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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52) 짐승 [계 13:11-18]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2.10.07
계시록 13장에서는 ‘짐승’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로 어떤 짐승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지요. 이 짐승은 7년 환난 중에 이 세상의 권세를 잡고 주관해 가는 세력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으로서 결국 적그리스도의 세력이지요.

이들은 세상을 주관해 가는 수단으로서 막강한 성능의 컴퓨터를 사용합니다. 오늘날 컴퓨터의 능력이 어느 정도까지 발전했는지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심지어 스스로 생각하는 로봇까지 만들어서 사람의 흉내를 내게 하는 상황이지요.

오늘날은 사실 컴퓨터의 도움 없이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해도 될 만큼 컴퓨터는 사람들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인간의 삶을 지배해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장차 7년 환난 중에는 지금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뛰어나고 엄청난 능력을 가진 컴퓨터가 등장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은 바로 이 컴퓨터를 세상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요. 그 컴퓨터 안에 저장된 막대한 자료를 통해 이 세상의 구석구석까지도 손끝 하나로 통제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도 있고, 전기와 수도와 식료품까지도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통제하며 분배하지요.

그러니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짐승’의 말에 따라야 하고, 그들의 정책을 지지해야 합니다. 이때 주를 믿는 사람들은 짐승을 따르는 것이 곧 주님을 배반하는 것임을 알기에 어떻게든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으려 하지요. 그 때문에 모진 핍박과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짐승은 자기들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색출하며 자기들에게 협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불이익과 생명의 위협을 가하지요. 이것을 이겨내고 순교하는 사람도 있지만, 끝내 굴복하고 마는 사람도 있지요. 이처럼 혼란스럽고 공포적인 상황이 펼쳐지는 가운데 이전과는 다른 또 하나의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지요.

계 13:11에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짐승은 세상을 주관해 가는 세력으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입니다. 이들은 특정 종교 세력과 교묘히 연합하여 세상 사람들을 미혹하고 더 나아가 주를 믿는 사람들도 미혹하지요.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권세를 잡기 위해서는 이처럼 돕는 세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처음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세상의 권세를 잡아 가게 될 때는 사실 그들을 견제하는 세력들도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권세를 다 잡는 것은 아니지요. 또한 내부적으로도 온전히 하나 되지 못함으로 권력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상황도 생깁니다.

때로는 내부적인 분열과 갈등도 생기고, 외부적인 도전도 있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짐승 곧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 점점 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해 갑니다. 잠시 내부적인 분열이 있는 듯하다 가도 다시 뭉쳐서 더 큰 힘과 권세를 발휘하지요.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의 세력에게 동조하는 것이 자신들이 살 길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적그리스도의 세력과 하나 되려 하지요. 이런 분위기 가운데 등장하는 세력이 바로 또 다른 짐승입니다. 이는 먼저 나온 짐승을 돕는 또 하나의 세력으로서 적그리스도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갑니다.

이전에는 짐승 혼자의 능력으로 하지 못하던 부분까지도 보충해 주지요. 예를 들면 전 세계를 통제하는 컴퓨터 시스템이 먼저 나온 짐승에 의해서도 가동되지만 나중에 나온 또 다른 짐승에 의해서도 가동됩니다. 그러면서 세상은 더 완벽하게 통제되며 적그리스도의 세력 안에 들어가는 것이지요.

또 다른 짐승은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한다 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겉으로 표방하는 것과 실제 속마음과는 다르다는 뜻입니다. 겉으로는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자신들이 돕고자 나서는 것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 역시 용 즉 적그리스도의 세력이지요.

그러니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역시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들이며 참람한 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먼저 나온 짐승이 종교 세력과 연합하여 진리를 교묘히 변질시키며 사람들을 미혹했듯이 또 다른 짐승도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지만 속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온갖 불의와 불법이 가득하지요.

계 13:12에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또 다른 짐승의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나중에 나온 짐승도 먼저 나온 짐승이 가진 권세와 능력을 가집니다. 결국은 다 하나의 목적을 가진 세력이지만 겉으로 볼 때는 마치 다른 세력처럼 보이지요. 그래야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지지를 받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을 지지합니다. 그런데 만약 A와 B가 사실은 같은 편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결국 같은 편이니까 저러는 거지…’ 하며 A와 B 둘 모두를 신뢰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B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A가 B를 적극 지지하고 나선다면 사람들은 그 말에 신뢰를 가지게 되지요.

더욱이 A라는 사람이 능력도 있고 그만큼 훌륭한 사람이라면 더 그럴 것이고요. 이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짐승 역시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세력입니다. 그런 그들이 먼저 나온 짐승을 지지하며 적극 협력해 나가는 것이지요. 겉으로는 먼저 나온 짐승과 같은 편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고 말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듣고 먼저 나온 짐승을 더 대단하게 생각하지요. ‘아, 정말로 먼저 나온 짐승이 하는 일들이 좋고 옳은 일인가보다’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나중 나온 짐승이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한다.” 말씀합니다.

나중에 나온 또 다른 짐승은 먼저 나온 짐승을 즉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적극 도와갑니다. 이렇게 하는 목적이 결국은 그것만이 자신들도 살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먼저 나온 짐승과 연합하여 하나 될 때만이 함께 절대적인 권세와 힘을 누리며 세상을 지배해 나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자신들에게도 유익이 돌아오는 것이고요.

먼저 나온 짐승과 또 다른 짐승은 서로 간에 협력하며 더 큰 힘과 권세를 갖게 됩니다. 이제 사람들은 이 두 짐승에게 미혹되어 그들을 지지하고 심지어 사랑하게 되지요.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그들만이 자신들을 구해줄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 두 짐승에게 조금이라도 어떤 문제가 생기면 함께 걱정하고 낙심하며 실망하지요.

그러다가 다시 문제가 해결되고 힘을 얻으면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그들을 따르고 지지합니다. 이런 모습은 7년 환난의 막바지로 갈수록 더 심해지지요. 사람들은 스스로의 판단이나 이성(理性)보다는 당장 눈앞의 유익과 생존을 위해 적그리스도의 세력에게 동조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짐승은 사람들 앞에서 큰 이적을 행합니다.

계 13:13에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적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베풀어지는 것과는 다릅니다. 다만 그 당시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놀라운 일처럼 보인다는 의미이지요. 컴퓨터를 동원하여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을 해낸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서로 상반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불이 땅에 내려오게 한다는 것은 첫째로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무기들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막강한 군사력까지 갖추고 세상을 통제해 나간다 했지요. 그러므로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세력이 있으면 가차 없이 공격해서 자신들의 힘을 보여 줍니다.

가공할 만한 무기들이 동원되어 하늘에서 엄청난 불과 폭탄을 쏟아내지요. 최첨단 무기들이 하늘로부터 정확하게 목표물을 찾아 파괴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되고, 점점 더 짐승 앞에 굴복해 나가게 되지요. 그런데 짐승은 자신들의 능력을 꼭 이와 같은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로부터 땅에 불을 내리는 이적을 행한다는 두 번째 의미는 문명의 혜택을 의미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얻게 되는 이유는 사람들의 삶에 유익을 주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7년 환난으로 삶이 피폐해진 이 땅의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안정과 경제적인 도움을 줄 세력을 간절히 기다리게 되지요.

이때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배경으로 등장하여 사람들의 삶을 통제해 나가는 것입니다. 대신 사람들 편에서는 질서의 안정과 경제적인 혜택을 누리게 되지요. 그러므로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 주며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합니다.

이처럼 능력 있는 자신들을 따를 때만이 갖가지 혜택과 안정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발달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문명의 혜택을 제공합니다. 그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사람들이 도저히 꿈도 못 꾸던 일들을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실현해 주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그때는 개인이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 극히 불가능한 상황이 됩니다. 모든 것이 적그리스도의 수중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피폐해진 상황에서 개개인이 그런 혜택을 누리기는 어렵지요.

그런데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금 예전처럼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는 그때 상황으로서는 실로 엄청난 일이지요. 하늘에서 불을 끌어내리는 것에 비할 만큼 놀라운 이적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계 13:14에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7년 환난 중에 이 세상을 주관하는 적그리스도는 자신들의 힘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 줍니다. 당시 이 땅에 남은 사람들은 주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과 주님을 알았어도 불법을 행하던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따르게 되지요.

그나마 이런 가운데서도 주님을 믿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남아 있는데 짐승은 이러한 사람들까지도 미혹하려 합니다. 발달된 과학 문명과 자신들의 능력을 내세우며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우리만이 바로 너희를 구원해 줄 수 있다. 우리를 믿고 따르라’ 이런 주장들을 해 나가지요. 계속적으로 반복하며 세뇌해 나갑니다.

그러면서 믿는 사람들까지도 점점 하나님을 대적하며 진리를 떠나 불법 가운데 살도록 만들지요. 이러한 모든 상황들이 바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우상을 만든다는 것이 꼭 눈에 보이는 특정한 형상을 만드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미화하여 그들을 따르게 하고 지지하며 그들의 주장대로 순종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우상을 만드는 것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왜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이라 표현한 것일까요? 칼은 싸움을 위한 무기로서 악한 곳에 사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이란 지금 발달된 과학 문명과 지식이 악한 목적으로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의미이지요. 짐승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핍박하며 죽이는 데에 악한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도 때로는 위기를 맞고 도전을 받는 상황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반대 세력들을 무참히 짓밟으며 다시 더 강한 세력으로 나오지요. 그러면서 적그리스도는 더 큰 지지를 받게 되고 마침내는 사람들로부터 순종과 숭배를 받는 “우상”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계 13:15절에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우상의 본색이 드러나고 있지요. 사람들 앞에 우상처럼 서게 된 적그리스도는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세계는 하나”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표어를 내세우며 결속과 단합을 강조해 나갑니다. 이처럼 하나 되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제시해 나가지요. 이것은 말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만한 힘과 권세가 있지요.

우상에게 생기를 주었다는 것이 이처럼 그들에게는 막강한 힘과 권세가 주어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적그리스도의 주장에 반대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자기 유익에 맞지 않기 때문에 반발하는 세력들도 있지만, 주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반대하게 되지요. 그러면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세계의 매스컴과 홍보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들을 반대하는 세력을 궁지로 몰아갑니다.

“우리는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다. 환경의 회복과 더 많은 문명의 혜택을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에게 반대하는 것은 결국 전 세계가 하나 되려는 노력을 방해하는 것이다. 세계 모든 사람들을 반대하는 행위이다.” 이렇게 선전해 나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반대하는 세력들이 하는 행동은 모두가 테러와 같은 위협으로 간주합니다.

이러한 주장이 통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정말로 적그리스도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간주하지요.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바로 이러한 지지를 얻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때 믿는 자들에 대한 더 혹독한 박해와 순교가 일어납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아주 치밀한 수단을 동원합니다. 그것이 666표이지요

계 13:16-18에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이 666표에 대해서는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대다수 사람들이 아마 한 번 이상은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에 대한 논란도 많지요. 거리에서 미래에 다가올 이 666표의 사건에 대해 외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666표는 이미 우리들의 삶 속 깊숙이까지 파고 들어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침투하여 나중에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을 만큼 깊숙이 빠져들어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지요. 본문에 보면 “모든 자 곧 빈부와 직위의 고하 권세의 유무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표를 받게 한다” 했습니다. 이 표는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했고, 육백육십육이라 했지요.

이 표를 받지 않은 사람은 우선 매매 즉 사고 파는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매매를 언급한 것이지만, 이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를 비롯하여 모든 경제 활동과 사회 활동까지도 제약을 받게 되지요. 여러분이 한번 상상력을 동원해서 한 달 동안만이라도 매매를 전혀 할 수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먹는 것, 입는 것을 비롯하여 심지어 몸을 씻는 것까지도 삶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것을 포함하여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교통수단도 이용할 수가 없고, 세상 사람들이라면 아파도 병원이나 약국에 갈 수가 없지요. 어떠한 복지 혜택이나 문명의 혜택도 누릴 수 없고, 그야말로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해 집니다.

더구나 적그리스도 치하에서라면 이 표가 없이는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것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이 표가 있는 사람만이 적그리스도 치하의 시민으로 인정받지요. 그러니 표를 받지 않은 사람은 사회적인 삶 자체를 포기해야 합니다.

설령 ‘나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라도 그 표를 안 받겠다’는 사람이 있다 해도 적그리스도가 그를 가만 두는 것이 아니지요. 계속해서 표를 받도록 위협과 압박을 가하다가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결국 체포하여 고문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과연 이 짐승의 표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지금도 많은 논란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 바로 이 표가 오늘날 거의 모든 상품에 찍혀 있는 “바코드”라는 의견입니다. 물론 이런 의견에 반대하여 본문에서 말씀하는 표라는 것이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라고만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적그리스도에게 동조한다는 자체가 이미 그 표를 받았다는 의미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여러분이 지금까지 들으신 7년 환난과 적그리스도의 정권 장악 과정에 대해 떠올려보면 이것이 단순히 상징적 의미만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표는 분명히 매매를 통제하는 수단이라 했고, 이것은 실체를 가진 표가 될 수 있지요.

그러면 참고로 먼저 바코드라는 것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바코드”라는 것은 줄무늬 형태의 표를 통해 어떤 정보를 저장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여러분이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 물건에 찍혀 있는 이 바코드 부분을 계산대의 인식 기계에 가져다 대면 ‘삑’ 소리가 나면서 화면에 정보가 뜹니다.

이 바코드는 사람이 얼핏 보기엔 가느다란 줄무늬들을 나열해 놓은 것에 불과하지요. 그러나 컴퓨터가 이것을 인식할 때는 다릅니다. 각각의 막대의 길이와 굵기에 따라 두 개씩의 줄이 짝을 이루며 하나의 숫자를 나타내게 되지요. 이 숫자의 조합을 통해 그 상품의 생산 및 가격 등에 대한 정보를 나타내게 됩니다.

이 바코드를 자세히 보면 다른 막대기보다 긴 세 쌍의 막대기가 있습니다. 바코드의 제일 앞과 중간, 제일 뒤에 있지요. 이는 컴퓨터가 바코드를 식별할 때 처음 시작점과 중간, 마지막을 표시하기 위한 것으로서 같은 모양의 막대기가 세 번 나옵니다. 이 같은 모양의 막대기가 상징하는 숫자가 바로 ‘6’입니다.

모든 바코드에는 이 ‘6’을 상징하는 막대기가 세 번씩 들어가지요. 그래서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사람들은 이 바코드를 ‘666’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코드를 개발하는 사람들이 바코드 식별에 기준이 되는 숫자를 왜 ‘6’으로 쓰게 되었을까요? 이는 기술상의 이유라고 합니다.

컴퓨터가 바코드 정보를 처리할 때에 오류가 가장 적게 나오는 이상적인 숫자가 ‘6’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 이유가 어떻든 간에 결과적으로는 바코드라는 시스템 자체에는 ‘6’이라는 숫자가 세 번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을 성경에 기록된 내용과 전혀 상관없이 단순한 우연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은 이 바코드를 통해 세상에 유통되는 거의 모든 물건이 통제될 수가 있습니다. 어떤 물건이 어디로 가서 언제 팔리는지, 얼마나 잘 팔리는지, 재고는 얼마나 있는지 등 이런 것을 다 알 수 있지요.

상품이 판독기를 지나가게 되면 순식간에 그 상품의 정보가 읽혀지고 컴퓨터에 입력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명 포스 시스템이라 하지요. 이렇게 바코드가 널리 사용되고 그 편리성이 인식되면서 사람들은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의 몸에 바코드를 새겨 넣을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하는 것이었지요.

바코드 안에 그 사람에 대한 신상 정보를 비롯하여 갖가지 정보를 넣어서 신체 일부분에 바코드를 새겨 넣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물건을 사거나 어디를 갈 때도 또한 은행 거래를 비롯한 경제 활동을 할 때도 신분증이나 카드, 통장, 현금 등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게 되지요. 판독기에 바코드가 찍힌 부분만 갖다 대면 자동으로 다 처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편리한 시스템을 실용화하기 위해 계속해서 연구를 해 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이 바코드보다 더욱 발전된 형태의 새로운 모델이 나왔지요. 그것은 바로 인체 속에 아예 넣을 수 있는 ‘칩’과 같은 형태의 것입니다.

예를 들면, 길이가 1센티미터도 안 되는 가느다란 캡슐 형태의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주사기로 사람의 몸에 넣을 수 있지요. 이 작은 칩 안에는 정보 기억 장치와 안테나, 전지 등의 여러 장치가 있습니다. 정보 기억 장치라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그 정보를 통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지금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현재 몸 상태는 어떤지 등까지 알 수 있습니다. 또 안테나는, 그 정보 기억 장치에 들어있는 정보를 외부의 기계로 보내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다가 칩을 작동시키기 위한 전지도 넣는데 놀랍게도 이 전지는, 생물체의 몸 안에서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충전한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이미 개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실제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직은 주로 의료용이나 군사적인 목적으로 쓰이고 있지요. 예를 들어 치매 환자의 몸에 이 칩을 넣어두면 환자가 집을 나가 길을 잃거나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또는 특별한 병을 앓고 있거나 특이 체질인 사람이 사고를 당했을 때 이런 환자에게는 조치를 잘못하면 도리어 위험이 될 수 있지요. 이와 같은 경우에 몸에 내장된 칩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벌써 이러한 칩을 상품화하여 판매하는 회사도 있고, 실제로 몸에 넣은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어떤 이물질을 집어넣는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몸에 칩을 넣는 것이 얼마나 유용하고 편리한지를 계속적으로 듣게 되면 점차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하지요.

꼭 칩을 몸에 넣는 것이 아니라 해도, 신체의 특정 부분에 간단히 부착만 하면 너무나 편리해질 수 있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신분증이나 지갑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으니 분실의 염려도 없고 너무나 편리하지요. 택시나 버스에 지갑을 두고 내리거나 도둑맞을 걱정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방법을 흉악한 범죄자들을 단속하는 데에도 적용한다고 합니다. 늘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는 강력 범죄 경력자들에게 이런 칩과 같은 장치를 적용해서 일일이 그들의 소재를 파악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유용성들을 들면서 칩이나 바코드를 인체에 장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갈수록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지요. 여기다가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이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점점 더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몸에 칩을 넣었을 때 얻게 될 유익이나 편리성을 계속 강조하면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지요.

당장 질병에 걸려 있지 않다 해도 이런 표나 칩을 지니고 있으면 응급 사태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칩 안에 들어 있는 정보를 통해 병원에서 검사하는 시간이나 오진의 가능성을 줄이고 즉각적인 치료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식으로 좋은 점들을 계속 듣다보면 사람들은 거부감을 조금씩 떨쳐 버리게 됩니다.

더욱이 장차 적그리스도가 지배하는 7년 환난 중에는 이런 유익함은 둘째 치고라도 이 표를 받지 않으면 생활 자체가 안 되지요. 결국 사람들은 대부분 이 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표라는 것이 꼭 바코드 형태나 어떤 칩의 형태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른 어떤 새로운 형태의 것이 나올 수도 있고, 더 획기적인 방법이 나올 수도 있지요.

형태와 방식은 어찌되었든 그 근본은 결국 666 짐승의 표라는 사실입니다. 이 666 짐승의 표가 바코드의 형태든 칩의 형태든 실제로 사람들의 삶에 적용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부정적인 면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아찔합니다.

오늘날 어떤 나라들은 입국을 할 때 지문을 등록하게 되어 있는데 이것만 해도 인권침해에 대한 논란이 많지요. 666 짐승의 표가 사람에게 적용되면 개개인 모두 24시간 철저히 감시, 통제된다는 사실입니다.

적그리스도 세력은 거대한 컴퓨터에 저장된 개인의 모든 정보와 각 사람의 몸에 부착된 장치를 통해 얻는 정보가 물샐 틈 없이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하지요. 어디서 무엇을 타고 어디로 갔는지, 무엇을 샀고, 무엇을 먹었고, 하루 24시간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등이 낱낱이 통제되는 것입니다.

이런 가능성을 사람들도 알기 때문에 이 칩을 모든 사람에게 주입한다는 것이 아직까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7년 환난 특히 후 3년 반이 되면 표를 받는 것에 예외가 있을 수가 없지요. 세계적인 차원에서 세뇌하듯이 이 표를 받아야 하는 당위성을 홍보합니다. 끊임없이 그 필요성을 역설할 것이고, 표가 없으면 당장의 삶이 불가능해지지요.

결정적으로 이 표를 받지 않으면 그것은 적그리스도에 대한 반발로 받아들여집니다. 왜냐하면 이 666 짐승의 표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 표를 받는 것은 짐승 즉 적그리스도의 세력에게 동조한다는 의미이고, 이 표를 받지 않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세력에게 반대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 하에서는 이 표를 받지 않으면 국민이나 시민으로서 어떠한 권리도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위협으로부터도 보호받을 수 없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것조차 보장받을 수 없지요. 그러니 그때가 되면 대부분이 순순히 이 표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짐승의 표가 꼭 현재에 쓰이고 있는 바코드나 생체칩이라는 말은 아니지요. 또한 지금도 바코드가 찍힌 물건을 사용하거나 거래하면 안 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오늘날의 과학과 기술이 이 정도로 발전되었는데 앞으로는 얼마나 더 발전되겠습니까? 멀지 않은 장래에 모든 사람들의 삶과 심지어 생각까지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나올 수가 있지요. 장차 7년 환난 때, 그러한 수단이 적그리스도에 의해 사용된다는 말입니다.

전 세계를 통합하여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사람들에게 강요하게 될 바로 그 표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그 당시 이 땅에 남아 있을 사람들을 위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휴거되어 올라갈 사람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지요. 다만 이런 말씀들을 통해 마지막이 얼마나 가까웠고, 성경 말씀이 얼마나 정확히 성취되는지를 여러분이 깨달아 보시라는 말입니다.

왜 이 표를 받는 것이 사망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일까요? 짐승의 표는 곧 적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이 표를 받는 것은 적그리스도에게 동조한다는 의미이며 이것이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지요. 적그리스도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며 주님을 부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적그리스도에게 동조하는 것이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7년 환난 때 이 땅에 남은 사람들 중에는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적그리스도의 음모에 대항하여 세상을 향해 외치는 사람들도 있지요. 또한 휴거되기 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일어날 이 일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남깁니다.

그러니 이 땅에 남은 사람들 중에 상당수는 이미 짐승의 표에 대해 들어 알고 있지요. 그럼에도 짐승의 표를 받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넘어간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자신들의 유익과 편의를 위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또한 끝까지 이 표를 받지 않으려던 사람도 생명의 위협과 끔찍한 고문 앞에 결국 표를 받습니다. 이 표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인 적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들을 따르겠다는 의미가 되지요. 그에 대한 결과는 이미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다음 시간부터는 14장으로 들어갑니다.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 사람들은 상상조차 못하던 일들이 지금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비추어 보면 이것이 곧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유럽연합의 움직임, 세계정세의 흐름, 세계적인 재난과 재앙들, 그리고 성경 말씀의 성취 등,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웠다는 징조입니다.

이러한 세대를 살고 있는 여러분은 더욱 깨어 신부 단장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도 신속히 이루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영광의 그날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10-12 오전 11:24:12 Posted
2023-06-23 오후 3:16:1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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