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응답서비스

창세기 강해

제목
창세기 강해(83)  [창 4:1-2]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2.03.09
지난 시간까지 증거한 창세기 3장의 공간적인 배경은 둘째 하늘의 에덴동산이었습니다. 창세기 4장의 배경은 첫째 하늘에 속한 지구, 바로 이 땅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이 땅에 내려와서 어떻게 정착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이스라엘 지역에 정착하게 된 아담

범죄한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이 땅에 거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인간 경작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 아담이 정착한 곳은 오늘날의 어디일까요? 바로 지금 ‘이스라엘’이 있는 땅입니다.

아담이 처음 정착했던 이 지역은 이후에 ‘가나안 땅’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홍수 심판 후 노아의 손자 ‘가나안’이 그 지역에 정착하여 번성했기 때문입니다(창 10:15~19). 그런데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기업으로 주셨지요(창 17:8). 이 약속은 결국 성취되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 생활을 마친 후 가나안 땅에 정착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다시 약 1천 500년이 지난 후에는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그곳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 지역은 인간 경작 마지막 순간까지 역사의 중요한 무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앞을 내다보시고 아담을 바로 그 지역에 정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아담이 살기 원했던 곳은 가나안 땅이 아닙니다.

아담은 예전부터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을 가장 사랑하여 에덴동산에서 살면서 지구에 내려올 때마다 즐겨 찾곤 했습니다. 그 당시 나일강 유역은 에덴동산의 아름다움과는 비교도 안 되었지만 오늘날보다 훨씬 아름다웠고 아담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경관이 수려했지요. 아담에게 이국적인 향취와 색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피라미드를 세울 장소로 이집트 지역을 택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으로 피라미드를 세웠고, 또한 거기에 자신이 지구의 지배자임을 기념하는 의미도 함께 담았지요.

따라서 아담은 내심 이집트 지역으로 가기를 바랐지만 그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이라는 그림을 구상하여 가장 적합한 곳인 이스라엘 지역에 아담을 정착하게 하셨지요. 이처럼 지금의 이스라엘 땅은 인간 경작의 첫 시발점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중요한 무대입니다. 더구나 당시에는 그 지역에 에덴동산과 연결된 영의 통로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담이 그 통로로 에덴동산에 다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에덴동산의 소식은 들을 수 있었지요. 또 제한적이긴 했지만 에덴동산의 후손들이 그 통로를 통해 아담과 하와를 보고가곤 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아담은 이스라엘 지역을 중요하게 여기며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아담이 이집트 지역을 동경했다면 그곳으로 이주하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담은 영의 통로가 있는 지역을 떠날 수는 없었습니다.

또한 당시 아담의 처지는 유배지로 보내진 죄인과 같았지요. 자신이 원한다고 다른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설령 간다 해도 걸어서 가야 했습니다. UFO를 타고 다녔던 옛날과는 상황이 달랐지요. 결국 아담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이집트 지역에 가보지 못한 채 그리움만 안고 살아갔습니다.

2.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는 말씀의 의미

이런 배경을 기억하면서 창세기 4장 1절을 보겠습니다.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처럼 이 땅에 내려와 정착한 후에도 여러 자녀를 잉태하고 낳았습니다. 그런데 자녀를 얻는 일이 에덴동산에서 살 때와는 달랐습니다. 그들의 몸 자체가 생령에서 육의 사람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생령의 몸이기에 마음먹은 대로 몸의 조절이 가능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도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생명이 잉태되는 원리는 같았지만 아이를 원할 때만 잉태가 되었습니다. 잉태하기 위해 사랑할 때만 정자와 난자가 생성됐지요. 또한 그곳에서는 임산부가 거의 힘듦을 느끼지 못했으며 아이를 낳음과 동시에 산모의 몸 안에서 더 이상 필요 없는 물질이 분해되어 사라졌습니다. 아이를 낳는 순간 모든 처리가 끝나고 깨끗해졌지요.

반면 이 땅에서는 임신부터 출산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수고와 고통이 따릅니다. 하와는 이 땅에서 자녀를 낳음으로써 달라진 상황을 몸소 체험했지요. 자녀를 낳을 때의 느낌이나 자녀를 얻은 감격도 달랐습니다. 본문에서 하와가 가인을 낳은 후에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했습니다. 이때 하와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자녀를 낳았을 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아이를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에 원치 않는 아이가 생긴다든지 원해도 아이를 갖지 못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자녀를 잉태하고 낳는 일이 하나님의 소관임을 절실히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지요. 아무 때나 아이를 갖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했습니다. 여성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기간과 모든 환경 조건이 맞아야 하지요. 이런 새로운 환경에서 하와는 자녀를 얻을 수 있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즉 태의 문을 열고 닫는 권한이 하나님께 있음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창 20:18, 29:31, 30:22, 시 127:3).

그런데 하와가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며 감사의 고백을 한 데에는 감춰진 사실이 있습니다. 사실 아담과 하와는 가인을 낳기 전에 이 땅에서 이미 여러 명을 낳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딸이었지요. 여러 딸을 낳은 후 비로소 첫 아들을 낳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감격이 더욱 컸습니다. 이런 내용은 성경에 기록돼 있지 않지만 사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 경작을 위해서는 사람이 번성해야 하므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먼저 딸들을 주신 것이 이치에도 맞지요.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사실들이 성경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앞으로도 계속 듣게 될 것입니다.

3. “아벨은 양 치는 자, 가인은 농사하는 자”라는 말씀의 의미

이어지는 2절 전반절을 보면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 땅에서 여러 명의 딸을 낳고 첫 아들 가인에 이어 아들 아벨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130세에는 또 다른 아들 ‘셋’을 낳았고 그 후 800년을 지내며 자녀를 더 낳았습니다(창 5:3~4).

참고로 여기서 아담의 나이는 그가 이 땅에 정착한 해를 기점으로 헤아린 연수입니다. 성경에는 아담과 하와가 낳은 자녀 중 가인과 아벨 그리고 셋, 이 세 사람의 이름만 나옵니다. 그런데 성경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녀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아벨과 셋 중간에도 여러 명을 낳고 셋 밑으로도 수많은 자녀를 낳았지요. 성경에는 인간 경작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인물들 위주로 이름이 기록됐습니다. 주로 대(代)를 이은 후손의 이름이 기록됐지요.

2절 후반절에는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했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도 성경에는 생략돼 있지요. 아담과 하와는 수많은 자녀들 중에서 가인과 아벨을 특히 사랑했습니다. 이 두 아들은 아담과 하와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에 태어나 큰 위로와 기쁨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지요. 특히 아담은 아벨을 더 사랑했고, 하와는 가인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이 두 아들에게 가업(家業)을 이어가게 합니다.

한편 다른 자녀들은 장성하는 대로 그들의 분깃을 떼어 주어 부모를 떠나 살게 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각자의 터전을 잡아 가정을 이루고 자손을 낳으며 번성했지요. 당시는 오늘날과 달리 질병, 재해 같은 해로운 요소가 적었습니다. 따라서 인구가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할 수 있었지요. 출애굽기에 보면 이집트로 이주했던 야곱 일가 70명이 4백 년 만에 2백만 명 이상으로 증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인간 경작 초기에는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자녀를 낳았지요. 아이가 잘못되거나 죽는 일이 거의 없었으므로 인구가 빠르게 번성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지식을 알면 창세기 4장이 잘 이해됩니다.

가인과 아벨이 각각 물려받은 가업은 농사와 양 치는 일이었습니다. 아담은 아들들에게 각각 생업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전수해 줬지요. 아담은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을 모두 지배하고 다스릴 만큼 지식과 지혜가 풍부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살았던 수많은 세월 속에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지요. 아담은 이 땅의 삶에 적응하기 위해 그것을 활용해 나갔습니다.

따라서 아담이 이 땅에서 처음 살았던 모습을 마치 원시 미개인과 같았으리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물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기에 수준 높은 문명을 이룰 수는 없었습니다. 예컨대,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이 무인도에 홀로 있다 해도 컴퓨터를 바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것과 같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아담이 뛰어난 지식과 지혜를 펼쳐나가는 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또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 해도 아담에겐 구현할 수 없는 분야가 더 많았지요. 기껏해야 농업과 목축업처럼 직접 자연을 이용하는 1차 산업 부분에만 지식과 지혜를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아담은 육축을 비롯한 모든 짐승의 속성이나 특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씨에서 싹이 나고 열매를 맺는 과정도 잘 알고 있었지요. 아담은 그러한 지식을 활용하여 농사를 짓고 가축도 쳤습니다. 그리고 아들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전수해 주었지요. 형 가인에게는 농사짓는 법을, 동생 아벨에게는 양 치는 법을 알려 줬습니다.

그러면 육식을 하지 않던 당시 양식을 얻기 위한 농사 외에 왜 굳이 양 치는 일이 필요했을까요? 양털이 생활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양을 치는 중요한 다른 목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에 제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지요. 제사법은 성경 레위기에 기록돼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말씀입니다. 아담이 이 땅에 정착한 때로부터 약 2천5백 년 후의 일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이미 제사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제사법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난 다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교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죄 사함 받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셨지요. 그것이 바로 제사법입니다. 이때 바치는 제물이 바로 ‘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담도 양을 쳤고, 그의 아들에게도 양 치는 법을 전수했지요. 또한 아담은 자녀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나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 곧 제사법을 자세히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제사법이 차츰 변질되어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지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2012-03-12 오후 11:18:30 Posted
2012-06-29 오후 5:28:03 Updated

다음 글 창세기 강해(84) 이전글
이전 글 창세기 강해(82) 다음글
이전 페이지 인쇄하기 글자크게 글자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