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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38) 다섯째 인, 여섯째 인, 7년환난, 짐승의 표 [계 6:9-17]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2.06.17
오늘 본문이 나오는 6장부터는 장차 성도들이 공중으로 들림 받은 후 땅에서 7년 환난이 진행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사도 요한이 환상 중에 보니 마지막 때까지의 일들이 기록된 책이 있고 그 책은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었지요. 주님께서 그 인을 하나하나 떼실 때마다 7년 환난의 상황들은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7년 환난 동안 이 땅에 내리는 재앙들을 주님께서 임의대로 내리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류가 그동안 자기 악과 욕심으로 행한 일들이 기한이 차게 되자 공의에 의해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공중으로 들림 받은 성도들은 혼인 잔치에 들어가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 땅에서는 전쟁과 자연재해와 질병 등 각종 재앙이 점점 더 심해만 갑니다. 그런 와중에 들림 받지 못한 사람들 중에서 어찌하든 구원의 길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순교 당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지요. 오늘 본문에 보면 바로 이렇게 순교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계 6:9에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7년 환난이 시작되면서부터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죽는 사람들이 많지만 본문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참 믿음을 갖지 못했기에 주님께서 강림하셨을 때 휴거되지 못하고 7년 환난 중에 떨어진 영혼들입니다.

그들 중에는 한때 주님을 믿고 은혜를 받았지만 그 은혜가 식어져서 세상으로 떠난 사람들도 있고 교회를 다닌다 하면서도 영적인 믿음이 없이 세상 정욕대로 살았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취하며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주변에서 성도들이 사라지자 자신들이 휴거되지 못한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렇게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참담한 절망과 공포가 엄습합니다. “휴거가 무엇인지” “이제부터 자신들에게 임하게 될 재앙과 지옥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지식으로는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이미 이런 일들에 대해 말씀을 들었지만 마음으로 믿어지지가 않았기에 결국 쭉정이와 같은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휴거가 일어나는 것을 보자 하나님의 말씀이 참이었다는 것이 그제야 믿어지고 두려움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고 그들이 들림 받을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구원의 가능성은 남아 있지요. 그것은 바로 순교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고 믿음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려고 하다가 순교하는 경우도 있지요. 여러분도 “짐승의 표”라는 것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짐승의 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13장에 가서 증거할 것인데 오늘은 대략적으로만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짐승의 표란 간단히 말해 장차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권세를 잡게 될 때에 그들이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입니다. 곧 바코드에 각 사람의 개인 정보를 담아서 그 바코드를 사람의 몸에 심어 줌으로 그가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컴퓨터로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지요.

계 14:11에 보면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7년 환난 때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결국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동조하고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결과가 됩니다. 이는 주님을 부인하는 것이 되지요.

믿음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려고 하지만 적그리스도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표를 받지 않으려고 아무리 도망하고 숨는다 해도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은 집요하게 추적하여 온갖 고문과 위협으로 표를 받게 합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모든 핍박과 고통을 끝까지 믿음으로 이겨내고 순교할 때라야 간신히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일들은 7년 환난 기간 중에서도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본격화되지만 이미 적그리스도가 장악하고 있는 영향권 안에서는 7년 환난의 초기부터 순교가 시작됩니다.

지난 시간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신 말씀에 대해 설명한 내용도 같은 맥락입니다. 곧 큰 태풍과 각종 재앙이 임할 때 이스라엘 백성과 휴거되지 못한 성도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지킴 받지만 그들이 모두 다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전쟁이나 질병,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죽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핍박받고 순교당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때문이지요.

왜 7년 환난 때는 이런 핍박을 통해서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비유를 들어 농부가 추수를 하게 되면 알곡을 다 창고에 들인 후에도 혹여 떨어진 이삭은 없는지 다시 살피게 됩니다. 쭉정이로 보여서 땅에 버려진 것 중에 조금이라도 알이 채워진 것은 최대한 창고에 들이려고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미 경작의 기간이 끝난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십니다. 믿음이 없어 들림 받지 못한 영혼 중에서도 혹여 일말의 선한 마음을 가진 자가 있는가 하여 돌아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는 구원받을 믿음이 있다고 증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미 휴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이었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난 상황이지요. 이런 상황을 보고도 여전히 악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들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지 마음에 믿는 믿음이라고 인정받기가 어렵지요.

지식적인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예언이 명백하게 이뤄지고 드러난 상황에서 땅에 남은 사람들이 믿음을 가졌다고 인정받으려면 그만큼 큰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어떠한 고문과 굶주림, 극심한 핍박이라도 이겨내어 이제라도 참 믿음이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 원수 마귀의 입장에서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주관하여 어찌하든 한 영혼이라도 더 멸망으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사람으로서는 능히 감당하기 어려운 극심한 고통을 주면서 주를 부인하게 하고, 그래도 부인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앞에서 어린 자녀를 고문하기도 하는 등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잔혹한 일들을 행하지요.

더구나 이때는 성령이 거둬진 시대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이나 위로도 없고 하나님의 은혜로 순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순전히 자기 의지와 노력으로 죽음을 맞기까지 모든 고난을 견뎌야 하기에 그만큼 구원받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이렇게 휴거가 끝난 후에 뒤늦게나마 믿음을 지키고 순교한 사람들은 본문에 보니 “제단 아래 있다” 했습니다. “제단 아래 있다”는 것은 그들도 결국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왔고 구원만은 받을 수 있었다는 뜻이지요.

이들은 자기의 의지 속에서 순교하여 간신히 구원만 받았을 뿐입니다. 이 땅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못했기에 진리를 중심으로 깨우칠 수도 없었고 마음에 할례하여 변화될 수도 없었지요.

계 6:10에 이런 사실이 너무나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했지요.

순교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피 값을 인하여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자신들이 악한 자들의 손에 순교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고통과 고민 속에서 참혹한 일을 당했으니 악한 자들을 심판하여 원수를 갚아 달라는 말이지요.

물론 공의의 법칙에 따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성도들을 핍박하고 악으로 심은 자들은 반드시 각자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됩니다. 순교자들도 이러한 공의를 알기 때문에 자신들의 피를 신원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이것이 공의라고는 해도 진리를 아는 여러분은 이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마 5:44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셨지요.

이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못 박아 죽이는 이들에 대해서도 미워하거나 저주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심으로 하나님께 그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하셨지요.

또 초대교회 당시 스데반 집사는 어떠했습니까? 스데반 집사는 큰 권능을 행하고 진리만 말했는데도 악한 사람들이 이를 싫어함으로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기에 이르렀지요. 이에 행 7:60에 보면 스데반 집사는 죽임 당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했습니다.

이렇게 성결되어 하나님을 닮은 사람은 아무리 억울하게 순교를 당했다 해도 그 원수를 갚아 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또 온전히 성결되지는 못했다 해도 조금이라도 마음의 할례를 한 사람이라면 육을 벗고 주님 앞에 서게 될 때는 어떤 미움이나 원망을 갚고자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 앞에 죄송할 뿐이지요.

십자가의 크신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신앙생활을 할 동안 죄악을 다 버리지 못한 것이 너무나 죄송하고 민망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줍기로 순교한 영혼들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악인들을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갚아 달라고 탄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순교자들은 그 이전에 먼저 들림 받은 성도들과는 선의 수준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다만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자기 의지로 순교했기에 간신히 구원의 선(線) 안에 들어온 것뿐입니다. 그래서 비록 믿음을 인정받아 구원은 받았지만 그 입술의 말만 보아도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들림 받은 성도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순교하고 나서도 주님과 함께하는 7년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고 천년 왕국 때도 왕 노릇을 할 수가 없습니다. 7년 혼인 잔치가 끝나고 천년 왕국이 끝날 때까지는 먼저 들림 받았던 사람들과 구별되어 다른 장소에 거하며 기다리게 되지요.

본문에 그들이 “제단 아래” 있다는 말은 둘째 하늘에 마련된 별도의 공간에 머물러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둘째 하늘은 빛과 어둠의 영역으로 나뉘어 하나님께 속한 빛의 영역이 있고 악한 영들이 머무는 어둠의 영역이 있다 했습니다.

엡 2:2에 보면 악한 영들을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표현하지요. 이때 “공중”이란 우리 눈에 보이는 육의 하늘이 아니라 영의 공간인 둘째 하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늘 안에서도 하나님께 속한 빛의 영역을 에덴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에덴 안에서도 일부의 공간을 구분하여 동산을 만드시고 거기에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살게 하셨는데 그곳이 바로 에덴동산입니다.

그리고 장차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 7년 동안 혼인 잔치를 벌이게 되는 곳도 공중인 둘째 하늘에 속한 빛의 영역이지요. 살전 4:17에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둘째 하늘에는 악한 영들이 머무르는 공간도 있고, 에덴동산도 있으며, 혼인 잔치를 이루게 될 공간도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하늘에 마련되는 또 다른 공간이 있는데 바로 7년 환난 동안 순교하여 구원받은 영혼들이 대심판 때까지 쉼을 누리는 공간입니다.

이런 사실들만 보아도 이삭줍기로 순교한 영혼들이 주님의 강림 때 들림 받은 성도들과는 전혀 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가 있지요. 아무리 큰 두려움과 고통을 이기고 순교했을지라도 휴거 때 들림 받은 성도들에 비할 때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장차 천국에 가서도 낙원의 가장 바깥쪽에 따로 구분된 지역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7년 환난 동안 순교한 사람 중에도 예외적인 경우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이삭줍기 구원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심으로 낙원보다 더 좋은 천국에 들이시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차후에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계 6:11절에 신원하여 주시기를 간구하는 영혼들에게 하나님께서 답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여기서 흰 두루마기는 순교한 영혼들에게 구원받았다는 증표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루마기 역시 먼저 들림 받은 성도들이 혼인잔치 때 입는 세마포 예복과는 가치가 전혀 다르지요.

구원받은 영혼들은 그들에게서 나오는 빛만 보아도 각자의 마음이 성결된 정도를 알 수 있고 입은 옷과 장식들을 볼 때에 천국에서 누리게 되는 지위를 알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똑같이 “흰 세마포”를 입었다고 표현해도 각 사람이 영으로 이룬 정도에 따라 옷에서 발해지는 광채와 영광, 위엄이 다르지요.

그런데 이삭줍기로 구원받은 영혼들에게는 어떠한 상급이나 영광도 없습니다. 그저 간신히 구원만 받아 낙원에 거하게 된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흰 두루마기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 혼인 잔치에 신부와 들러리가 있을 때 이삭줍기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주인공인 신부의 위치가 아니고 들러리와 같은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계 6:11 후반 절에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아직 심판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악한 자요 결국 멸망하여 지옥 불로 떨어질 영혼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아무 때나 심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자들에 대한 심판은 반드시 이뤄지게 되지만 그때와 방법은 정확한 공의에 따라서 행해지는 것이지요. 7년 환난이 마무리되면서 그들의 악이 완전히 채워질 때까지는 하나님께서도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악인들의 악이 채워지는 기간 동안에 한편으로는 더 많은 영혼들이 순교를 통해 구원의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자들에게까지도 일말의 기회를 열어 주고 계신 것이지요. 그들 중에도 돌이킬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무리 기회를 열어 주셔도 결국 악한 자들은 악에 악을 더하여 심판의 형벌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 사실을 아시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철저한 공의 속에 7년 환난의 섭리들을 이뤄가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요 20:29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천국을 직접 가 보지 못했을지라도, 그리고 다가올 7년 환난을 보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참된 줄을 믿습니다. 그래서 천국을 바라며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것을 버리면서 살아가지요.

시간도 물질도 명예도 가족도 하나님께 드리고 자기를 부인하며 날마다 죽어지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결코 손해 보는 삶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버리는 것 같아도 결국은 가장 큰 축복을 받는 길이지요. 죄악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만큼 이 땅에서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는 만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구하는 대로 마음에 품는 대로 응답하시고 건강과 부와 명예도 다 주시지요. 물론 오늘날도 주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고난의 삶을 택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명예와 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 채 주님을 위해 영혼들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다 드리는 사람도 있고, 주님의 이름으로 인해 순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고난과 순교는 7년 환난 때 당하는 순교와는 전혀 다릅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항상 위로와 소망을 공급해 주시고 성령의 감동함 속에서 모든 어려움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지요.

또한 이 땅에서 살 동안은 고난을 당했다 해도 장차 들어갈 천국에서는 이와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믿음의 행함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천국의 영광과 상급으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성령 시대에, 은혜 가운데 믿음을 가지고 경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성령의 역사 속에 자기를 발견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나가는 매순간이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해 들어가는 과정이지요.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여러분은 때로 어떤 연단이 있고, 어려움을 만난다 해도 모든 환경 속에서 감사와 기쁨이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 속에서 부지런히 자신을 발견하고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계 6:12-14에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우매”

7년 환난 동안 전쟁과 재앙이 거듭될수록 지구의 환경은 전반적으로 황폐해져 가고 재앙이 재앙을 부르는 악순환이 연속됩니다. 그중 하나가 본문에 나오는 대형 지진입니다. 지진의 피해가 별로 없는 지역에 사는 분들은 크게 실감이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형 지진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를 들어 1556년 중국 산시성 지진은 직접적인 사망자뿐 아니라 지진 후 전염병 등의 2차적인 피해까지 계산할 때 83만 명의 사망자를 낸 참사였습니다. 또 1985년 멕시코시티의 지진 때는 약 4분 만에 시 중심지 250여 개의 건물이 무너지고 2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런 지진들이 한 번 지나가고 나면 번화하던 도시가 순식간에 폐허로 번화하던 도시가 순식간에 폐허로, 번화하던 도시가 순식간에 폐허로 변하고 곳곳에서는 비명과 통곡의 참혹한 광경이 벌어지지요.

규모가 큰 지진들이 예전에도 있었지만 본문에 설명하는 지진은 전에 보았던 어떤 것보다 심각한 지진입니다. 원래부터 지진이 빈번하게 일어나던 지역은 물론, 지진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지역 대부분이 큰 영향을 받을 정도의 엄청난 지진이지요.

지진의 직접적인 피해로 인해 죽고 다치는 사람도 많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피해가 따릅니다. 동시다발적으로 화재가 일어나므로 화재로 인한 사상자가 크게 늘어나기도 합니다. 지진으로 인해 제방이 붕괴되어 홍수가 일어나기도 하고, 바다에서 발생하는 지진 해일로 인해 특히 해안지방에는 심각한 피해를 줍니다.

지진 해일을 일명 ‘쓰나미’라고도 하는데 이 쓰나미는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나 항구에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입히게 되지요. 미처 대피할 겨를도 없이 커다란 집채만 한 파도가 몰려와 사람과 건물을 덮치는 것입니다.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부근에서 발생한 지진 해일은 무려 40만 명의 사망자를 내었을 정도이지요. 또한 지진이 일어나면서 이로 인한 지각의 불안정 때문에 대규모 화산 폭발도 함께 일어나게 됩니다. 거의 온 세계가 흔들린다 할 정도로 큰 지진과 화산의 재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커다란 지진이나 화산폭발이 일어나면 지형까지도 크게 변하는 것을 봅니다. 원래 있었던 산이 사라지기도 하고, 없던 호수나 섬들이 갑자기 생겨나기도 하지요. 땅이 가라앉기도 하고 솟아나기도 하며 많은 것들이 땅 속에 묻히고 뒤엉키면서 이전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됩니다.

이런 모습들에 대해 계 6:14에는 “산과 섬들이 제자리에서 옮기운다” 한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 “총담”이라 했는데 이는 검은 털로 짠 천을 말합니다.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달이 피같이 붉어진다는 것은 대기가 심히도 오염된 상황을 의미하지요.

보통 달은 흰색이나 푸르스름한 흰색으로 보이는데 산불이나 대형 화산 폭발이 발생했을 때나 심각하게 대기가 오염된 도시에서 바라볼 때는 달이 붉은 빛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해 역시 오염된 물질들로 인해 가리어져서 그 빛을 제대로 볼 수가 없게 되구요.

오늘날 대기 오염이 점점 심각해져 가면서 이런 현상들이 더욱 자주 일어나고 있지요. 이처럼 7년 환난 때도 전쟁이나 지진으로 인해 곳곳에 화재가 일어나고, 화산 폭발로 엄청난 화산재가 쏟아져 나오면서 온 세계가 화염에 휩싸이고 하늘은 화산재와 오염 물질로 채워지게 됩니다.

그 결과 대기가 크게 오염되면서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으로 물든 것처럼 보이게 된다는 말입니다. 역사상 실제로 이런 일들이 일어났던 경우가 있는데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커다란 규모의 화산 폭발이라고 하는 크라카토 화산의 피해를 잠깐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세기말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토 섬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은 초대형 수소 폭탄 1백 개가 동시에 터진 것과 같은 에너지의 분출이었다. 원래 47㎢의 면적이었던 섬은 화산 폭발로 3분의2 이상이 날아가 버렸는데 이는 여의도 광장의 80배가 넘는 넓이입니다.

그 자리 밑의 바다에는 폭 10km, 깊이 300m나 되는 거대한 구멍이 생겼습니다. 당시 반경 150km 이내에 위치한 건물의 유리창은 모두 깨어 졌고, 또 500km 이내의 모든 마을과 바다 위에 떠 있던 선박들은 글자 그대로 불벼락을 맞았다. 시뻘겋게 달아 오른 바위 덩어리들과 재들이 하늘이 깜깜해지도록 쏟아져 내렸던 것이다.

48시간 동안 밤과 낮을 구분할 수 없는 어둠이 계속되었고 대기에 떠다니는 화산재로 인해 약 2년 동안 일출과 일몰시의 경관은 마치 화재가 난 것 같은 붉은색이었다. 이렇게 하늘로 분출된 먼지들은 대기권 상공 약 40km까지 올라가서, 1년여 가까이나 머물렀으며 그 때문에 햇빛이 차단되어 지구의 평균 기온이 내려갔을 정도였습니다.

이 폭발로 인도네시아의 촌락 300여 개가 완전히 초토화되었고, 사망자는 3만 6천 명이 넘었습니다. 파선된 배만도 6,000척에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폭발의 충격파로 발생한 지진 해일은 높이 30m가 훨씬 넘는 파도를 일으켜 인근의 자바, 보르네오, 수마트라는 물론이고 멀리 호주, 인도, 일본에까지 닿았다.

화산으로부터 3000km나 떨어진 인도 캘커타의 강에서도 300여 척의 배가 침몰되었고, 폭발 다음 날에는 해일이 1만 8천km 떨어진 영국 해협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이런 무시무시한 폭발을 일으킨 크라카토 섬도 원래는 오랫동안 화산 활동을 하지 않은 휴화산이었는데 갑작스럽게 폭발한 것이었다.

화산폭발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실감이 나십니까? 제가 지금 이러한 자료를 읽어 드린 것은 7년 환난의 참상을 조금이나마 느껴 보시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한 사람도 결코 겪어서는 안 될 이 끔찍한 7년 환난의 재앙들을 느껴 보시고, 모두가 신부 단장해 나가시라는 의미에서 이러한 자료들을 설명드리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잘 아시는 폼페이와 같은 경우도 화산 폭발로 한 도시 전체가 멸망해 버렸지요. 어느 한 지역에서만 이런 참상이 발생해도 세계 여러 나라들이 구조대를 보내고 구호물품을 보내며 도와주고 있지만 그렇다 해도 그 상처가 쉽게 극복되지는 않지요.

하물며 이런 화산 폭발과 큰 지진들이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상황이겠습니까? 다른 나라를 도와줄 여유나 겨를도 없이 당장 자기 눈앞에 닥친 재앙을 수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계 6:13절에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진다” 하신 말씀은 실제로 하늘의 별이 땅에 떨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다른 별이 지구와 충돌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지구는 종말을 맞게 되지요. 그러므로 이 말씀은 실제로 별이 지구에 떨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진이나 화산, 전쟁 등으로 인해 하늘로부터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재앙들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곧, 기상 이변 속에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미사일이 발사되고 발사된 미사일이 격추되기도 하며 지구를 돌고 있던 인공위성들이 추락하게 되는 등의 재앙들을 말하는 것이지요. 물론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기도 하구요. 바로 이러한 현상들로 인해 역시 수많은 영혼들이 죽게 됩니다.

계 6:14절에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간다”는 말씀은 지구가 운행되고 있는 법칙들이 뒤죽박죽이 되어 전체적으로 흐트러지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지구에는 사계절이 변화되는 순리가 있고 나라마다, 지역마다 기후의 특색이 있지요. 봄이 가면 곧 여름이 오고 이어서 가을과 겨울이 차례로 옵니다. 또 지역에 따라 여름의 온도는 보통 몇 도이고 겨울의 평균 온도는 몇 도 정도라는 기준이 있습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서 건기가 몇 개월 지나고 나면 다음에는 우기가 몇 개월 지속된다거나, 지역에 따라 1년 강수량이 어느 정도가 되고, 어느 때쯤에는 무슨 꽃이 피며 어떤 새들이 날아오는지 등의 기준들이 있지요.

그런데 7년 환난 때는 큰 지진과 화산, 전쟁들이 계속됨에 따라 이러한 자연의 이치들이 흐트러져 버립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기후가 바뀌어 버리고, 더워야 할 때 덥지 않고 추워야 할 때 춥지 않으니 생태계에도 많은 이상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비가 오지 않아야 할 때 폭우가 쏟아져 홍수가 빈번하게 나거나 반대로 비가 계속 오지 않으므로 토지는 점점 사막화되어 가기도 하지요. 아름답고 풍성했던 자연의 경관이 파괴되고 각종 곡물이나 열매, 어류 등 자연에서 얻던 수확들도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바닷물의 온도도 상승하면서 해상 생태계에도 이상이 생기고 시도 때도 없이 홍수, 해일, 가뭄 등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지구의 본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것이 변하게 될 것을 가리켜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간다”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연의 섭리가 흐트러져 버리면 자연재해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여러 가지 질병들도 창궐하게 됩니다.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많은 사람이 죽은 곳에는 전염병이 쉽게 유행하게 되지요. 또한 환경오염으로 인해 발생하는 새로운 질병들도 곳곳에 나타나게 되고요.

그러면 ‘이런 정도로 파괴된 자연 환경 속에서 과연 사람이 살아갈 수는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때는 사람이 살아가기 힘든 환경이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명맥은 유지됩니다. 모든 재앙들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어느 한계 안에서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가령, 지구 전체가 흔들릴 만한 큰 지진이라 해도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보는 지역도 있습니다. 화산이 폭발하여 대기가 오염될 때도 그에 따른 피해가 심각한 지역이 있는가 하면 그나마 비교적 피해가 덜한 곳도 있습니다. 또 미리 그런 재앙들을 대비해서 방어책을 세워두는 나라들이 있지요.

예를 들면 건물을 지을 때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만들거나 방공호와 같은 대피 장소를 만들기도 합니다. 태풍이 온다 해도 피해를 최대한 막기 위해 대비 시설을 잘 갖춰 놓은 곳과 그렇지 못한 곳과는 피해 규모가 달라지지요. 이렇게 평소에 대비를 잘해 놓은 지역이라면 그나마 피해를 좀 줄일 수 있으나 그렇지 않고 아무 대책도 없는 지역이라면 상상할 수 없이 큰 피해를 입는 것입니다.

계 6:15에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이처럼 굴과 산 바위틈에 숨는다는 것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재해가 일어날 때 방공호와 같이 피할 만한 곳을 찾아 숨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도 부유한 사람들 중에는 유사시에 대비하여 자신의 집에 안전시설을 갖추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런다고 해서 재앙으로부터 온전히 지킴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전혀 대비를 해 놓지 않은 사람보다는 대비를 해놓은 사람 쪽이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아지기는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땅 속 깊은 곳에 숨는다 해도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심각한 재앙들 속에서 하루하루 얼마나 불안한 가운데 살겠습니까?

계6:16-17에 보면 그들의 불안한 심리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두려움으로 인해 산이나 바위, 그 무엇이라도 자신들을 덮어 가려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여러 재앙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 곧 하나님과 주님의 진노하심으로 인한 것이라 말하고 있지요.

사실 인류 스스로가 환경을 파괴하고 전쟁을 일으켜 온갖 재앙을 자초하고 있는 것인데도 이것을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재앙이라 하며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로 그들이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큰 재앙을 보면 “하늘이 노하셨는가 보다”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처럼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들의 죄악을 회개하려거나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습관적으로 하는 말일뿐이지요.

지금 설명 드리는 이런 재앙들이 너무나 크고 두렵기는 하지만 지진이나, 화산, 전쟁 등이 7년 환난 기간 동안에 24시간 내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강도가 크게 더해지기도 하다가 약간 덜해지기도 하는 상황이 반복되지요.

그런 가운데 재앙의 강도가 심할 때는 사람들이 너무나 두려워하고 위축되다가도 강도가 좀 덜해질 때는 다시 두려움을 잊고 예전처럼 자기 유익들을 좇아 살아갑니다. 그래서 결국 7년 환난이 마칠 때까지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는 것이며 그들 중에 일부는 혹 끝까지 살아서 천년왕국을 맞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7년 환난을 통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당연히 이런 재앙들이 임하기 전에 공중으로 들림을 받아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 혼인 잔치에 참여하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의 일가친척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여러분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도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전 세계에 아직까지도 주님을 모르는 모든 영혼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하지요. 불이 난 집에 여러분의 가족이 잠들어 있다면 아마 이것저것 앞뒤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소리를 지르고 문을 두들겨 부수어서라도 잠든 사람을 깨우지 않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잠을 자다가 참혹한 재앙 속으로 떨어질 영혼들을 어찌하든 깨워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모두가 신속하게 신부 단장을 마치심으로 주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실 그날에 여러분이 전도한 수많은 영혼들과 함께 행복한 7년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6-22 오전 11:03:50 Posted
2023-09-15 오후 11:12:52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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