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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34) 네 생물, 이십사 장로 [계 4:9-5:4]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2.05.13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의 보좌 주변을 지키고 있는 네 생물에 대해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들의 사명을 이 땅의 것으로 비유하자면 마치 왕을 최측근에서 지키는 경호원과 같지요. 물론 어느 누가 감히 하나님 곁에 함부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 보좌 곁에는 큰 위엄과 권세를 가진 네 생물이 있어서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권위를 더해 주고 있지요.

이러한 네 생물들도 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물론 “밤낮 쉬지 않는다” 해서 실제로 그들이 하나님 앞에 항상 찬양을 올려드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직접 찬양을 올려드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음의 향으로만 올려드리지요.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달라지지만 그들의 마음 중심만은 늘 하나님을 향해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리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밤낮 쉬지 않는다”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네 생물들이 하나님 앞에 “장차 오실 자라” 고백하고 있지요. 장차 오실 자란 앞으로 인간 경작이 마무리되면서 이 땅에 강림하시게 될 주님을 지칭합니다. 그러나 결국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삼위일체 한 분이시므로 보좌에 앉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 곧 주님을 향한 고백과 같은 것이지요.

네 생물은 비록 하나님을 지키는 경호의 사명을 맡은 존재이지만 그들도 이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밝히 알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질 일들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린다는 것은 그들이 단지 행위적인 모습으로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올려지는 마음의 향으로써 찬양하는 그러한 존재들임을 알 수 있지요.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고 있으며 하나님의 존귀하심과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느끼면서 마음 중심의 향으로 찬양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이러한 네 생물의 찬양보다 더 진한 향으로 올려지는 찬양이 있지요. 본문 10-11절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24장로가 어떤 사람들인지는 이미 말씀을 드렸지요.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았고 주어진 사명을 생명 다해 감당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첫째로 가장 사랑한 사람들이며,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또 하나님의 나라와 영혼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전혀 아끼지 않고 모든 것을 드린 사람들이지요.

그 마음 중심에 오직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와 열정이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참 아들로 인정받은 사람들이며 인간 경작을 통해 구원에 이른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도 가장 보배와 같은 존재들이지요. 이러한 24장로가 마음 중심을 담아 아버지 하나님 앞에 경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참 자녀와 사랑을 나누기 원하셨던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계획하시고 독생자까지 내어주시며 이루기 원하셨던 인간 경작의 섭리와 목적이지요.

만약 여러분에게 여러 명의 자녀가 있어서 사랑의 고백을 해 오는데 그중에 여러분을 꼭 닮아서 여러분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자녀가 있다면 아무래도 그 자녀의 사랑 고백이 마음에 더 진한 감동으로 와 닿지 않겠습니까?

이런 것처럼 하늘나라에는 천사와 천군, 그룹을 비롯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많은 존재들이 있지만 그중에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인간 경작을 통해 참 자녀로 나온 저와 여러분의 찬양이라는 사실입니다. 그중에서도 더욱이 인간 경작의 대표적 성공작이라 할 수 있는 24장로들이 올려드리는 찬양과 경배라면 당연히 하나님께는 너무나 큰 기쁨과 감동이 되지요.

본문에 보니 이러한 24장로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자신들의 면류관을 하나님 보좌 앞에 던집니다. 육적으로 볼 때도 윗사람 앞에서는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몸가짐도 공손히 하는 것이 예의이지요.

그렇다면 24장로는 왜 하나님 앞에 이처럼 자신들의 면류관을 던진 것일까요? 설령 면류관을 하나님 앞에 드린다 해도 공손히 벗어서 올려드리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던진다고 표현한 것이겠습니까?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면 자칫 무례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처럼 “면류관을 던졌다”는 말 속에는 많은 의미들이 담겨 있습니다.

24장로에게 있어서 그들에게 주어진 금 면류관은 그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을 위해, 주님을 위해 생명 다해 헌신한 것에 대한 상급이며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정해서 주신 증표이니 무엇보다도 값지고 귀한 것이지요.

그러한 면류관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던졌다는 것은 그처럼 귀한 면류관이라 할지라도 너무나 존귀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아무리 귀한 면류관을 썼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부끄러울 뿐이며 그저 머리가 숙여지고 무릎이 꿇어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가운데 자신들을 완전히 낮춘다는 의미의 표현이지요.

24장로는, 너무나 존귀한 자리에 올랐음에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들의 존재가 어떠한지를 잘 알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도 이미 교만이나, 높아지려는 마음, 드러내려는 마음 등 비진리의 마음들을 다 벗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이처럼 오직 하나님만을 높여드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24장로들은 천하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뜻대로 지음 받았다 고백하고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처음 인간 경작을 계획하실 때부터 앞으로의 모든 일을 다 아셨습니다. 그래서 영의 세계에 속한 모든 것은 물론이고 인간 경작에 필요한 육의 세계의 모든 것도 다 뜻대로 지으셨지요.

그렇다고 해서 임의대로 지으셨다는 뜻이 아니라 예지하심 가운데 공의에 맞추어 모든 것을 예정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정해 놓고 거기에 맞추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시고 거기에 맞게 정하셨다는 말이지요. 이러한 뜻과 섭리에 따라 인간 경작 6천 년의 역사가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그 후에는 천 년 동안 천년왕국이 있게 되고, 이렇게 해서 7천 년이라는 완전수를 이루지요. 그리고 나면 천국이냐, 지옥이냐의 심판과 이후의 영원한 삶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섭리대로 세상의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친히 목도하며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여러분은 더욱 깨어 근신하는 복된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계 5:1에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했습니다.

이제부터가 7년 환난의 서막을 여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에 안팎으로 쓰여진 책이 있는데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다 했지요. 오른손에는 능력과 강한 힘, 그리고 중요성과 보장하심, 정확한 질서 등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른 손에 책을 가지셨다는 것은 그 내용이 그만큼 중요하면서도 하나님의 능력과 보장하심 가운데 반드시 이루어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정확한 질서에 따라 이제 때가 이르렀으므로 그 책을 열어 일을 이루어야 할 시점이 다 되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그 책이란 무슨 책이며 그 책의 안팎에는 어떤 내용이 기록된 것일까요? 한마디로 그 책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행하실 일들을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미 섭리 가운데 마지막 때가 되면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며 어떤 절차와 사건들을 통해 모든 일들을 이루어 가실지를 이처럼 미리 책에 다 기록해 놓으셨지요.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임의대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섭리와 계획 가운데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마지막 때의 일들에 대해서도 아무도 모르게 비밀리에 진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경에 어떠한 일들이 있을지를 기록해 놓으심으로 그것을 대비하여 준비케 하신 것을 볼 수 있지요.

사도 요한에게 마지막 때의 일들에 대해 알려 주시고자 오래전부터 기록하여 예비해 두셨던 마지막 때에 관한 내용이 담긴 책을 보여 주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책의 안팎으로 쓰여졌다는 것은 이제 기한이 차서 때가 임박했음을 의미하지요. 봉인된 이 책을 펴게 되면 그때부터 7년 환난의 서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책을 일곱 인으로 봉해 놓으셨지요. 일곱은 완전수로서 이는 곧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온전히 인쳐졌음을 의미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이 책의 내용을 함부로 알 수도 없고, 때가 이르러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기 전까지는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이 이루어질 수 없지요.

다시 말해, 7년 환난의 모든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주관하심 아래에 있음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 허락하셔서 봉인을 떼어야만 비로소 7년 환난이 시작되며 그 과정도 결국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대로 진행이 된다는 말이지요.

7년 환난 동안 이 세상은 원수 마귀 사단의 손에 넘어가 있게 되지만 그렇다고 주도권을 원수 마귀 사단이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인간 경작의 과정에 필요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지요. 자신들에게 주어진 기한과 한계 안에서 인간 경작을 위해 한 부분을 감당할 뿐입니다.

7년 환난 동안 그들이 아무리 권세를 잡는다 해도 결국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따라 십사만 사천 명의 전도자들이 나오고 두 증인도 나오며 천년왕국과 백보좌 대심판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내용이 담긴 책이 일곱 인에 의해 봉인 되어졌다는 것은 이처럼 모든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지요. 이때 봉인된 일곱 인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새겨진 불로써 된 봉인입니다. 그 하나하나를 뗄 때마다 봉인이 사라지면서 그 안에 기록된 내용들이 펼쳐져 보이게 되지요.

이 봉인은 언제 누구에 의해서 떼어지게 되는 것일까요? 그때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마 24:36에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했지요.

하지만 그때가 이제 다 되었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날과 그때에 대해 ‘정확하게 언제다’ 하고 기록해 놓지는 않으셨지만 언제쯤이 그때가 되는지는 성경 곳곳의 기록들을 통해 알 수 있게 하셨지요.

6천 년 인간 경작의 역사 가운데 이제 봉인을 뗄 마지막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때가 되었다고 해서 아무나 이 봉인을 뗄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봉인을 떼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계 5:2에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지금 힘센 천사가 나오고 있는데 그는 바로 이 책을 지키고 있는 천사이기도 하지요. 천사들 사이에도 권세와 능력 등의 차이가 있어서 힘센 천사도 있고, 높은 지위를 가진 천사도 있으며 이 땅의 장관에 비유할 수 있는 천사장도 있습니다. 그리고 권세나 힘, 능력에 따라 주어지는 사명도 다 차이가 있지요.

지금 일곱 인으로 봉인된 책을 지키는 천사는 힘 센 천사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이 중요한 책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큰 힘과 권세와 능력을 가진 천사로 하여금 지키게 하신 것이지요. 하지만 이 천사도 책을 지키는 사명을 가졌을 뿐 그 인봉을 뗄 만한 권한은 결코 없습니다.

그도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며 인을 떼기에 합당한 존재를 찾고 있지요. 이제 그만큼 인봉을 떼야 할 때가 가까웠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이가 누구인가 찾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여 이 천사가 그 자격을 갖춘 존재가 누구인지를 정말 모르는 것은 아니지요. 요한에게 그 해답을 찾도록 던져주고 있는 것인데 이에 요한이 살펴보았지만 그만한 자격을 갖춘 존재를 찾지 못했습니다.

계 5:3-4에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이 말씀대로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도 능히 봉인을 떼고 이 책을 펴거나 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분이 계시지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만이 그 자격을 갖춘 분이실까요?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습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지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길이 열렸고 장차 인간 경작이 마쳐질 때에도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을 따라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도 부활의 열매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 책의 인봉을 떼는 순간에 주님의 공중 강림과 함께 실질적인 인간 경작이 마쳐지게 되지요. 그러므로 인봉을 뗀다는 것은 인간 경작의 마무리를 짓는다는 의미이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게 된 구원의 열매들을 거두게 되는 순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중요한 순간을 여는 인봉을 과연 누가 떼어야 마땅하겠습니까? 바로 우리의 구세주 되시는 주님이시지요.

물론 이러한 열매들을 온전히 거두기까지는 주님 이후로 이 땅에 오신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의 역할이 참으로 큽니다. 성령님께서는 온전한 구원의 완성과 함께 많은 영혼들을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는 너무나 중요한 사역을 감당하셨지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길에 들어섰다 해도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그들 중에 과연 얼마나 온전한 열매로 맺혀지겠습니까? 또한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라면 새 예루살렘이라는 목표점에 이를 수 있는 영혼도 극히 적을 수밖에 없지요.

이밖에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된 영혼들을 천국에 이르게 하는 순간까지 보혜사 성령님께서 감당하시는 역할은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이러한 성령님의 사역도 주님이 다시 오심과 동시에 마쳐집니다.

결국 인봉된 책의 인을 떼어서 7년 환난과 7년 혼인잔치 그리고 이후의 천년왕국으로 이어지는 마지막의 모든 일들을 열어가는 권한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섭리 가운데 이것을 집행하는 권한을 주님에게 주신 것이지요. 사도 요한도 이때까지는 이러한 섭리에 대해서 몰랐습니다.

사도 요한은 당연히 구세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고 믿었지만 인간 경작의 마지막을 마무리하기 위해 이 중요한 책의 인봉을 뗄 자격을 갖춘 분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깨닫지를 못했지요.

그래서 “내가 크게 울었더니” 했던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지금 하나님의 섭리를 전혀 깨닫지 못해서 낙심 가운데 이처럼 크게 울었던 것만은 아닙니다. 사도 요한은 지금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있었지요. 이 책의 인봉을 떼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은 요한도 충분히 느끼며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힘 센 천사가 ‘이 책의 인봉을 뗄 자가 누구인가’ 물을 때에 순간 합당한 자격을 갖춘 사람을 찾으려니 보이지가 않는 것이었지요. 이때 사도 요한이 인간 경작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 땅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순간적으로 떠올려 보았지만 그중에 누구도 합당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늘 위에 없다는 것은, 이미 구원받은 영혼들 중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사람을 찾았지만 없다는 뜻이지요. 또한 하늘 위에 있는 천사나 천군들 중에서도 합당한 자격을 갖춘 존재를 찾을 수 없다는 뜻이고요.

다음으로 땅 위에 없다는 것은 지금 아직까지 이 땅에서 경작 받는 사람들 중에 합당한 사람을 찾아도 없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땅 아래에도 없다는 것은 음부에 있는 영혼들 중에 찾아도 없다는 뜻이지요.

이처럼, 하늘 위에도, 땅 위에도, 땅 아래에도 합당한 자격을 갖춘 존재를 찾을 수 없으니 이 순간 사도 요한이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과연 누가 이 중요한 책의 인봉을 뗄까?’ ‘그러한 자격을 갖춘 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마음으로 인해 순간 낙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박한 심정으로 인해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 속에서 사도 요한은 이처럼 크게 울었던 것이지요. 사도 요한이 차분하게 묵상해 보았다면 이 책의 인봉을 뗄 자격을 갖춘 분이 누구이신가를 깨달을 수 있었겠지만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 속에서는 그럴 여유가 없이 순간적으로 낙심과 절박함이 밀려왔고 그래서 크게 울 수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이때 24장로 중에 하나가 사도 요한에게 인봉을 뗄 자격을 갖춘 분이 누구인지를 알려 주지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려 줍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에 대해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라 표현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을 왜 이렇게 표현한 것일까요? 그리고 사도 요한에게 지금 말하고 있는 24장로 중에 하나란 과연 누구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장차 다가올 마지막 때를 어떻게 맞게 될까요? 결국은 모두가 극한 환난과 고통 가운데 살다가 마침내는 영원한 사망인 지옥으로 가겠지요. 그러나 우리의 구세주 되시는 예수님이 계셨기에 우리가 맞이하게 될 미래는 소망입니다.

주님의 강림과 함께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서 주님과 더불어 7년간의 혼인잔치를 한 후 다시 이 땅에 내려와 왕노릇 하며 천년왕국을 지내게 되지요. 그 후에는 상급 심판을 통해 영원히 주어질 처소와 상급과 영광을 받아 세세토록 천국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장차 천국에 가게 되면 우리를 이 좋은 곳에 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주님 앞에 영원토록 찬양과 경배와 감사를 올리게 되지요. 이 모든 일의 주관자 되시며 결국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 앞에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요.

우리가 또 한 분 영원토록 찬양과 경배와 감사를 드릴 분이 있는데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장차 천국에 가서 이 땅의 일들을 하나하나 되돌아보게 되면 우리의 삶 가운데 매 순간마다 성령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위해 진액을 다하셨는지를 알 수가 있지요.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시는 부모의 심정으로 한시도 어린 자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다친 곳은 싸매주고, 아픈 자녀 곁을 뜬 눈으로 꼬박 새우시는 부모의 심정으로, 이 밖에도 열거하자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또한 사실 육의 부모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진하고 변함없는 사랑과 인내와 정성으로 너무나 자상하고 세세하게 우리의 삶 가운데서 우리가 천국으로 가는 길을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변질됨이나 변개함이 전혀 없는 천국에서는 이러한 성령님에 대한 은혜와 감사를 세세 무궁토록 표현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여러분 모두가 장차 이러한 대열에 꼭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세세토록 찬양과 존귀와 영광을 올려드리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5-18 오전 11:07:22 Posted
2023-09-22 오후 4:38:0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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