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뱀뿐만 아니라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도 함께 저주를 받았다는 의미이지요. 그중에서 뱀이 가장 큰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이 가리키는 대상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바로 지구상의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이 여기에 해당되지요. 둘째 하늘에 있는 에덴동산의 동물들 중에서는 ‘뱀’만 해당됩니다. 하와를 꾀었던 그 뱀 딱 한 마리만이 아니라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뱀이 저주를 받아 지구로 쫓겨났습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는 2,800여 종의 뱀이 있습니다. 당시 에덴동산에도 수많은 종의 뱀이 있었지요. 그 모든 뱀들이 저주를 받아 함께 이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따라서 그 이후로 에덴동산에서는 뱀 형상의 짐승이 사라졌습니다. 물론 천국에도 뱀 모양의 짐승이 없지요. 예전에 공룡이 범죄하여 쫓겨났을 때에도 주동자들뿐만 아니라 공룡 전체가 쫓겨났습니다. 이는 그들 모두가 주동자에게 동조하는 불순한 마음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의 뱀들도 마찬가지 상황이지요.

그러면 에덴동산 사람들 중에서는 아담과 하와만 쫓겨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에덴동산 아담의 후손들은 선악과를 먹고 싶은 마음을 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거스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요. 이에 아담과 하와만 에덴동산에서 지구로 내쫓긴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2절에 보면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했습니다. 이는 피조물 즉 지구의 모든 동물이 함께 저주를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동물뿐만 아니라 지구의 식물들에게도 저주가 임했습니다.

창세기 3장 17~18절에 보면 ‘땅이 아담으로 인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는 말씀이 있지요. 이에 대해서는 이 구절을 강해할 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이 “땅(곧 흙)이 저주를 받았다”는 점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조성한 근본 재료는 지구의 흙과 물이지요. 당시의 ‘물’은 생명력이 깃든 생명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명하시면 흙과 물이 일정한 비율로 결합하여 각각의 피조물로 탄생했습니다.

피조물의 근본 재료로 사용된 흙은 그 종류와 성질이 매우 다양하지요. 부드럽고 온순한 성질을 가진 흙, 강하고 거친 흙, 쉽게 변질되고 썩는 흙, 독한 성질을 가진 흙 등 어떤 성질을 가진 흙으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피조물의 본성이 결정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뱀을 조성한 흙의 성질은 어둠을 접하면 간교하게, 빛을 접하면 지혜롭게 될 수 있다 했지요. 이처럼 짐승마다 그 몸을 조성한 흙 성분에 따라 각기 다른 본성이 잠재돼 있었습니다. 그 본성이 영적인 빛의 지배 하에서는 선하고 아름답게 발현됐습니다. 모든 짐승이 온순해서 싸우는 일이 없었고, 힘이 약한 짐승을 잡아먹는 일도 없었지요. 각자 정해진 생명의 기한대로 살다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로 인해 모든 피조물의 근본 재료인 ‘흙’에 저주가 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흙 자체가 지닌 본연의 성질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었지요. 작은 곤충들과 눈에 잘 띄지 않는 미생물들까지 얼마나 악한 본성이 드러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세상에 죄악이 관영함에 따라 동물들은 더욱 사악해졌습니다. 그래서 세상 끝 날이 가까울수록 독성이 더 강한 세균과 바이러스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한 저주가 ‘땅’에 임한 이후로 이 땅과 사람들의 마음은 원수 마귀 사단의 주관 아래서 갈수록 더욱 황폐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죄로 인해 황폐해진 사람의 마음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고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은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되찾기까지 간절히 하나님의 낯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부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신속히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1-10-03 오후 4:07:07 Posted
2011-11-06 오전 1:49:3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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