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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제목
창세기 강해(79)  [창 3:18-20]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1.12.16
지난 시간까지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한 대가로 그에게 내린 벌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도 계속 그와 관련된 내용으로 수고를 해야만 열매를 거두게 되고 육의 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창세기 3장 18절 후반절~19절 전반절에 보면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양식으로 ‘채소’만 먹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서 ‘밭의 채소’는 사람이 땅에서 수고하여 얻는 소산을 대표하지요. 아담이 양식을 얻으려면 이제는 얼굴에 땀이 흐를 정도로 수고해야 함을 다시 강조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분야에서도 수고해야만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도도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 주신 대로 해야 하지요. 누가복음 22장 44절에 보면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 이처럼 기도하셨지요.

바로 이러한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응답과 축복을 끌어내립니다. 영의 세계가 뚫어지며 능력이 임하고 마음을 할례해서 성결이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3년 6개월의 가뭄을 끝내는 비를 끌어내렸지요. 그런데 이 일이 있기 전, 그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비를 내려 주시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열왕기상 18장 1절을 보면 “많은 날을 지내고 제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말씀하셨지요. 엘리야는 그저 단순히 “이제 비를 내려 주세요.” 하며 대충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응답이 올 때까지 간절히 믿음으로 간구했지요. 그는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다 했습니다(왕상 18:42).

엘리야는 왜 이런 자세를 취했을까요? 그만큼 간절하게 기도했다는 증거입니다. 생명을 거는 애절한 기도를 할 때에는 창자가 끊어질듯한 아픔이 느껴지므로 자연히 허리를 굽히게 됩니다. 허리가 고꾸라져서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가 되지요. 당시 엘리야 선지자도 그만큼 절박한 심정으로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면 단 한 번의 기도로 응답이 왔을까요? 아닙니다.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기도했어도 응답이 없었지요. 완전수 7, 곧 일곱 차례 기도했을 때 비로소 응답이 왔습니다. 그것도 그 순간 비가 펑펑 쏟아진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을 뿐이었지요. 엘리야는 그것을 보고 응답을 확신했고 비가 올 것에 대비했습니다.

이에 대해 야고보서 5장 17~18절에는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말씀합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지만 놀라운 하나님의 응답을 끌어내렸지요. 그 비결은 생명을 내건 기도에 있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기도 응답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없고 빛 가운데 행해야 무엇이든지 담대하게 구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도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하셨지요. 이러한 기도 응답의 원리를 잘 활용하여 올해 기도제목을 꼭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2.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창세기 3장 19절 후반절에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담이 이제 첫째 하늘의 법칙을 따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아담은 이 지구의 흙으로 빚어진 존재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생령이 되었습니다. 첫째 하늘의 공의, 곧 육의 법칙을 초월할 수 있는 존재였지요. 그런데 범죄함으로 인해 영의 기운이 빠져 나가자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육의 사람으로서 육의 법칙을 따르는 처지가 되었지요. 세월이 지날수록 몸이 늙고 쇠약해지다가 마침내 죽으면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 육의 생명이 끊어지면 껍데기와 같은 몸은 결국 한 줌 흙이 됩니다. 이에 대해 시편 104편 29절 후반절에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흙으로 돌아가나이다” 했습니다. 전도서 3장 20절에도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했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중요한 것은 껍데기에 불과한 육의 몸이 아니라 알맹이인 영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결국 썩어서 흙이 될 몸을 위해서 많은 것을 투자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생각하며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누가복음 12장 19절에 이런 부류에 속한 한 사람의 고백이 나옵니다. 그는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말했지요. 그런데 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동안 모아둔 소유는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그 영혼은 지옥 불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20절에 보면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말씀했지요.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주관을 따라서 순종해서 살면 결과는 구원이며 영생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면 원수 마귀 사단이 인도하는 대로 가고 결과는 지옥입니다(갈 6:8)

그러면 이제 우리는 마음과 재능, 시간과 물질을 무엇을 위해 심으시겠습니까? 육체를 위해 심겠습니까 아니면 성령을 위해 심겠습니까? 우리는 결국은 썩어 없어질 이 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심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세세토록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광과 존귀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는 선악과를 먹은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뱀, 하와, 아담에게 내리신 저주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계속 보겠습니다.

3.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창세기 3장 20절에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하였습니다. 아담은 아내에게 ‘하와’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이는 ‘모든 산 자의 어미’라는 뜻으로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육적인 의미입니다. 하와는 인류 첫 여성이지요. 에덴동산의 모든 사람이 아담과 하와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도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지요. 따라서 하와는 모든 인류의 어미가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와를 ‘모든 산 자의 어미’라고 한 것입니다.

둘째 영적인 의미에서 하와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됩니다. 오늘날 지구의 인구가 약 70억이나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이 영적으로 ‘산 자’는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참 생명인 ‘영생’을 소유한 사람만이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을 받지 못해 생명의 씨가 잠자고 있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자와 같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영생을 얻어 영적으로 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와’가 영적으로 산 자의 어미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앞으로 하와의 자손 중에서 영이 살아나 영생에 이를 사람들이 나옴을 예시한 것입니다. 또한 아담과 하와도 구원받게 됨을 의미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 땅에서 경작 받으며 자신들의 죄를 철저히 회개했지요. 그 결과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산 자의 어미’라는 뜻의 ‘하와’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산 자의 어미’가 있듯이 ‘죽은 자의 어미’도 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란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지요. 그러면 ‘죽은 자의 어미’는 누구일까요? 바로 ‘루시퍼’입니다.

루시퍼는 타락한 천사로서 악한 영들의 우두머리이지요. 루시퍼는 그의 사자들과 사단, 마귀, 귀신들을 통해 어찌하든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으로 이끌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악한 영들은 마음이 악한 사람들을 사주하여 또 다른 사람들을 사망의 길로 끌어오게 하지요.

이에 대해 마태복음 23장 15절에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하셨습니다. 이처럼 루시퍼는 인간 경작이 시작된 이래로 악한 영들을 통해 계속해서 ‘지옥 자식’을 낳고 있지요.

따라서 루시퍼를 ‘죽은 자의 어미’라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성별을 따져도 루시퍼는 여성형이지요. 계시록 19장 2절에도 루시퍼에 대해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라고 했습니다. 루시퍼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인 음행을 하게 하지요.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게 하고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게 만듭니다. 죄악의 낙을 누리다가 결국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 이르게 하지요.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근신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계시록 3장에 나오는 ‘사데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혹여 교회는 다니지만 성령을 받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아니면 중한 죄를 지어 성령이 소멸되어 가는 분이 있는지요. 그런 분은 모든 죄를 주님께 자복하고 죄 사함의 은혜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참 생명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천국에 이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1-12-19 오후 9:22:34 Posted
2012-02-05 오후 7:27:5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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