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짙은 어두움이라도 빛을 비취면 어두움이 물러가듯이 주님의 부활은 참 빛이신 주님께서 온 세상에 비취신 날이며, 사망과 고통의 흑암 속에 살던 영혼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날입니다. 이날로부터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얻고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되었지요. 그러면 부활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말씀한 대로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죽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는 생령으로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지요(창 2:17). 그러나 아담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었고 ‘사망’이라는 저주를 받아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영이 활동을 멈춰서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육체의 죽음보다 더 심각한 것이 영혼의 죽음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람의 영혼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대로 영원한 사망에 처하게 됩니다. 바로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형벌을 받는 것이지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생들을 가만히 보고만 계실 수 없었습니다. 인생들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으로 예수님을 예비해놓으셨지요. 인생들이 자기 죗값으로 달려야 할 십자가 형틀에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주셔서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이마다 죄 사함을 받고 새 생명을 얻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영적 부활’이라고 하며, 바로 주님의 부활에 담긴 첫 번째 의미입니다.
둘째로, 죽어서 썩어 없어질 우리 몸이 영원한 생명을 얻었음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고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히 9:27).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몸이 늙고 병들며 신체 기관이 퇴화하여 생명 활동이 둔해지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여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지요(창 3:19).
그런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성도가 육의 수명을 다해 장사 되었어도 ‘죽었다’ 하지 않고 ‘잠들었다’ 합니다. 왜 그럴까요?
때가 되면 죽었던 몸이 다시 살아나 영생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우리도 결국은 죽어서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을 믿어 주님과 하나 되면 우리가 죽는다 해도 다시 살아날 수 있고, 또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부활 사건 때문이지요.
3년 공생애의 고된 사역으로 여위셨던 예수님께서는 참혹한 수난을 겪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전 이미 모진 채찍질로 온몸이 찢기셨고 손목과 발목에는 대못이 박혀 구멍이 났으며, 가시관 쓰신 머리도 여기저기 찢어져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로 붉게 물드셨지요. 이렇게 운명하신 예수님을 로마 병정은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고, 그러자 몸속에 남아 있던 물과 피가 다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귀하신 몸이 만신창이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3일 만에 다시 사셨고, 가장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신 후 제자들과 오백여 성도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부활체를 입으신 주님께서는 육의 몸을 입으셨을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이셨습니다. 상처도 전혀 없으셨고, 온전하고 아름다운 신령한 몸이셨지요.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도, 제자들도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모든 문이 잠겨 있는 집안에 홀연히 나타나기도 하셨습니다. 이는 부활체가 사람의 눈에 보이지만 이 땅의 사람의 몸과는 다르며 영의 차원에 속한 신령한 몸임을 말해주지요.
주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었던 것처럼 주를 믿는 성도의 부활도 반드시 이루어질 사실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말씀한 대로 성도의 부활 사건은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일어납니다.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시면 먼저 구원받고 죽어 장사된 성도들의 몸이 부활합니다. 부활한 몸은 공중으로 끌어올려지고 공중에 강림하시는 주님과 함께 내려온 그들의 영혼과 결합하지요. 이때 부활한 몸은 예전 살았을 때의 몸이 아니라 썩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체’라 부릅니다.
주님을 믿고 소천한 성도들의 몸이 먼저 부활한 후에 이 땅에 살아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순식간에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이를 ‘휴거’라 하지요. 이 땅에서 불구의 몸이었더라도 전신이 온전하고 아름다운 신령한 몸을 입게 됩니다.
이처럼 성도들의 몸이 순식간에 부활체를 입으면 그 위에 빛나는 세마포 흰옷이 입혀지고 공중에서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7년 동안 혼인잔치에 참여합니다.
바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몸이 부활체를 입는 사건을 ‘육적 부활’이라고 하며, 주님의 부활에 담긴 두 번째 의미입니다.
종종 임종체험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눈물을 펑펑 흘리며 그동안 잘못 살아온 삶을 참회한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이렇게 죽을 텐데, 왜 그토록 아등바등 욕심을 냈었나? 왜 미워하며 추하게 살았을까? 왜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잊었는가? 이제는 다시 태어난 마음으로 새롭게 살아야겠다.’ 이런 후회와 다짐을 하지요.
우리가 예전에 허물과 죄로 죽었다가 주님을 믿고 다시 살아나 영생과 부활의 소망을 가졌음을 믿는다면 우리도 이처럼 새 마음을 품고 ‘이제는 정녕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리라. 이제 더 이상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주를 위해 살리라.’ 결단하며 부활에 합당한 마음을 다져야 합니다.
그래서 부활절을 기점으로 더욱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 부활의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로새서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