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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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하나님의 말씀과 무수한 치료의 역사!
인공위성 공중파 및 케이블TV를 통해 전세계 144개국에 전파!
2003년 11월 12일부터 14일까지 러시아 제2의 수도이자 문화 예술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개최된「2003 이재록 목사 초청 러시아 연합대성회」는 러시아 기독교 사상 최대 인파, 인공위성을 통해 성회 실황 러시아 전역 및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금번 성회를 통해 강사 이재록 목사는 창조주 하나님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임을 러시아 국민들에게 담대히 선포하였다.
생명의 말씀과 권능의 역사를 통해 70년 동안 공산주의로 굳었던 러시아 심령들이 새롭게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재록 목사의 기도를 통해 수많은 환자들이 치료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지식층에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가 전파되었다.
[MMTC 제13기 비전트립 선교보고] 김태한 목사(MMTC지도간사)
MMTC(만민세계선교훈련원)에서는 지난 1월 13일(금)부터 25일(수)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에서 선교훈련을 실시하였다. 훈련생들이 준비한 공연, 이재록 목사를 통해 나타난 권능 비디오 상영, 이재록 목사의 간증소개 및 설교, 손수건 기도의 ...
날짜2006년 2월 5일 일요일
출처만민뉴스 제308호
조회수11921
성결의 복음과 권능의 역사는 동토의 나라 러시아와 에스토니아에도!
MMTC(만민세계선교훈련원)에서는 지난 1월 13일(금)부터 25일(수)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에서 선교훈련을 실시하였다. 훈련생들이 준비한 공연, 이재록 목사를 통해 나타난 권능 비디오 상영, 이재록 목사의 간증소개 및 설교, 손수건 기도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비전트립 첫 번째 국가인 러시아에서는 가정교회(담임: 베라 목사), 하나님의 말씀교회(담임: 블라지미르 오시포프 목사)와 마약 갱생원을 방문하였다. 또한 러시아 크리스천교회연합(ACCR) 1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받아 공연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마약 갱생원의 알렉산더 형제는 「이재록 목사 초청 2003 러시아 연합대성회」에 참석하여 걸을 수 없었던 다리를 치료받았으며, 3년이 지난 지금은 정상인과 같이 뛰어다닐 수 있다고 간증하였다.
또한, 농아교회 목사님께서는 "많은 농아들이 치료받아 일반교회에 출석하고 있다."고 간증할 정도로 「이재록 목사 초청 2003 러시아 연합대성회」의 여파는 대단했다. 이 외에도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아직도 그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며 감사와 기쁨의 마음을 전하는 모습이 실로 감동적이었다.
비전트립 두 번째 국가인 에스토니아는 유럽연합(EU) 가입 국가이며, 라이프 TV를 통해 「이재록 목사 초청 2003 러시아 연합대성회」가 방영된 나라이기도 하다. 첫 방문지인 요르비 지역 연합예배에서는 에스토니아의 목회자들도 참여했는데 이재록 목사의 권능 사역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만민중앙교회 방문을 적극적으로 희망했다.
이처럼 금번 비전트립을 통해 성결의 복음과 권능의 역사들을 사모하는 것을 피부로 체험하며 해외 선교의 꿈과 비전을 구체화하여 선교사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글 : 김태한 목사(MMTC지도간사)
MMTC(만민세계선교훈련원)에서는 지난 1월 13일(금)부터 25일(수)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에서 선교훈련을 실시하였다. 훈련생들이 준비한 공연, 이재록 목사를 통해 나타난 권능 비디오 상영, 이재록 목사의 간증소개 및 설교, 손수건 기도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비전트립 첫 번째 국가인 러시아에서는 가정교회(담임: 베라 목사), 하나님의 말씀교회(담임: 블라지미르 오시포프 목사)와 마약 갱생원을 방문하였다. 또한 러시아 크리스천교회연합(ACCR) 1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받아 공연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마약 갱생원의 알렉산더 형제는 「이재록 목사 초청 2003 러시아 연합대성회」에 참석하여 걸을 수 없었던 다리를 치료받았으며, 3년이 지난 지금은 정상인과 같이 뛰어다닐 수 있다고 간증하였다.
또한, 농아교회 목사님께서는 "많은 농아들이 치료받아 일반교회에 출석하고 있다."고 간증할 정도로 「이재록 목사 초청 2003 러시아 연합대성회」의 여파는 대단했다. 이 외에도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아직도 그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며 감사와 기쁨의 마음을 전하는 모습이 실로 감동적이었다.
비전트립 두 번째 국가인 에스토니아는 유럽연합(EU) 가입 국가이며, 라이프 TV를 통해 「이재록 목사 초청 2003 러시아 연합대성회」가 방영된 나라이기도 하다. 첫 방문지인 요르비 지역 연합예배에서는 에스토니아의 목회자들도 참여했는데 이재록 목사의 권능 사역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만민중앙교회 방문을 적극적으로 희망했다.
이처럼 금번 비전트립을 통해 성결의 복음과 권능의 역사들을 사모하는 것을 피부로 체험하며 해외 선교의 꿈과 비전을 구체화하여 선교사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글 : 김태한 목사(MMTC지도간사)
만민세계선교훈련원(MMTC) 러시아, 에스토니아 비전트립
세계선교를 이루어 나갈 권능 있는 선교사 양성기관인 「만민세계선교훈련원」(원장: 이중원 목사)에서는 지난 1월 13일(금)부터 러시아와 에스토니아에서 선교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
날짜2006년 1월 23일 월요일
출처만민뉴스 제307호
조회수13188
세계선교를 이루어 나갈 권능 있는 선교사 양성기관인 「만민세계선교훈련원」(원장: 이중원 목사)에서는 지난 1월 13일(금)부터 러시아와 에스토니아에서 선교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금번 비전트립은 「2003 이재록 목사 초청 러시아 연합대성회」 이후 선교사 파송에 이어 현지 협력 교회들의 사모함 속에 이루어졌다. 금번 비전트립 시 본교회 성장사례 발표, 마약갱생원 방문, 러시아 크리스찬교회연합(ACCR) 10주년 기념행사 참석 등을 통해 해외 선교의 꿈과 비전을 구체화하여 능력 있는 선교사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게 된다.
금번 비전트립은 「2003 이재록 목사 초청 러시아 연합대성회」 이후 선교사 파송에 이어 현지 협력 교회들의 사모함 속에 이루어졌다. 금번 비전트립 시 본교회 성장사례 발표, 마약갱생원 방문, 러시아 크리스찬교회연합(ACCR) 10주년 기념행사 참석 등을 통해 해외 선교의 꿈과 비전을 구체화하여 능력 있는 선교사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게 된다.
[특집 3] 러시아 선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 조효근 목사 (들소리 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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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5년 3월 4일 금요일
출처
조회수7243
|특|집|3| 러시아 선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러시아 정교의 이해
조효근 목사 (들소리 신문 발행인)
러시아 정교회는 제3의 로마를 자청하는 러시아 제국의 야망과 함께 로마 카톨릭과는 또다른 성격의 기독교이다. 러시아 선교에 관심 있는 이들은 그들의 기독교 1천년이 자부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아야 한다.
러시아는 유럽적인 성격과 아시아적인 사고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소비에트 러시아 시절에는 지구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2,240만 km2 영토로서 미국의 3배, 중국의 2.5배, 인도의 7.6배, 한반도의 104배의 크기이다. 영토뿐 아니라 150개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200여 종족의 결집체가 러시아임을 아는 이들은 그들의 결집력에 대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모스크바 크레믈린의 1547년 1월 17일, 이날은 이반 4세의 황제 등극의 날이었다. 크레믈린 궁 우스핀스키 사원에서 귀족들과 외국사절들이 참석한 가운데 러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황제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총대주교 마까리가 이반 4세에게 황금의 관을 씌워주고 짜르라 호칭하였다. 짜르(러시아 표현은 짜리)는 황제로서 지상의 통치권과 천상의 통치권을 가질 뿐 아니라 서로마 교황권까지 함께 가진다는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하면 종교와 정치를 한손에 쥐고 휘두르는 권세자였다.
이반 4세는 당시 학덕이 탁월한 마까리 총대주교의 도움으로 제왕의 법도를 익혀 강력한 군주가 되었다. 저들 러시아는 이 무렵 콘스탄티노플을 중심한 동로마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 투르크에게 멸망하자 동로마 기독교 종주의 위상을 러시아로 옮겨, 그들 동로마의 계승자로 제3의 로마를 자처한 것이다. 제1로마는 카톨릭의 터전이다. 제2로마는 동로마 또는 비잔틴 제국을 말한다.
16세기 수준에서 러시아가 자신을 제3의 로마로 자처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자부심이다. 저들은 역사를 훌쩍 뛰어넘어 1917년 10월 혁명 곧 볼세비키 혁명으로 전 세계의 양분화까지 시도한 무모함과 방대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는 민족임을 알 수 있다.
러시아 기독교는 동로마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카톨릭의 고난에 기초한 십자가 보다는 화려한 부활을 더욱 선호한다. 러시아 기독교는 그들 민족성과 함께 웅장하고 방대함을 가졌으나 '고난'에 기초한 신앙을 배우지 못했다. 볼셰비키 공산당 혁명을 종교적 의미로 해부하면 그것이 곧 메시아 운동 즉, 예수 재림 운동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서유럽에 대한 처절한 열등감 때문에 2천 년 동안 기다리던 예수가 재림하지 않으니 예수 재림의 이상을 만들자 했던 것이다. 그 이상을 세계 공산당운동으로 이루어 보고자 한 것이 러시아의 야심이었다.
1. 민족의 열등감과 기독교
러시아의 문명기는 키예프 루시 올레그 공국시대(AD 882-)부터 약 350여년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고르 공후 치세에는 국력이 넘쳐 감히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려 했다. 실제로 공격했었다. 키예프 루시는 콘스탄티노플로부터 공물을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고르 공후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내 올가는 세 살 난 아들 스바토 슬라브의 섭정자로 나섰다. 올가는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하고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환대를 받았을 뿐 아니라 그리스 정교의 세례를 받았다.
올가의 개방적 태도는 러시아 전 국민에게 강한 거부감으로 나타났다. 슬라브 민족은 그들 고유의 원시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하늘의 빛의 신인 스바로그, 창조자인 다즈보그 , 천둥과 번개 또는 전쟁의 신 페룬, 바람의 신이며 무사들의 보호자인 스트리보그 등을 믿었다. 이는 민족의 신들로 그들 민족의 기상을 말해 주는 것이다.
키예프는 기독교를 거부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은 그냥두지 않았다. 여러 가지로 압력을 가하며 접근하였으나 올가 섭정자는 국민의 거부감을 이유로 로마 카톨릭 쪽으로 접근하였다. 이것은 곧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되었고 정교와 카톨릭 사이에 알력으로 발전한다. 그러는 사이 스바토 슬라브가 장성하여 모친 올가의 섭정을 물리치고 AD 962년 제4대 키예프 루시의 공후가 된다. 스바토 슬라브는 나라의 지경을 넓혀 제국을 형성할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전쟁을 좋아하는 스바토 슬라브가 전쟁터에서 죽은 후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이 왕위 계승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자 막내인 블라디미르가 스칸디나비아로 건너가 용병을 구해와 둘째 형을 죽인 큰 형 이야로폴그를 몰아내고 제6대 공후로 등극했다.
블라디미르는 확실한 지도력을 갖춘 지도자이나 교활하고 음흉한 면이 있다고 알려지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성자 블라디미르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그가 정치가로도 성공하고 나라와 종교를 위한 지도력을 크게 발휘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블라디미르는 교회를 많이 짓고 학교를 세우는 등 백성들의 장래를 위해서 많은 공적을 남겼다. 그리고 블라디미르는 비잔틴 제국과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AD 989년 비잔틴 제국의 공주 안나와 결혼하고 정교회를 키예프 루시의 종교로 받아들였다. 드디어 블라디미르 대에 이르러 러시아는 그리스 정교회 또는 러시아 정교회를 수립하는 명실상부한 기독교가 되었다.
이삭 성당 전망대에서 바라본 상트 페테르부르그 시내 전경
2. 제3의 로마, 러시아 신앙
러시아는 15세기에 이르러서 크게 융성하였다. 모스크바 크레믈린 궁 박물관에 가 보면 저들 러시아가 주변 세력들을 얼마나 무자비하게 짓밟으며 영토를 넓히며 문화국가를 도모하고 나아가서 제국을 꿈꾸어 왔는가를 알 수 있다. 러시아는 본질적으로 시샘이 많은 나라이다. 그래서 그들의 민족성을 동양적이라고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러시아가 키예프 루시의 영광을 짓밟은 사건은 징기스칸의 유렵 진출 길목이 되어 몽고 타타르족의 지배를 받으며 수세기를 살아오는 동안 서구 문물이 오고 가지 못하는 비운을 맞는다. 지금도 러시아가 일류 국가의 대열에 들지 못하는 이유를 징기스칸의 후손들이 서유럽 길목인 키예프 루시를 짓밟고 문명의 길을 차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치명적인 역사의 단절이었다. 문예부흥기(르네상스)에 참여하지 못한 러시아의 비운이었다.
이런 저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그들의 저변을 살펴보면 신비하고 황홀한 민족성으로 발전하게 된다. 15세기말 이반 3세 시대에 이르러 러시아는 제국의 단계에 이른다. 오늘의 러시아 영토 대부분이 1505~1533년까지 모스크바에서 통치력을 발휘한 바실리 3세에 의해 정복한 것이며 아들 이반 4세에 이르러 거대한 제국이 되었다.
러시아는 외형상 제국에 만족하지 않고 로마제국, 제 3로마가 되고 싶어 몸부림친다. 러시아인들의 기독교는 세계교회사 편에 의하면 선교사 키릴의 등장과 함께 기독교를 필요로하는 러시아의 지혜가 만난다. 키예프 루시가 안정기반을 갖출 때 그리스 정교가 러시아를 향하여 다가섰다. 화려하고도 장엄한 것이 특징인 그리스 정교는 아름다움을 흠모하는 러시아인의 매력의 대상이었다. 그로인해 상류층에 급속히 전파되었다.
3. 새 러시아의 개척자 뾰트르 대제
피터, 러시아 발음으로 뾰트르라고 한다. 뾰트르는 어린시절 아버지를 잃은 탓으로 크레믈린 궁 밖에서 자란 왕자였다. 그는 황제로서의 격식보다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특히 그는 궁궐밖 외국인 촌에서 살면서 러시아보다 훨씬 발전한 문명이 있음을 직감했다.
뽀트르는 1672년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황제와 그의 두 번째 황후인 나탈리아 키릴로브나 나르이쉬키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1696년 황제의 위에 오른 뾰트르는 외국과의 동맹을 맺고 또 구라파 문명의 유입을 위해서 유럽 여러나라에 사절단을 파견하였다.
25세의 황제 뽀트르는 미하일로프라는 가명을 사용, 사절단을 이끌고 유럽 방문에 나섰는데 그가 비록 변장을 했어도 7척의 거구와 돋보이는 용모로 말미암아 신분노출의 위험이 많았다. 행상인, 마부, 나팔수 등으로 신분을 철저하게 감추며 부하들을 이끌고 다녔다. 스웨덴을 지나 프로이센으로 갔는데 뽀트르는 포병 하사관으로 변장을 하고 프로이센 고위 포병 지휘관에게 대포 조작 기술을 배우기도 하였다.
네덜란드에 가서는 목수로 자기 신분을 위장하고 배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는 해부학과 응용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보오르 하베의 외과 교실에서 해부학 강의를 받던 중 그 일행이 시체 관찰을 기피하자 그는 느닷없이'시체의 힘줄을 입으로 물어 뜯으라'고 명령을 내린 일이 있었다. 벌벌 떨며 명령을 실행하는 부하들을 보고 의사들도 뽀트르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직감하였다고 한다.
여행 14개월 되던 때 나라에 반란이 일어났다는 연락을 받고 귀국한다. 반란을 진압한 뾰트르는 러시아를 유럽에 뒤지지 않는 제국을 만들고자 결심하였다.
1703년 전리품으로 얻은 네바강 하구 늪지대를 관찰했다. 발트해를 전략적으로 장악하고 유럽으로 국력을 뻗어가려면 적격지라는 판단이 섰다. 비록 늪지대이기는 하지만 땅을 돋우고 잘만하면 러시아의 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다고 확신했다.
뾰트르는 1703년 즉시 공사에 착공하였다. 10년 공사를 하여 상트 페테르부르그를 이룩하였으니 일명'유럽의 창'이라고 말할 수 있었고, 제2의 파리로 칭함을 받았던 뽀트르 대제의 도시가 이루어진 것이다.
공산 치하에서는 한때 이 아름다운 도시가 '레닌 그라드'로도 명명되었으며 볼셰비키 혁명의 중심도시인 러시아 제2의 도시인 상트(聖) 페테르부르그는 뾰트르의 장엄한 의지에 따라 네바강 가에 세워졌다. 도시 건축과정에서 수백만 명이 희생되었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험난하고 거대한 대역사였다.
페테르부르그는 러시아의 수도로 유럽을 향한 전진기지로, 프랑스 파리를 그대로 모방한 제2의 파리로 러시아의 유럽화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뾰트르 대제의 꿈은 척척 이루어져 갔다. 그의 로마노프 왕조 3백여 년, 볼셰비키 앞에 니콜라이 2세가 무릎을 꿇고 로마노프 왕조를 마감할 때까지 러시아 최고의 전성기를 이룬다.
뾰트르의 영웅적 시도는 교회가 분열되고 침체되는 상황까지 일거에 반전시켰다. 그러나 러시아의 오만은 세계를 향한 창을 열었지만, 여는 그 순간부터 문을 닫는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파리를 러시아에 옮겨 놓았다는 자부심에 찬 페테르부르그는 자유라고 하는 또 하나의 도그마를 해석해 내는 실력이 모자랐다. 지식에 쫓기고 문명으로 쫓기는 러시아는 혁명의 물결에 휘말린다. 프랑스 혁명기에 형성된 '자유'라고 하는 이상'이 러시아를 혁명의 시대로 이끌어 간다.
1825년 12월, 1613년에 세워진 로마노프 왕조의 영걸 뾰트르의 후예인 니콜라이 1세 즉위식 날인 12월, 당원들이 크레믈린 광장에서 대포를 쐈다. 그리고 1917년 10월 볼셰비키가 크레믈린 궁을 장악하고 니콜라이 Ⅱ세를 축축하고 공산당 혁명을 성취하기까지 1백 년 가까운 길고 긴 혁명기에 휘말리게 된다.
4. 러시아 정교를 찾아서
필자는 러시아 기독교를 팔삭둥이 기독교라고 생각한다. 이는 저들이 기독교를 오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순수와 신비성 앞에서 경의를 표한다. 러시아는 너무 순수하고 바보같아서 칼 마르크스의 유토피아에 뛰어들어 엄청난 희생을 당했다.
그러나 러시아 선교를 꿈꾸는 기독교는 먼저 겸허하게 '우리는 러시아를 모른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또 중요한 것은 러시아 정교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러시아 정교의 이해
조효근 목사 (들소리 신문 발행인)
러시아 정교회는 제3의 로마를 자청하는 러시아 제국의 야망과 함께 로마 카톨릭과는 또다른 성격의 기독교이다. 러시아 선교에 관심 있는 이들은 그들의 기독교 1천년이 자부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아야 한다.
러시아는 유럽적인 성격과 아시아적인 사고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소비에트 러시아 시절에는 지구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2,240만 km2 영토로서 미국의 3배, 중국의 2.5배, 인도의 7.6배, 한반도의 104배의 크기이다. 영토뿐 아니라 150개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200여 종족의 결집체가 러시아임을 아는 이들은 그들의 결집력에 대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모스크바 크레믈린의 1547년 1월 17일, 이날은 이반 4세의 황제 등극의 날이었다. 크레믈린 궁 우스핀스키 사원에서 귀족들과 외국사절들이 참석한 가운데 러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황제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총대주교 마까리가 이반 4세에게 황금의 관을 씌워주고 짜르라 호칭하였다. 짜르(러시아 표현은 짜리)는 황제로서 지상의 통치권과 천상의 통치권을 가질 뿐 아니라 서로마 교황권까지 함께 가진다는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하면 종교와 정치를 한손에 쥐고 휘두르는 권세자였다.
이반 4세는 당시 학덕이 탁월한 마까리 총대주교의 도움으로 제왕의 법도를 익혀 강력한 군주가 되었다. 저들 러시아는 이 무렵 콘스탄티노플을 중심한 동로마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 투르크에게 멸망하자 동로마 기독교 종주의 위상을 러시아로 옮겨, 그들 동로마의 계승자로 제3의 로마를 자처한 것이다. 제1로마는 카톨릭의 터전이다. 제2로마는 동로마 또는 비잔틴 제국을 말한다.
16세기 수준에서 러시아가 자신을 제3의 로마로 자처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자부심이다. 저들은 역사를 훌쩍 뛰어넘어 1917년 10월 혁명 곧 볼세비키 혁명으로 전 세계의 양분화까지 시도한 무모함과 방대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는 민족임을 알 수 있다.
러시아 기독교는 동로마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카톨릭의 고난에 기초한 십자가 보다는 화려한 부활을 더욱 선호한다. 러시아 기독교는 그들 민족성과 함께 웅장하고 방대함을 가졌으나 '고난'에 기초한 신앙을 배우지 못했다. 볼셰비키 공산당 혁명을 종교적 의미로 해부하면 그것이 곧 메시아 운동 즉, 예수 재림 운동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서유럽에 대한 처절한 열등감 때문에 2천 년 동안 기다리던 예수가 재림하지 않으니 예수 재림의 이상을 만들자 했던 것이다. 그 이상을 세계 공산당운동으로 이루어 보고자 한 것이 러시아의 야심이었다.
1. 민족의 열등감과 기독교
러시아의 문명기는 키예프 루시 올레그 공국시대(AD 882-)부터 약 350여년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고르 공후 치세에는 국력이 넘쳐 감히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려 했다. 실제로 공격했었다. 키예프 루시는 콘스탄티노플로부터 공물을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고르 공후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내 올가는 세 살 난 아들 스바토 슬라브의 섭정자로 나섰다. 올가는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하고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환대를 받았을 뿐 아니라 그리스 정교의 세례를 받았다.
올가의 개방적 태도는 러시아 전 국민에게 강한 거부감으로 나타났다. 슬라브 민족은 그들 고유의 원시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하늘의 빛의 신인 스바로그, 창조자인 다즈보그 , 천둥과 번개 또는 전쟁의 신 페룬, 바람의 신이며 무사들의 보호자인 스트리보그 등을 믿었다. 이는 민족의 신들로 그들 민족의 기상을 말해 주는 것이다.
키예프는 기독교를 거부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은 그냥두지 않았다. 여러 가지로 압력을 가하며 접근하였으나 올가 섭정자는 국민의 거부감을 이유로 로마 카톨릭 쪽으로 접근하였다. 이것은 곧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되었고 정교와 카톨릭 사이에 알력으로 발전한다. 그러는 사이 스바토 슬라브가 장성하여 모친 올가의 섭정을 물리치고 AD 962년 제4대 키예프 루시의 공후가 된다. 스바토 슬라브는 나라의 지경을 넓혀 제국을 형성할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전쟁을 좋아하는 스바토 슬라브가 전쟁터에서 죽은 후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이 왕위 계승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자 막내인 블라디미르가 스칸디나비아로 건너가 용병을 구해와 둘째 형을 죽인 큰 형 이야로폴그를 몰아내고 제6대 공후로 등극했다.
블라디미르는 확실한 지도력을 갖춘 지도자이나 교활하고 음흉한 면이 있다고 알려지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성자 블라디미르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그가 정치가로도 성공하고 나라와 종교를 위한 지도력을 크게 발휘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블라디미르는 교회를 많이 짓고 학교를 세우는 등 백성들의 장래를 위해서 많은 공적을 남겼다. 그리고 블라디미르는 비잔틴 제국과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AD 989년 비잔틴 제국의 공주 안나와 결혼하고 정교회를 키예프 루시의 종교로 받아들였다. 드디어 블라디미르 대에 이르러 러시아는 그리스 정교회 또는 러시아 정교회를 수립하는 명실상부한 기독교가 되었다.
이삭 성당 전망대에서 바라본 상트 페테르부르그 시내 전경
2. 제3의 로마, 러시아 신앙
러시아는 15세기에 이르러서 크게 융성하였다. 모스크바 크레믈린 궁 박물관에 가 보면 저들 러시아가 주변 세력들을 얼마나 무자비하게 짓밟으며 영토를 넓히며 문화국가를 도모하고 나아가서 제국을 꿈꾸어 왔는가를 알 수 있다. 러시아는 본질적으로 시샘이 많은 나라이다. 그래서 그들의 민족성을 동양적이라고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러시아가 키예프 루시의 영광을 짓밟은 사건은 징기스칸의 유렵 진출 길목이 되어 몽고 타타르족의 지배를 받으며 수세기를 살아오는 동안 서구 문물이 오고 가지 못하는 비운을 맞는다. 지금도 러시아가 일류 국가의 대열에 들지 못하는 이유를 징기스칸의 후손들이 서유럽 길목인 키예프 루시를 짓밟고 문명의 길을 차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치명적인 역사의 단절이었다. 문예부흥기(르네상스)에 참여하지 못한 러시아의 비운이었다.
이런 저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그들의 저변을 살펴보면 신비하고 황홀한 민족성으로 발전하게 된다. 15세기말 이반 3세 시대에 이르러 러시아는 제국의 단계에 이른다. 오늘의 러시아 영토 대부분이 1505~1533년까지 모스크바에서 통치력을 발휘한 바실리 3세에 의해 정복한 것이며 아들 이반 4세에 이르러 거대한 제국이 되었다.
러시아는 외형상 제국에 만족하지 않고 로마제국, 제 3로마가 되고 싶어 몸부림친다. 러시아인들의 기독교는 세계교회사 편에 의하면 선교사 키릴의 등장과 함께 기독교를 필요로하는 러시아의 지혜가 만난다. 키예프 루시가 안정기반을 갖출 때 그리스 정교가 러시아를 향하여 다가섰다. 화려하고도 장엄한 것이 특징인 그리스 정교는 아름다움을 흠모하는 러시아인의 매력의 대상이었다. 그로인해 상류층에 급속히 전파되었다.
3. 새 러시아의 개척자 뾰트르 대제
피터, 러시아 발음으로 뾰트르라고 한다. 뾰트르는 어린시절 아버지를 잃은 탓으로 크레믈린 궁 밖에서 자란 왕자였다. 그는 황제로서의 격식보다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특히 그는 궁궐밖 외국인 촌에서 살면서 러시아보다 훨씬 발전한 문명이 있음을 직감했다.
뽀트르는 1672년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황제와 그의 두 번째 황후인 나탈리아 키릴로브나 나르이쉬키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1696년 황제의 위에 오른 뾰트르는 외국과의 동맹을 맺고 또 구라파 문명의 유입을 위해서 유럽 여러나라에 사절단을 파견하였다.
25세의 황제 뽀트르는 미하일로프라는 가명을 사용, 사절단을 이끌고 유럽 방문에 나섰는데 그가 비록 변장을 했어도 7척의 거구와 돋보이는 용모로 말미암아 신분노출의 위험이 많았다. 행상인, 마부, 나팔수 등으로 신분을 철저하게 감추며 부하들을 이끌고 다녔다. 스웨덴을 지나 프로이센으로 갔는데 뽀트르는 포병 하사관으로 변장을 하고 프로이센 고위 포병 지휘관에게 대포 조작 기술을 배우기도 하였다.
네덜란드에 가서는 목수로 자기 신분을 위장하고 배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는 해부학과 응용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보오르 하베의 외과 교실에서 해부학 강의를 받던 중 그 일행이 시체 관찰을 기피하자 그는 느닷없이'시체의 힘줄을 입으로 물어 뜯으라'고 명령을 내린 일이 있었다. 벌벌 떨며 명령을 실행하는 부하들을 보고 의사들도 뽀트르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직감하였다고 한다.
여행 14개월 되던 때 나라에 반란이 일어났다는 연락을 받고 귀국한다. 반란을 진압한 뾰트르는 러시아를 유럽에 뒤지지 않는 제국을 만들고자 결심하였다.
1703년 전리품으로 얻은 네바강 하구 늪지대를 관찰했다. 발트해를 전략적으로 장악하고 유럽으로 국력을 뻗어가려면 적격지라는 판단이 섰다. 비록 늪지대이기는 하지만 땅을 돋우고 잘만하면 러시아의 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다고 확신했다.
뾰트르는 1703년 즉시 공사에 착공하였다. 10년 공사를 하여 상트 페테르부르그를 이룩하였으니 일명'유럽의 창'이라고 말할 수 있었고, 제2의 파리로 칭함을 받았던 뽀트르 대제의 도시가 이루어진 것이다.
공산 치하에서는 한때 이 아름다운 도시가 '레닌 그라드'로도 명명되었으며 볼셰비키 혁명의 중심도시인 러시아 제2의 도시인 상트(聖) 페테르부르그는 뾰트르의 장엄한 의지에 따라 네바강 가에 세워졌다. 도시 건축과정에서 수백만 명이 희생되었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험난하고 거대한 대역사였다.
페테르부르그는 러시아의 수도로 유럽을 향한 전진기지로, 프랑스 파리를 그대로 모방한 제2의 파리로 러시아의 유럽화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뾰트르 대제의 꿈은 척척 이루어져 갔다. 그의 로마노프 왕조 3백여 년, 볼셰비키 앞에 니콜라이 2세가 무릎을 꿇고 로마노프 왕조를 마감할 때까지 러시아 최고의 전성기를 이룬다.
뾰트르의 영웅적 시도는 교회가 분열되고 침체되는 상황까지 일거에 반전시켰다. 그러나 러시아의 오만은 세계를 향한 창을 열었지만, 여는 그 순간부터 문을 닫는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파리를 러시아에 옮겨 놓았다는 자부심에 찬 페테르부르그는 자유라고 하는 또 하나의 도그마를 해석해 내는 실력이 모자랐다. 지식에 쫓기고 문명으로 쫓기는 러시아는 혁명의 물결에 휘말린다. 프랑스 혁명기에 형성된 '자유'라고 하는 이상'이 러시아를 혁명의 시대로 이끌어 간다.
1825년 12월, 1613년에 세워진 로마노프 왕조의 영걸 뾰트르의 후예인 니콜라이 1세 즉위식 날인 12월, 당원들이 크레믈린 광장에서 대포를 쐈다. 그리고 1917년 10월 볼셰비키가 크레믈린 궁을 장악하고 니콜라이 Ⅱ세를 축축하고 공산당 혁명을 성취하기까지 1백 년 가까운 길고 긴 혁명기에 휘말리게 된다.
4. 러시아 정교를 찾아서
필자는 러시아 기독교를 팔삭둥이 기독교라고 생각한다. 이는 저들이 기독교를 오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순수와 신비성 앞에서 경의를 표한다. 러시아는 너무 순수하고 바보같아서 칼 마르크스의 유토피아에 뛰어들어 엄청난 희생을 당했다.
그러나 러시아 선교를 꿈꾸는 기독교는 먼저 겸허하게 '우리는 러시아를 모른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또 중요한 것은 러시아 정교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집 2] 러시아 선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 미하일 바라노프 목사
...
날짜2005년 3월 4일 금요일
출처
조회수5555
|특|집|2| 러시아 선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아시아 북서부지역 오순절교단의 역사
미하일 바라노프 목사
(러시아 북서부 지역 오순절총회장)
러시아 북서부 지역 기독교 역사는 공산주의 시절 지하교회의 상태로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가 되어 그 형태를 갖출 수 있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기독교 행사가 이루어졌고 교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양한 교단을 통해 교회들이 세워졌는데 대부분 세계 각국의 많은 나라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졌다. 더불어 러시아 목회자들도 배출되었고 교회를 개척해 나갔다.
교회들이 연합하며 사역하고
지역의 발전에 맞춰 개신교 형성 과정이 시작되었다. 예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교를 자주 들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하나님 말씀을 충분히 들을 수 있고 더불어 개신교도들도 많이 증가했다. 그러나 러시아 목회자들에게는 새로운 변화의 필요성의 이해와 외국인 선교사들과의 관계 속에 문제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러시아 민족을 버리지 않았고 목회자들을 잘 연합할 수 있게 만드는 달란트를 가진 사람들을 보내 주셨다. 많은 교회들이 연합하게 되었고 서로 협조 가운데 사역을 하게 되었다.
전에도 개신교 연합단체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수가 더 많아졌다. 목회자들은 부흥을 위해 다양한 연합 계획들을 찾았고 서로 돕게 되었다. 공동의 연합관계가 아닌 형제의 관계로 만들어져 갔다. 다양한 성회와 컨퍼런스를 개최하였고 이것들은 복음전파에 큰 효과가 있었다.
교회의 안정과 부흥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기신자와 새신자들을 모두 사용하셨고 그들은 각기 달란트로 섬길 수 있었다. 1992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인 세르게이 마이세비치 린니크 선교사가 상트 페테르부르그에 왔다. 그는 독일의 선교단체인 <느헤미야>에서 파송된 선교사였다. 이 선교단체의 도움으로 많은 도시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비전의 성취를 위해 그에게 착하고 충성된 일꾼들을 보내셨다. 우리 형제인 베냐민 니꼴라이비치 이사예프도 세르게이 린니크가 주도하는 목회자 팀에 들어왔다. 충성되고 성실한 하나님의 종이었던 그는 마치 불도저처럼, 다윗의 군사들처럼 원수 마귀의 진을 깨뜨렸고 세르게이 린니크를 중심으로 많은 모임을 만들어 갔다. 교회가 100명 정도로 성장하였다. 1998년 세르게이 린니크는 가정상의 이유로 상트 페테르부르그를 떠났고 러시아 북서부지역 오순절교단 모임에서 미하일 바라노프 목사를 머리로 세웠다. 이게 바로 나이다. 평범한 목사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조용히 살고자 했었던 나에게는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불순종할 수가 없는 일이었기에 이 결과를 받아들였다.
씨를 뿌리고 싹이 났지만
그 후로 5년이 흘렀다. 이 기간 동안 당연히 더 많은 부흥을 이루었어야 했지만 그래도 발전의 기미는 있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과제는 너무 크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이것을 위해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서로 간의 이해가 필요했다. 앞으로 전진해야 하는데 힘이 부족했다. 일에 경험도 부족하고 안정된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해결하지 못한 문제점들이 선교사들과의 관계 속에서 있었다.
개간하여 씨를 뿌려 이제 움이 텄는데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모르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손실도 있지만 우리는 계속 전진하고 있다. 선교 비전과 복음전파의 의욕은 잃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몇 개의 교회 개척도 이루어졌다. 교회 개척의 꿈과 비젼이 있던 목회자들은 이 비젼의 성취를 위해 다른 형제들과 비젼을 나누고 기도하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연합으로 많은 세미나가 열렸다.
우리는 현재 문제를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문제가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해결하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 연합체의 발전에 관해서 무엇을 먼저 추구해야 할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함께할 수 있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과제는 그리스도의 지체들 중에 약한 부분이 없도록 모두가 강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과제와 목적, 비전이 있는 것이다.
40년 대장정 끝에 완성된 이삭 성당(1818~1858)
러시아 북서부 오순절 교단의 기본 방향과 비전과 목적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원리의 확증과 선포를 통한 건강한 기독교관 설립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교단의 기본 방향은 강한 지체교회들이 하나된 하나의 그리스도 교회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또한 교회들의 파트너쉽 관계, 목회자 교육, 구체적으로 필요한 곳에 그리스도의 사랑 실천, 기도원 준공 사업 등을 펼쳐나가고 있다.
복음전파의 목적은 선교사역의 발전과 상트 페테르부르그와 그 주변 지역에 지역마다 강한 교회들을 세우는 것이며 다양한 민족들에 대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교단의 사회활동으로는 마약 및 알콜중독자를 위한 갱생 센터, 고아원, 교도소, 시민들의 영적 문화 계몽을 위한 사회복지센터, 가정상담센터를 중심으로 사역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모스크바 신학연구소와 계약이 되어 있는 성경대학 (디모데)이 있으며 성경대학을 마친 자는 모스크바 신학연구소 3학년으로 편입 가능하다. 우리는 침례교단이나 ACCR, 다른 많은 선교단체들과 협력관계 속에 다양한 사역들을 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 북서부 지역 오순절 교단에는 총 53 교회가 정식 등록되어 있다. 아직은 그리 크지 않은 교회들이지만 하나님께서 부흥시켜 주실 줄로 믿는다. 마약 및 알콜 중독자들을 위한 갱생 센터가 있다. 그리고 불쌍한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도 설립하였다. 하나 더 설립중이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아직 진행 중에 있다. 몇몇 찬양팀이 음반을 내어 활동중이다. 러시아북 서부지역의 오순절교단 아래 모든 교회들이 안정이 되고 독립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리더의 과제는 방해하지 않고 도와 주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우리는 이재록 목사님을 모시고 만민의 이름으로 이곳에서 큰 성회를 열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기쁘다. 이 성회를 통해 성령의 큰 역사를 체험하고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모든 문제를 해결받기를 기대한다.
(번역 : 손영락 집사)
아시아 북서부지역 오순절교단의 역사
미하일 바라노프 목사
(러시아 북서부 지역 오순절총회장)
러시아 북서부 지역 기독교 역사는 공산주의 시절 지하교회의 상태로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가 되어 그 형태를 갖출 수 있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기독교 행사가 이루어졌고 교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양한 교단을 통해 교회들이 세워졌는데 대부분 세계 각국의 많은 나라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졌다. 더불어 러시아 목회자들도 배출되었고 교회를 개척해 나갔다.
교회들이 연합하며 사역하고
지역의 발전에 맞춰 개신교 형성 과정이 시작되었다. 예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교를 자주 들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하나님 말씀을 충분히 들을 수 있고 더불어 개신교도들도 많이 증가했다. 그러나 러시아 목회자들에게는 새로운 변화의 필요성의 이해와 외국인 선교사들과의 관계 속에 문제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러시아 민족을 버리지 않았고 목회자들을 잘 연합할 수 있게 만드는 달란트를 가진 사람들을 보내 주셨다. 많은 교회들이 연합하게 되었고 서로 협조 가운데 사역을 하게 되었다.
전에도 개신교 연합단체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수가 더 많아졌다. 목회자들은 부흥을 위해 다양한 연합 계획들을 찾았고 서로 돕게 되었다. 공동의 연합관계가 아닌 형제의 관계로 만들어져 갔다. 다양한 성회와 컨퍼런스를 개최하였고 이것들은 복음전파에 큰 효과가 있었다.
교회의 안정과 부흥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기신자와 새신자들을 모두 사용하셨고 그들은 각기 달란트로 섬길 수 있었다. 1992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인 세르게이 마이세비치 린니크 선교사가 상트 페테르부르그에 왔다. 그는 독일의 선교단체인 <느헤미야>에서 파송된 선교사였다. 이 선교단체의 도움으로 많은 도시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비전의 성취를 위해 그에게 착하고 충성된 일꾼들을 보내셨다. 우리 형제인 베냐민 니꼴라이비치 이사예프도 세르게이 린니크가 주도하는 목회자 팀에 들어왔다. 충성되고 성실한 하나님의 종이었던 그는 마치 불도저처럼, 다윗의 군사들처럼 원수 마귀의 진을 깨뜨렸고 세르게이 린니크를 중심으로 많은 모임을 만들어 갔다. 교회가 100명 정도로 성장하였다. 1998년 세르게이 린니크는 가정상의 이유로 상트 페테르부르그를 떠났고 러시아 북서부지역 오순절교단 모임에서 미하일 바라노프 목사를 머리로 세웠다. 이게 바로 나이다. 평범한 목사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조용히 살고자 했었던 나에게는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불순종할 수가 없는 일이었기에 이 결과를 받아들였다.
씨를 뿌리고 싹이 났지만
그 후로 5년이 흘렀다. 이 기간 동안 당연히 더 많은 부흥을 이루었어야 했지만 그래도 발전의 기미는 있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과제는 너무 크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이것을 위해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서로 간의 이해가 필요했다. 앞으로 전진해야 하는데 힘이 부족했다. 일에 경험도 부족하고 안정된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해결하지 못한 문제점들이 선교사들과의 관계 속에서 있었다.
개간하여 씨를 뿌려 이제 움이 텄는데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모르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손실도 있지만 우리는 계속 전진하고 있다. 선교 비전과 복음전파의 의욕은 잃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몇 개의 교회 개척도 이루어졌다. 교회 개척의 꿈과 비젼이 있던 목회자들은 이 비젼의 성취를 위해 다른 형제들과 비젼을 나누고 기도하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연합으로 많은 세미나가 열렸다.
우리는 현재 문제를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문제가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해결하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 연합체의 발전에 관해서 무엇을 먼저 추구해야 할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함께할 수 있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과제는 그리스도의 지체들 중에 약한 부분이 없도록 모두가 강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과제와 목적, 비전이 있는 것이다.
40년 대장정 끝에 완성된 이삭 성당(1818~1858)
러시아 북서부 오순절 교단의 기본 방향과 비전과 목적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원리의 확증과 선포를 통한 건강한 기독교관 설립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교단의 기본 방향은 강한 지체교회들이 하나된 하나의 그리스도 교회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또한 교회들의 파트너쉽 관계, 목회자 교육, 구체적으로 필요한 곳에 그리스도의 사랑 실천, 기도원 준공 사업 등을 펼쳐나가고 있다.
복음전파의 목적은 선교사역의 발전과 상트 페테르부르그와 그 주변 지역에 지역마다 강한 교회들을 세우는 것이며 다양한 민족들에 대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교단의 사회활동으로는 마약 및 알콜중독자를 위한 갱생 센터, 고아원, 교도소, 시민들의 영적 문화 계몽을 위한 사회복지센터, 가정상담센터를 중심으로 사역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모스크바 신학연구소와 계약이 되어 있는 성경대학 (디모데)이 있으며 성경대학을 마친 자는 모스크바 신학연구소 3학년으로 편입 가능하다. 우리는 침례교단이나 ACCR, 다른 많은 선교단체들과 협력관계 속에 다양한 사역들을 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 북서부 지역 오순절 교단에는 총 53 교회가 정식 등록되어 있다. 아직은 그리 크지 않은 교회들이지만 하나님께서 부흥시켜 주실 줄로 믿는다. 마약 및 알콜 중독자들을 위한 갱생 센터가 있다. 그리고 불쌍한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도 설립하였다. 하나 더 설립중이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아직 진행 중에 있다. 몇몇 찬양팀이 음반을 내어 활동중이다. 러시아북 서부지역의 오순절교단 아래 모든 교회들이 안정이 되고 독립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리더의 과제는 방해하지 않고 도와 주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우리는 이재록 목사님을 모시고 만민의 이름으로 이곳에서 큰 성회를 열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기쁘다. 이 성회를 통해 성령의 큰 역사를 체험하고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모든 문제를 해결받기를 기대한다.
(번역 : 손영락 집사)
[특집 1] 러시아 선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 드미트리 뽈랴코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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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5년 3월 4일 금요일
출처
조회수6851
특|집|1| 러시아 선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러시아여! 바벨론에서 벗어나 우리에게로 오라!
드미트리 뽈랴코프 목사
(러시아 교회협의회 이사장, 유니온 크리스챤 교회 담임)
이제 러시아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시작되도다! 때가 차매 이제 러시아는 바벨론에서 나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게 되었도다.
2002년, 러시아는 너무나도 강하게 러시아의 역사에 아주 중요한 일들이 1년 후인 2003년부터 전개되리라 느껴왔다. 사실 그동안 러시아 역사는 내내 극단적인 긴장과 전쟁, 정치적 경제적 위기 속에 한 세기의 역사를 뒤엎는 반전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지나간 과거를 재평가하고 현재를 직시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제 러시아 역사는 장차 100년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허드슨에게 보여 주신 러시아의 비전
러시아는 놀라운 영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부여받는 참으로 축복받은 나라이다. 1855년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는 러시아의 비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주님은 제게 이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상중에 전 세계를 뒤엎는 큰 전쟁을 보았습니다. 이 전쟁은 다소 수그러드는 듯 하지만 금새 다시 불같이 일어나게 되고 큰 두 전쟁으로 나누어집니다. 이 전쟁으로 불안과 공포가 수많은 나라와 백성을 강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어떤 곳에서는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는 것도 보았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다시는 그런 일이 있지 않을 대대적인 거국적 영적 대각성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런 영적 축복은 러시아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유럽 국가들로 번져가게 됩니다. 그런 대각성 후에 주님의 재림이 이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러시아 전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예언이 현실로 성취되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습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부인했던 70년의 공산주의 치하를 이겨낸 러시아 신앙의 역사 속에 이제 러시아를 향해 예비하셨다가 나타내실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는 정녕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70년의 러시아 신앙의 암흑은 BC 605에서 BC 586까지 있었던 이스라엘의 70년 바벨론 포로생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알려진 것처럼 러시아 연합정부는 한 때 '거룩한 정부'라는 말로도 통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위대한 유산을 가진 복된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산주의 70년 동안 하나님을 잃었고 영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유물론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864년 그 유명한 비잔틴 선교사 성 키릴과 성 메소디우스는 성경과 기도문을 슬라브 언어로 번역했고 이로 말미암아 많은 슬라브계 국가들이 비잔틴 정교로 개종을 하게 되었습니다.
980년 드디어 블라디미르 1세가 키예프의 황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즉위 후 초기 통치시대에만 해도 이교도였으나, 988년 비잔틴 황제 바실 2세의 누이 앤 공주와 결혼한 후 그리스 정교로 개종을 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정교를 키예프 공국의 공식적인 종교로 발표했습니다.
슬라브계 교회는 상당한 권력과 규칙이 있었습니다. 블라디미르 1세가 기독교를 국교로 택한 일은 러시아의 미래에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슬라브계 국가들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관과 구별된 자기 정체성을 갖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입니다.
정교의 역사
러시아 정교는 1448년 콘스탄티노플에서 독립을 했고 1589년 콘스탄티노플의 교황 제레미야 2세에 의해 공식적으로 모스크바에 대주교가 임명되었습니다. 러시아 교회와 짜르의 위치상 고대 로마와 비잔틴 제국에 이어 그 제국의 영화로움을 생각할 때, 모스크바는 제3의 로마와 같았습니다. 1721년 러시아 황제 피터 대제는 대주교 제도를 폐지시켰고 그 후로 교회는 제국에 의해 간섭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 시 대주교 제도는 다시 부활되는 듯 했으나, 교회는 공산주의 정부에 의해 핍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러시아 기독교의 암흑의 시작이었습니다.
칼 막스는 종교를 가리켜 민중의 아편이라고 그의 저술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비에트 공산 정부는 처음부터 직접 통제하지 못하던 모든 사회 조직과 종교 단체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1917년 이후 즉시 소비에트 연방은 러시아 정교회의 모든 재산을 몰수했고 교리 전파를 금지했고 반종교 선전단체를 세웠고 교회 사제들을 핍박했습니다. 1920년대 시들했었던 무신론의 열풍이 1929년 이후로 다시금 거세게 일기 시작했고, 수천의 교회들이 문을 닫고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말 무신론의 기운이 조금 약해졌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실질적으로는 기독교 신자들을 허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 이후로 소비에트 종교 탄압 정책은 러시아 정교보다는 러시아 황제의 관심 아래 세워져 러시아 애국주의 운동과 연대하는 다른 기독교 교회들에 대해 탄압하는 쪽으로 선회했습니다. 러시아 공산 정부는 러시아 정교 안에서 스파이들을 만들려 했고 1960년대와70년대 조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행동파 반정부자들에 대해 가혹하게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에트 통치 기간 동안 종교적인 표현의 자유는 거의 없었고 공산당은 종교 단체를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공산 정부는 규제를 완화하기 시작했고 1990년도에는 러시아인들에게 좀 더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공산정부는 무너졌지만
1991년 8월19~22일까지 러시아 역사상 기독교 영적 포로 생활을 마감하는 대변혁이 일어났습니다. 70년 동안의 소비에트 공산 정부가 드디어 붕괴된 것입니다. 철의 장막이 무너졌고 장장 3세대 동안을 전 세계로부터 격리시키고 소외시켰던 온 나라에 자유의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자유와 선택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무관심과 무책임 속에 주체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이던 민족성을 지닌 나라였지만 이제 새 나라가 도래하고 있고 비로소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처음으로 성경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도 감격스럽고 극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자유는 곧 도전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와 선택의 기회를 혼동했습니다. 사람들은 아직 바른 결정을 내릴 만큼 성숙되어 있지는 못했기 때문에,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만큼 큰 도전이 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지만, 무엇을 결정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새로운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부족한 탓에 어떤 사람들은 마약을 찾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무엇인가의 헛된 탈출구를 찾게 되었습니다.
통계자료를 보면 상트 페테르부르그만 해도 집없는 아이가 30,000 명, 마약 복용자 30,000 명, 등록된 마약 상습복용자의 91%가 HIV 양성반응, 범죄의 92%가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 관련, 마약 중독자의 평균 연령이 11세. 1991년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이후 종교 활동이 다시 활발해졌고 전통 종교들 특히 러시아 정교가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정교는 이제 러시아 제 1의 종교입니다. 러시아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이 러시아 정교에 속하며 그들은 전국적으로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정교 신자들의 대부분은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이건 비신자들이든 교회에 대해 러시아의 위대한 유산이자 역사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두 번째 세력이 큰 종교는 무슬림입니다. 그에 반해 상대적으로 유대교, 개신교, 카톨릭, 불교는 열세인 편입니다. 그래도 유대교와 개신교는 전 나라에 퍼져 있기는 합니다. 러시아 정교가 부활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단 하나만의 종교에 집착하지는 않고 보통 전통적인 신앙에다 다른 종교 두 서넛을 더 의지하려 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 간에는 주술이나 점성술도 유행입니다. 이와 같이 러시아는 다양한 종교가 있고 다양한 종파, 교파가 있습니다.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과 다른 설교자들이 다양한 종교들과 심지어 뉴에이지 운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피의 구원 사원
간절히 부흥집회를 사모하고 있는 상트 페테르부르그
이처럼 외국 종교의 유입과 성장을 지켜보면서 정부에서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1997년 정부는 1990년에 세운 종교 자유법을 개정하여 러시아 역사 발전에 기여하는 종교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범주를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정교와 몇몇 종교만 정식 종교 단체로 규정을 하고 다른 종교 단체는 활동하는데 큰 제약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한국에서 러시아를 위하여 특히 상트 페테르부르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우리는 진심으로 감사하며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한국의 형제자매들이 직접 상트 페테르부르그를 방문하신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간절히 부흥 집회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550만의 인구로 러시아 제 2의 도시인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러시아의 문화 중심도시로 러시아 전체를 들어가는 관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서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라 불리며 항상 새롭고 흥미있는 것들에 문호를 개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를 향한 우리의 관심은 데살로니가전서 5:21~22에 말씀하시는대로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입니다.
2003년 5월 27일,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300주년 기념축하 행사를 개막했습니다. 이 행사는 러시아에 역사적인 이정표가 되고 있고 또한 영적인 지표가 될 것입니다.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러시아 3대 혁명의 도시로 러시아에서 매우 중요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3대 혁명은 러시아만 아니라 온 세계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푸시킨 시에 위치한 예카테리나 궁전
제4의 대혁명을 기대하며
이제 우리는 제4의 대혁명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곧 있게 될 제 4혁명은 인간의 피흘림의 혁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으로 말미암는 용서와 부흥과 치료의 혁명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곳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부흥이 시작되어 온 나라로 그리고 전세계로 부흥의 불길이 타오를 것을 믿으며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주님이 보여 주신 환상 가운데 본대로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러시아 대부흥'이라고 부릅니다.
(번역 : 이상원 집사)
러시아여! 바벨론에서 벗어나 우리에게로 오라!
드미트리 뽈랴코프 목사
(러시아 교회협의회 이사장, 유니온 크리스챤 교회 담임)
이제 러시아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시작되도다! 때가 차매 이제 러시아는 바벨론에서 나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게 되었도다.
2002년, 러시아는 너무나도 강하게 러시아의 역사에 아주 중요한 일들이 1년 후인 2003년부터 전개되리라 느껴왔다. 사실 그동안 러시아 역사는 내내 극단적인 긴장과 전쟁, 정치적 경제적 위기 속에 한 세기의 역사를 뒤엎는 반전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지나간 과거를 재평가하고 현재를 직시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제 러시아 역사는 장차 100년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허드슨에게 보여 주신 러시아의 비전
러시아는 놀라운 영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부여받는 참으로 축복받은 나라이다. 1855년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는 러시아의 비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주님은 제게 이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상중에 전 세계를 뒤엎는 큰 전쟁을 보았습니다. 이 전쟁은 다소 수그러드는 듯 하지만 금새 다시 불같이 일어나게 되고 큰 두 전쟁으로 나누어집니다. 이 전쟁으로 불안과 공포가 수많은 나라와 백성을 강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어떤 곳에서는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는 것도 보았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다시는 그런 일이 있지 않을 대대적인 거국적 영적 대각성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런 영적 축복은 러시아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유럽 국가들로 번져가게 됩니다. 그런 대각성 후에 주님의 재림이 이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러시아 전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예언이 현실로 성취되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습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부인했던 70년의 공산주의 치하를 이겨낸 러시아 신앙의 역사 속에 이제 러시아를 향해 예비하셨다가 나타내실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는 정녕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70년의 러시아 신앙의 암흑은 BC 605에서 BC 586까지 있었던 이스라엘의 70년 바벨론 포로생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알려진 것처럼 러시아 연합정부는 한 때 '거룩한 정부'라는 말로도 통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위대한 유산을 가진 복된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산주의 70년 동안 하나님을 잃었고 영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유물론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864년 그 유명한 비잔틴 선교사 성 키릴과 성 메소디우스는 성경과 기도문을 슬라브 언어로 번역했고 이로 말미암아 많은 슬라브계 국가들이 비잔틴 정교로 개종을 하게 되었습니다.
980년 드디어 블라디미르 1세가 키예프의 황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즉위 후 초기 통치시대에만 해도 이교도였으나, 988년 비잔틴 황제 바실 2세의 누이 앤 공주와 결혼한 후 그리스 정교로 개종을 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정교를 키예프 공국의 공식적인 종교로 발표했습니다.
슬라브계 교회는 상당한 권력과 규칙이 있었습니다. 블라디미르 1세가 기독교를 국교로 택한 일은 러시아의 미래에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슬라브계 국가들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관과 구별된 자기 정체성을 갖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입니다.
정교의 역사
러시아 정교는 1448년 콘스탄티노플에서 독립을 했고 1589년 콘스탄티노플의 교황 제레미야 2세에 의해 공식적으로 모스크바에 대주교가 임명되었습니다. 러시아 교회와 짜르의 위치상 고대 로마와 비잔틴 제국에 이어 그 제국의 영화로움을 생각할 때, 모스크바는 제3의 로마와 같았습니다. 1721년 러시아 황제 피터 대제는 대주교 제도를 폐지시켰고 그 후로 교회는 제국에 의해 간섭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 시 대주교 제도는 다시 부활되는 듯 했으나, 교회는 공산주의 정부에 의해 핍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러시아 기독교의 암흑의 시작이었습니다.
칼 막스는 종교를 가리켜 민중의 아편이라고 그의 저술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비에트 공산 정부는 처음부터 직접 통제하지 못하던 모든 사회 조직과 종교 단체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1917년 이후 즉시 소비에트 연방은 러시아 정교회의 모든 재산을 몰수했고 교리 전파를 금지했고 반종교 선전단체를 세웠고 교회 사제들을 핍박했습니다. 1920년대 시들했었던 무신론의 열풍이 1929년 이후로 다시금 거세게 일기 시작했고, 수천의 교회들이 문을 닫고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말 무신론의 기운이 조금 약해졌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실질적으로는 기독교 신자들을 허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 이후로 소비에트 종교 탄압 정책은 러시아 정교보다는 러시아 황제의 관심 아래 세워져 러시아 애국주의 운동과 연대하는 다른 기독교 교회들에 대해 탄압하는 쪽으로 선회했습니다. 러시아 공산 정부는 러시아 정교 안에서 스파이들을 만들려 했고 1960년대와70년대 조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행동파 반정부자들에 대해 가혹하게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에트 통치 기간 동안 종교적인 표현의 자유는 거의 없었고 공산당은 종교 단체를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공산 정부는 규제를 완화하기 시작했고 1990년도에는 러시아인들에게 좀 더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공산정부는 무너졌지만
1991년 8월19~22일까지 러시아 역사상 기독교 영적 포로 생활을 마감하는 대변혁이 일어났습니다. 70년 동안의 소비에트 공산 정부가 드디어 붕괴된 것입니다. 철의 장막이 무너졌고 장장 3세대 동안을 전 세계로부터 격리시키고 소외시켰던 온 나라에 자유의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자유와 선택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무관심과 무책임 속에 주체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이던 민족성을 지닌 나라였지만 이제 새 나라가 도래하고 있고 비로소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처음으로 성경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도 감격스럽고 극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자유는 곧 도전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와 선택의 기회를 혼동했습니다. 사람들은 아직 바른 결정을 내릴 만큼 성숙되어 있지는 못했기 때문에,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만큼 큰 도전이 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지만, 무엇을 결정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새로운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부족한 탓에 어떤 사람들은 마약을 찾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무엇인가의 헛된 탈출구를 찾게 되었습니다.
통계자료를 보면 상트 페테르부르그만 해도 집없는 아이가 30,000 명, 마약 복용자 30,000 명, 등록된 마약 상습복용자의 91%가 HIV 양성반응, 범죄의 92%가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 관련, 마약 중독자의 평균 연령이 11세. 1991년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이후 종교 활동이 다시 활발해졌고 전통 종교들 특히 러시아 정교가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정교는 이제 러시아 제 1의 종교입니다. 러시아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이 러시아 정교에 속하며 그들은 전국적으로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정교 신자들의 대부분은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이건 비신자들이든 교회에 대해 러시아의 위대한 유산이자 역사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두 번째 세력이 큰 종교는 무슬림입니다. 그에 반해 상대적으로 유대교, 개신교, 카톨릭, 불교는 열세인 편입니다. 그래도 유대교와 개신교는 전 나라에 퍼져 있기는 합니다. 러시아 정교가 부활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단 하나만의 종교에 집착하지는 않고 보통 전통적인 신앙에다 다른 종교 두 서넛을 더 의지하려 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 간에는 주술이나 점성술도 유행입니다. 이와 같이 러시아는 다양한 종교가 있고 다양한 종파, 교파가 있습니다.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과 다른 설교자들이 다양한 종교들과 심지어 뉴에이지 운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피의 구원 사원
간절히 부흥집회를 사모하고 있는 상트 페테르부르그
이처럼 외국 종교의 유입과 성장을 지켜보면서 정부에서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1997년 정부는 1990년에 세운 종교 자유법을 개정하여 러시아 역사 발전에 기여하는 종교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범주를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정교와 몇몇 종교만 정식 종교 단체로 규정을 하고 다른 종교 단체는 활동하는데 큰 제약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한국에서 러시아를 위하여 특히 상트 페테르부르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우리는 진심으로 감사하며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한국의 형제자매들이 직접 상트 페테르부르그를 방문하신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간절히 부흥 집회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550만의 인구로 러시아 제 2의 도시인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러시아의 문화 중심도시로 러시아 전체를 들어가는 관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서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라 불리며 항상 새롭고 흥미있는 것들에 문호를 개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를 향한 우리의 관심은 데살로니가전서 5:21~22에 말씀하시는대로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입니다.
2003년 5월 27일,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300주년 기념축하 행사를 개막했습니다. 이 행사는 러시아에 역사적인 이정표가 되고 있고 또한 영적인 지표가 될 것입니다.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러시아 3대 혁명의 도시로 러시아에서 매우 중요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3대 혁명은 러시아만 아니라 온 세계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푸시킨 시에 위치한 예카테리나 궁전
제4의 대혁명을 기대하며
이제 우리는 제4의 대혁명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곧 있게 될 제 4혁명은 인간의 피흘림의 혁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으로 말미암는 용서와 부흥과 치료의 혁명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곳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부흥이 시작되어 온 나라로 그리고 전세계로 부흥의 불길이 타오를 것을 믿으며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주님이 보여 주신 환상 가운데 본대로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러시아 대부흥'이라고 부릅니다.
(번역 : 이상원 집사)
2003 러시아 연합대성회 이후
...
날짜2004년 6월 20일 일요일
출처어시스트 뉴스
조회수5495
러시아 교회 협의회 회장 이고르 니키틴 목사는 미국의 기독 통신사인 ANS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작년 11월 이재록 목사 초청 러시아 연합대성회를 통해 이전까지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음이 개방되었습니다. 저는 대성회 후 러시아 법무부에서 교도소 내에 기독교 프로그램 송출을 요청받았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러시아에 있는 모든 수감자들이 곧 기독교 TV를 시청하게 될 것입니다.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신 이재록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일은 1년 전까지만 해도 300개의 케이블 방송에 기독교 프로그램 방영을 시도해 보았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성회 이후 지금은 실현되었다. "이것은 영적인 혁명입니다. 대성회를 통해 교회가 하나 되고 사회적 행동도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교회 협의회는 30개의 마약 재활 센타를 개설했고, 교회들은 거리의 아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으며, 수감자의 자녀들에게 선물을 보내고 있습니다." 러시아 혁명이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일어난 것처럼 영적인 혁명도 「2003 이재록 목사 초청 러시아 연합대성회」를 계기로 분명히 이곳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이고르 니키틴 목사는 덧붙였다.
<러시아 이젭스크 시에서 온 감사편지> 너무나 아름다운 페스티벌과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날짜2003년 11월 27일 목요일
출처
조회수7259
●옥사나 수슬로바 목사(러시아 이젭스크 시 사랑이 함께하는 믿음 교회)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귀하신 총회장 이재록 목사님!
먼저 한국 기독문화 페스티벌을 열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으로 역사받지 못한 영혼들이 한 영혼도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일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민족이나 문화의 틀에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 되어 진리 안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확실히 보여 주셨습니다.
저희 이젭스크 시에서 생방송으로 스크린 성회에 참석한 사람은 매일 거의 1,000명 정도입니다. 그들 중에는 교회에 처음 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오랫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사님을 통해 놀라운 권능의 역사들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등이나 척추, 머리, 다리 등의 통증을 치료받고 시력과 청력을 회복하는 등 무수히 치료받은 사례들이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폐결핵, 방광염, 신장염 등을 치료받는 등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페스티벌과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베풀어 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이재록 목사님께 함께하기를 기원하며 큰 권능으로 많은 열매를 거두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이재록 목사님을 통해 마지막 때 큰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기회가 되시면 저희 도시에서도 성회를 열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는 너무 목사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항상 우리의 마음안에 계십니다.
러시아 이젭스크 시에서도 위성을 통한 생방송으로 스크린 성회가 열려 시공간을 초월한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이 넘쳐났다.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귀하신 총회장 이재록 목사님!
먼저 한국 기독문화 페스티벌을 열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으로 역사받지 못한 영혼들이 한 영혼도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일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민족이나 문화의 틀에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 되어 진리 안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확실히 보여 주셨습니다.
저희 이젭스크 시에서 생방송으로 스크린 성회에 참석한 사람은 매일 거의 1,000명 정도입니다. 그들 중에는 교회에 처음 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오랫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사님을 통해 놀라운 권능의 역사들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등이나 척추, 머리, 다리 등의 통증을 치료받고 시력과 청력을 회복하는 등 무수히 치료받은 사례들이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폐결핵, 방광염, 신장염 등을 치료받는 등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페스티벌과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베풀어 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이재록 목사님께 함께하기를 기원하며 큰 권능으로 많은 열매를 거두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이재록 목사님을 통해 마지막 때 큰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기회가 되시면 저희 도시에서도 성회를 열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는 너무 목사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항상 우리의 마음안에 계십니다.
러시아 이젭스크 시에서도 위성을 통한 생방송으로 스크린 성회가 열려 시공간을 초월한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이 넘쳐났다.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 시공을 초월하여 수많은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 ...
...
날짜2003년 11월 20일 목요일
출처
조회수6661
"시력 1급 장애인인 제가 사물을 보게 되었어요"
● 아바리아미 리카띠리나(70세)
저는 1942년부터 시력을 상실하게 된데다가 최근에는 중풍으로 인해 다리까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그러던 중 금번 「러시아 연합대성회」 소식을 듣고 성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성회 둘째 날인 11월 13일, 이재록 목사님의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을 때 강한 불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왼쪽 다리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① 시력이 회복된 해뵈나(12세)
② 백내장을 치료받은 로자 벨리치꼬(66세)
③ 시력이 회복된 니키포로바 율라(18세)
④ 시력이 회복된 막시모바 비에라 비또르브나(66세)
⑤ 시력이 회복된 옐례나 안드례쁘나(79세)
⑥ 시력이 회복된 빅토리아
"태어나면서부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게 되었어요"
● 블라디미르 블라디미토비취(77세)
저는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잘 듣지 못한 채 77년 간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성회 둘째 날인 11월 13일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는가를 들을 수 있었고, 그 다음날인 14일에는 이재록 목사님의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은 후 훨씬 더 잘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① 전혀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게 된 빠꼬따에브 막스(20세)
② 청각장애를 치료받고 듣게 된 블라드 미로브나 이리나(18세)
③ 6년 만에 듣게 되었어요
④ 난청을 치료받았어요
"중증 장애인인 제가 휠체어에서 일어나걷게 되었습니다"
● 알렉 산드르(44세)
저는 어릴 때부터 원인 모를 질병으로 다리가 심하게 꼬여 지난 5년 간 지팡이와 의자에 지탱하여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중 금번 성회에 참석하여 성회 첫날인 11월 12일, 강사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을 때 누군가 저를 붙들고 있는 느낌이 들더니 혼자서도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① 2급 지체장애를 치료받은 알 갈비에르 갈리옐리 할랴도비취(22세)
② 선천성 뇌성마비를 치료받고 휠체어에서 일어나게 된 추리노바 나따리야(32세)
③ 10년 된 다발성 류마티스 관절염을 치료받고 목발을 버린 세르게이(48세)
④ 불완전 하지 마비를 치료받은 안또니나 바실례브나(45세)
⑤ 뇌성마비를 치료받고 걷게 된 까팔(21세)
⑥ 중풍을 치료받은 츄드죠프 스끼야(52세)
⑦ 쇄골 골절을 치료받은 갈리나 니꼴라예브나 라고바(68세)
⑧ 25년 전 다친 추간판 탈출증을 치료받은 쥐치꼬보
"13년 된 유방암을 치료받았어요"
● 레쉐니꼬비 바레리 (51세)
저는 유방암으로 13년 동안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치료를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1월 13일 금번 성회에 참석하여 기도를 받은 후 차츰 고통이 사라지면서 행복과 평안함이 임했습니다. 지금은 몸이 좋아진 것을 느낄 뿐 아니라 몸무게가 늘고 통증도 사라졌습니다.
① 부인병을 치료받은 제로봐 파아나(35세)
② 협심증을 치료받은 마리야 스피라나(65세)
③ AIDS, 간염을 치료받은 뻬르짜르뷔브뾰뜨르 (18세)
④ B형 간염을 치료받은 체네무쉬에레나 (33세)
"12년 간 고통 받던 정신질환을 치료받았어요"
● 막심 겐나지예비치(42세)
저는 12년 전부터 정신이 혼미하고 모든 곳에서 부자연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성회 첫날인 11월 12일, 강사 이재록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힘이 생기고 심리적으로 정상이 된 느낌이 들었으며, 사람들과의 교제가 자유로워지고 어디를 가든지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① 악귀로부터 해방된 성도
② 정신 질환을 치료받은 세로쉬딴 류드미라(48세)
③ 알콜중독을 치료받은 이바노프 알렉산드르 니콜라이 예비치(55세)
④ 마약중독 후유증을 치료받은 비딸리 쌀라비욥(33세)
"스크린 성회 시 기도받고 목발을 버리게 되었어요"
● 나자(17세, 뚤라 시 스크린 성회 참석자
저는 1년 반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병원에서 수술받았으나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목발 없이는 걸을 수가 없는 상황에서 주변의 권유로 스크린 성회에 참석하게 되었지요.
강사 이재록 목사님께서 환자를 위해 기도해 주실 때 그 기도 내용을 저도 반복하여 따라했습니다. 그 순간 다리 자세가 바르게 되었으며 어긋나 있던 뼈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였으며 이제는 목발 없이 걸어다닐 수 있습니다.
1. "TV를 통해 러시아 성회를 시청하던 중 수많은 성도들이 치료받았습니다"
필리핀 그렉 두란떼 총회장
2. "위성을 통한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수많은 성도들이 치료받았습니다"
인도 오웬 로버츠 목사
3. "TV를 통해 러시아 전역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목도했습니다"
이고르 니키틴 목사 (러시아 성회 준비 위원장)
● 아바리아미 리카띠리나(70세)
저는 1942년부터 시력을 상실하게 된데다가 최근에는 중풍으로 인해 다리까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그러던 중 금번 「러시아 연합대성회」 소식을 듣고 성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성회 둘째 날인 11월 13일, 이재록 목사님의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을 때 강한 불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왼쪽 다리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① 시력이 회복된 해뵈나(12세)
② 백내장을 치료받은 로자 벨리치꼬(66세)
③ 시력이 회복된 니키포로바 율라(18세)
④ 시력이 회복된 막시모바 비에라 비또르브나(66세)
⑤ 시력이 회복된 옐례나 안드례쁘나(79세)
⑥ 시력이 회복된 빅토리아
"태어나면서부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게 되었어요"
● 블라디미르 블라디미토비취(77세)
저는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잘 듣지 못한 채 77년 간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성회 둘째 날인 11월 13일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는가를 들을 수 있었고, 그 다음날인 14일에는 이재록 목사님의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은 후 훨씬 더 잘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① 전혀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게 된 빠꼬따에브 막스(20세)
② 청각장애를 치료받고 듣게 된 블라드 미로브나 이리나(18세)
③ 6년 만에 듣게 되었어요
④ 난청을 치료받았어요
"중증 장애인인 제가 휠체어에서 일어나걷게 되었습니다"
● 알렉 산드르(44세)
저는 어릴 때부터 원인 모를 질병으로 다리가 심하게 꼬여 지난 5년 간 지팡이와 의자에 지탱하여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중 금번 성회에 참석하여 성회 첫날인 11월 12일, 강사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을 때 누군가 저를 붙들고 있는 느낌이 들더니 혼자서도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① 2급 지체장애를 치료받은 알 갈비에르 갈리옐리 할랴도비취(22세)
② 선천성 뇌성마비를 치료받고 휠체어에서 일어나게 된 추리노바 나따리야(32세)
③ 10년 된 다발성 류마티스 관절염을 치료받고 목발을 버린 세르게이(48세)
④ 불완전 하지 마비를 치료받은 안또니나 바실례브나(45세)
⑤ 뇌성마비를 치료받고 걷게 된 까팔(21세)
⑥ 중풍을 치료받은 츄드죠프 스끼야(52세)
⑦ 쇄골 골절을 치료받은 갈리나 니꼴라예브나 라고바(68세)
⑧ 25년 전 다친 추간판 탈출증을 치료받은 쥐치꼬보
"13년 된 유방암을 치료받았어요"
● 레쉐니꼬비 바레리 (51세)
저는 유방암으로 13년 동안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치료를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1월 13일 금번 성회에 참석하여 기도를 받은 후 차츰 고통이 사라지면서 행복과 평안함이 임했습니다. 지금은 몸이 좋아진 것을 느낄 뿐 아니라 몸무게가 늘고 통증도 사라졌습니다.
① 부인병을 치료받은 제로봐 파아나(35세)
② 협심증을 치료받은 마리야 스피라나(65세)
③ AIDS, 간염을 치료받은 뻬르짜르뷔브뾰뜨르 (18세)
④ B형 간염을 치료받은 체네무쉬에레나 (33세)
"12년 간 고통 받던 정신질환을 치료받았어요"
● 막심 겐나지예비치(42세)
저는 12년 전부터 정신이 혼미하고 모든 곳에서 부자연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성회 첫날인 11월 12일, 강사 이재록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힘이 생기고 심리적으로 정상이 된 느낌이 들었으며, 사람들과의 교제가 자유로워지고 어디를 가든지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① 악귀로부터 해방된 성도
② 정신 질환을 치료받은 세로쉬딴 류드미라(48세)
③ 알콜중독을 치료받은 이바노프 알렉산드르 니콜라이 예비치(55세)
④ 마약중독 후유증을 치료받은 비딸리 쌀라비욥(33세)
"스크린 성회 시 기도받고 목발을 버리게 되었어요"
● 나자(17세, 뚤라 시 스크린 성회 참석자
저는 1년 반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병원에서 수술받았으나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목발 없이는 걸을 수가 없는 상황에서 주변의 권유로 스크린 성회에 참석하게 되었지요.
강사 이재록 목사님께서 환자를 위해 기도해 주실 때 그 기도 내용을 저도 반복하여 따라했습니다. 그 순간 다리 자세가 바르게 되었으며 어긋나 있던 뼈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였으며 이제는 목발 없이 걸어다닐 수 있습니다.
1. "TV를 통해 러시아 성회를 시청하던 중 수많은 성도들이 치료받았습니다"
필리핀 그렉 두란떼 총회장
2. "위성을 통한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수많은 성도들이 치료받았습니다"
인도 오웬 로버츠 목사
3. "TV를 통해 러시아 전역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목도했습니다"
이고르 니키틴 목사 (러시아 성회 준비 위원장)
공중파 및 케이블 TV를 통해 전세계 144개국에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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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3년 11월 19일 수요일
출처
조회수5709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과 무수한 치료의 역사가 인공위성, 공중파 및 케이블 TV를 통해 전세계 144개국에 전파
금번 러시아 연합 대성회는 12개 위성(IntelSat901, Express6A, PanAm Sat2, PanAmSat8, PanAmSat9, PanAmSat10, AMC1, Galaxy10R, EutelSat, Nahuel1, Agila2, EchoStar3)과 공중파, 케이블 TV, 인터넷 등 방송을 통해 전 세계 144개국에 전파되었다.
금번 대성회는 러시아 현지 OTB와 넵스키 TV 그리고 TKV TV 위성 방송을 통해 성회가 생중계되었고, 미국의 기독 방송인 CTN(Christian Television Network), 푸에르토리코의 CDM과 온두라스의 JBN을 비롯한 중남미 지역 19개 TV 방송망과 호주 TARBS TV, 인도의 JAIN TV, 필리핀의 NBN TV 등 전 세계 TV 방송망을 통해 144개국에 전파되었다.
전 세계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HCJB World Radio와 호주의 103.2 "The heart of Sydney" 라디오에서도 특집으로 본성회를 보도했다.
러시아 주요 언론 및 해외 주요 기독 언론 보도
넵스키 타임즈, 모스크바 콤소믈레츠, 페테르부르그 파발, 페트롭스키 파발, 페테르부르그 시청자, 러시아워, 24시 등 러시아 주요 언론들은 대성회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러시아 전역 화보와 함께 다양하게 보도하였다.
캐나다의 BC Christian News, 필리핀 한인 주간지 「코리아 포스트」 등에서도 성회 소식을 보도하였다.
국내 기독 언론 에서 대서특필
국내에서는 「크리스챤 신문」, 「기독선교신문」, 「크리스챤 가이드」, 「민족 복음화 신문」, 「교회 연합 신문」 등에서 대서특필하였다.
미국 등 해외 인터넷 기독 언론에서도 보도
미국의 방송인 협회 NRB와 인터넷 기독 언론 ANS와 Pastors.com, 그리고 리전트 대학 언론 대학원생들이 제작하는 The Standard Report에서도 성회 소식을 보도하였다. 호주의 pastornet.net과 뉴질랜드의 ACROSS International Ministries, 캐나다의 Canadian Christianity.com 등을 통해서 성회 소식이 전파되었다.
금번 러시아 연합 대성회는 12개 위성(IntelSat901, Express6A, PanAm Sat2, PanAmSat8, PanAmSat9, PanAmSat10, AMC1, Galaxy10R, EutelSat, Nahuel1, Agila2, EchoStar3)과 공중파, 케이블 TV, 인터넷 등 방송을 통해 전 세계 144개국에 전파되었다.
금번 대성회는 러시아 현지 OTB와 넵스키 TV 그리고 TKV TV 위성 방송을 통해 성회가 생중계되었고, 미국의 기독 방송인 CTN(Christian Television Network), 푸에르토리코의 CDM과 온두라스의 JBN을 비롯한 중남미 지역 19개 TV 방송망과 호주 TARBS TV, 인도의 JAIN TV, 필리핀의 NBN TV 등 전 세계 TV 방송망을 통해 144개국에 전파되었다.
전 세계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HCJB World Radio와 호주의 103.2 "The heart of Sydney" 라디오에서도 특집으로 본성회를 보도했다.
러시아 주요 언론 및 해외 주요 기독 언론 보도
넵스키 타임즈, 모스크바 콤소믈레츠, 페테르부르그 파발, 페트롭스키 파발, 페테르부르그 시청자, 러시아워, 24시 등 러시아 주요 언론들은 대성회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러시아 전역 화보와 함께 다양하게 보도하였다.
캐나다의 BC Christian News, 필리핀 한인 주간지 「코리아 포스트」 등에서도 성회 소식을 보도하였다.
국내 기독 언론 에서 대서특필
국내에서는 「크리스챤 신문」, 「기독선교신문」, 「크리스챤 가이드」, 「민족 복음화 신문」, 「교회 연합 신문」 등에서 대서특필하였다.
미국 등 해외 인터넷 기독 언론에서도 보도
미국의 방송인 협회 NRB와 인터넷 기독 언론 ANS와 Pastors.com, 그리고 리전트 대학 언론 대학원생들이 제작하는 The Standard Report에서도 성회 소식을 보도하였다. 호주의 pastornet.net과 뉴질랜드의 ACROSS International Ministries, 캐나다의 Canadian Christianity.com 등을 통해서 성회 소식이 전파되었다.
불같은 성령의 역사로 동토의 나라 러시아를 진동시킨 2003 이재록 목사 초청 러시아 연합대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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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3년 11월 17일 월요일
출처
조회수5843
러시아 기독교 사상 최대 인파, 인공위성을 통해 성회 실황 러시아 전역 및 전 세계 생중계
동토( 凍土) 의 나라 러시아에 성령의 불길이 뜨겁게 타올랐다.
지난 2003년 11월 12일부터 14일까지 러시아 제2의 수도이자 문화 예술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2003 이재록 목사 초청 러시아 연합대성회」를 통해 무수한 치료와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 하나님께 크게 영광돌렸다.
강사 이재록 목사,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임을 담대히 증거
금번 성회를 통해 강사 이재록 목사는 창조주 하나님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임을 러시아 국민들에게 담대히 선포하였다.
생명의 말씀과 권능의 역사를 통해 70년 동안 공산주의로 굳었던 러시아 심령들이 새롭게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재록 목사의 기도를 통해 수많은 환자들이 치료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지식층에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가 전파되었다.
한국 기독문화의 우수성 전 세계에 알려
금번 성회는 국내 최초 찬양 전문 오케스트라인 닛시 오케스트라와 기독문화의 새 장을 열어가고 있는 할렐루야 선교단과 파워 워십팀의 공연이 다채롭게 펼쳐졌는데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환호하며 주 안에서 한가족임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한국 기독문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렸을 뿐만 아니라 민간 외교에도 큰 몫을 감당했다.
기독 의료인 의학 학술 세미나 개최 의의
금번 세미나의 기본 성격은 '성경과 의학의 접목', '기독교 관점에서 의학의 재정립'으로 볼 수 있다.
세미나에 참석한 의사들의 공통적인 입장은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를 공히 인정한다는 것이다.
금번 세미나의 개최 의의는 앞으로도 본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치료된 사례들을 모아 러시아 의학계에 제공함은 물론, 이를 통해 전 세계 의료계에 제공할 수 있는 창구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향후 국제적인 규모의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재록 목사와 러시아 성회시 나타난 권능의 역사 소개
금번 세미나의 주관자이자 러시아의 권위 있는 의사인 베라 박사는 먼저 러시아 연합대성회와 강사 이재록 목사에 대해 소개하였다. 이어 본교회 누가의료인선교회 고문인 의사 여상훈 집사가 성회시에 나타난 치료사례와 본교회에서 이재록 목사의 기도를 받고 치료된 사례들을 의학적인 자료와 함께 소개했다. 또한 이날 전 러시아 우주선 연구원이자 식물학자인 니콜라이 비취 박사를 비롯하여 많은 지식층 인사들과 의료인들은 "순수하게 기도만 받고 치료받은 사례들을 목격하니 신선한 충격"이라며 한결같이 놀라워하였다.
치료 간증 책자 발간, 의료계에 배포 예정
베라 박사는 금번 세미나를 통해 기독 의사협의회를 조직할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또한 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과 이재록 목사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권능의 치료사례들을 검증된 의학 자료와 함께 책자로 발간하여 러시아 전역에 배포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정신과 주임 니콜라이 박사는 자신의 논문에 이러한 치료사례들을 게재할 예정이라고 했다.
① 성회시 환자 기도하는 강사 이재록 목사
② 팔 마비를 치료받은 미얀나 후스비에
③ 퇴행성 척추 관절염을 치료받은 세르게이
④ 시각장애 1급이었으나 볼 수 있게 된 아바리아 미리카 띠리나
⑥ 현지 의사들이 치료받은 사람들의 간증을 직접 접수하는 모습
⑦ 뇌성마비를 치료받아 휠체어에서 일어나 걷게 된 추리노바 나딸리야
⑧ 태어날때부터 청각장애였으나 치료받은 브라디미토비치
⑨ 뇌경색을 치료받아 지팡이 없이 걷게 된 니꼴라예브나
⑩ 뇌성마비를 치료받아 목발 없이 걷게 된 가팔
⑪ 의학 학술세미나를 청취하고 있는 의사들의 모습
⑫ 세미나에서 시력이 회복된 소녀를 소개하고 있는 베라 박사
동토( 凍土) 의 나라 러시아에 성령의 불길이 뜨겁게 타올랐다.
지난 2003년 11월 12일부터 14일까지 러시아 제2의 수도이자 문화 예술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2003 이재록 목사 초청 러시아 연합대성회」를 통해 무수한 치료와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 하나님께 크게 영광돌렸다.
강사 이재록 목사,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임을 담대히 증거
금번 성회를 통해 강사 이재록 목사는 창조주 하나님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임을 러시아 국민들에게 담대히 선포하였다.
생명의 말씀과 권능의 역사를 통해 70년 동안 공산주의로 굳었던 러시아 심령들이 새롭게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재록 목사의 기도를 통해 수많은 환자들이 치료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지식층에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가 전파되었다.
한국 기독문화의 우수성 전 세계에 알려
금번 성회는 국내 최초 찬양 전문 오케스트라인 닛시 오케스트라와 기독문화의 새 장을 열어가고 있는 할렐루야 선교단과 파워 워십팀의 공연이 다채롭게 펼쳐졌는데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환호하며 주 안에서 한가족임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한국 기독문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렸을 뿐만 아니라 민간 외교에도 큰 몫을 감당했다.
기독 의료인 의학 학술 세미나 개최 의의
금번 세미나의 기본 성격은 '성경과 의학의 접목', '기독교 관점에서 의학의 재정립'으로 볼 수 있다.
세미나에 참석한 의사들의 공통적인 입장은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를 공히 인정한다는 것이다.
금번 세미나의 개최 의의는 앞으로도 본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치료된 사례들을 모아 러시아 의학계에 제공함은 물론, 이를 통해 전 세계 의료계에 제공할 수 있는 창구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향후 국제적인 규모의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재록 목사와 러시아 성회시 나타난 권능의 역사 소개
금번 세미나의 주관자이자 러시아의 권위 있는 의사인 베라 박사는 먼저 러시아 연합대성회와 강사 이재록 목사에 대해 소개하였다. 이어 본교회 누가의료인선교회 고문인 의사 여상훈 집사가 성회시에 나타난 치료사례와 본교회에서 이재록 목사의 기도를 받고 치료된 사례들을 의학적인 자료와 함께 소개했다. 또한 이날 전 러시아 우주선 연구원이자 식물학자인 니콜라이 비취 박사를 비롯하여 많은 지식층 인사들과 의료인들은 "순수하게 기도만 받고 치료받은 사례들을 목격하니 신선한 충격"이라며 한결같이 놀라워하였다.
치료 간증 책자 발간, 의료계에 배포 예정
베라 박사는 금번 세미나를 통해 기독 의사협의회를 조직할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또한 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과 이재록 목사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권능의 치료사례들을 검증된 의학 자료와 함께 책자로 발간하여 러시아 전역에 배포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정신과 주임 니콜라이 박사는 자신의 논문에 이러한 치료사례들을 게재할 예정이라고 했다.
① 성회시 환자 기도하는 강사 이재록 목사
② 팔 마비를 치료받은 미얀나 후스비에
③ 퇴행성 척추 관절염을 치료받은 세르게이
④ 시각장애 1급이었으나 볼 수 있게 된 아바리아 미리카 띠리나
⑥ 현지 의사들이 치료받은 사람들의 간증을 직접 접수하는 모습
⑦ 뇌성마비를 치료받아 휠체어에서 일어나 걷게 된 추리노바 나딸리야
⑧ 태어날때부터 청각장애였으나 치료받은 브라디미토비치
⑨ 뇌경색을 치료받아 지팡이 없이 걷게 된 니꼴라예브나
⑩ 뇌성마비를 치료받아 목발 없이 걷게 된 가팔
⑪ 의학 학술세미나를 청취하고 있는 의사들의 모습
⑫ 세미나에서 시력이 회복된 소녀를 소개하고 있는 베라 박사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 불같은 성령의 역사가 러시아와 전 세계에 가득하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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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3년 11월 14일 금요일
출처
조회수9009
현재 러시아의 기독교계에서는 금번 성회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오는 11월 12일(수)부터 14일(금)까지 러시아 교회 협의회(ACCR, 회장: 이고르 니키틴 목사) 주최 「2003 이재록 목사 초청 러시아 연합 대성회」가 상트 페테르부르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개최됨으로 인해 러시아 교계의 영적 부흥은 물론 유럽과 중국과 북한 등 북방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1. 문화와 예술의 긍지가 높은 대륙적인 나라, 러시아
러시아는 유럽 동부 및 아시아 중북부에 걸쳐 위치한 나라로, 전 세계 영토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광활한 영토를 소유한 나라이다. 면적이 1,708만Km2 (한반도의 78배, 미국의 1.8배)이고 국토 동서 양극 지역간 시차만 해도 총 11시간이나 된다.
인구는 약 1억 4,445만 명(2001년 현재)으로서 러시아인(83%), 타타르인(4%), 우크라이나인(3%) 기타 100여 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러시아의 기후는 대륙성 기후로 모스크바 겨울 평균 기온 영하 10도, 여름 평균 기온 영상 17도 정도이며, 1인당 GDP는 2,145달러(2001년)로서 우리나라의 약 4분의 1 수준이다.
우리나라에도 익히 알려진 차이코프스키를 비롯해 각 분야별로 예술적인 거장을 배출한 나라로 명성이 높으며 문학, 고전음악, 발레 등 문화와 예술의 긍지가 대단히 높은 나라로서, 크렘믈린 궁은 세계적인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2. 구 소련의 붕괴로 다시 태어난 러시아의 종교 현황
구소련 공산 정권 하에서는 종교가 억압되었지만 1991년 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자유의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활발한 종교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종교는 러시아 정교이며, 이슬람교는 중앙아시아 지방의 제1의 종교인데 러시아 내에는 타타르인(人)을 비롯한 일부 소수집단이 신봉하고 있다.
천 년이 넘는 러시아 정교의 역사는 러시아인의 마음 속에 종교 이상의 사상적 차원의 개념으로 자리잡혀 있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인의 50%는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이지만 종교를 선택하라면 러시아 정교라고 말한다. 나머지 50%의 종교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인 중 러시아 정교 65%, 이슬람교 10%, 카톨릭 8%, 개신교 6%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이슬람교가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종교이며, 카톨릭은 러시아 정교의 영향으로 그리 많이 분포되어 있지는 않으나 꾸준히 신도를 보유하고 있다.
개신교는 공산 치하 시절 지하교회로 면면히 유지해 오다가 개혁 후 지상으로 올라와 지금은 급속히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가고 있으며 침례교와 오순절 교단이 주류를 이룬다.
3. 이재록 목사 초청 러시아 연합 대성회의 개최 배경
러시아는 988년에 비잔틴으로부터 기독교, 즉 동방정교(그리스 정교)를 수용해 국교로 정한 후, 타타르의 지배와 1917년 볼세비키혁명 등의 파란곡절을 겪으면서도 1천 년 이상의 오랜 기독교 역사를 안고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1991년 구소련 붕괴 이후, 독립국가 탄생과 자본주의 등 체제 전환에 따른 정신적 공허감을 겪으며 영적 각성 부흥이 절실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작년 10월에 개최된 「2002 이재록 목사 초청 인도 연합 대성회」시 러시아 교회협의회 총회장 이고르 니키틴 목사와 부총회장 안드레이 볼챠코프 목사, 그리고 TKV 보리스 크릴로프 프로듀서가 성회에 참석하여 이재록 목사를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의 역사에 큰 은혜를 받아 금번 성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러시아 교회 협의회 산하에는 러시아 전역에 약 300여 개의 교회가 있는데 성공적인 성회 개최를 위해 혼연일체가 되어 홍보해 온 결과, 러시아 성회는 개최되기 전부터 언론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4. 성회 개최지인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그'
1. 성회가 개최될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그 올림픽 스타디움
2. 성회를 알리는 포스터
3. 이삭성당
1. 예카테리나 궁전
2. 피의 구원 사원
3. 에르미타쥬 박물관
바실리 성당(왼쪽)과 크렘믈린 궁(오른쪽)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가 유럽에서 가장 아시아적인 도시라면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러시아에서 가장 유럽적인 도시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럽 도시들과 항공편으로 이어져 있기도 하며 유럽의 관문으로 자리잡고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성 베드로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이 길 양편에 즐비해 있는 모습은 모스크바를 능가한다. 역사적으로 1917년 2월 혁명과 10월 혁명의 현장으로,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독일군의 극심한 포위공격을 끝까지 버텨낸 곳으로 유명하며, 건축적인 면에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조화로운 도시의 하나로 명성이 높다.
무엇보다 제정 러시아 시대 200여 년간 수도였던 상트 페테르부르그 시는 약 500만 인구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찬란한 문화유적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 중 하나이다. 그러나 70여 년간 사회주의 체제로 말미암아 기독교 신앙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은 신앙회복과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과 마지막 때의 섭리를 이루시기 위하여 유럽 복음화와 북방선교의 관문인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2003 이재록 목사 초청 러시아 연합 대성회」를 개최하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5. 대통령을 비롯해 언론의 관심을 받는 러시아 연합 대성회
1. 푸틴 러시아 대통령
2. 쉬따레프 상트 페테르부르그 부지사
3. 테이무라즈 라미슈빌리 주한 러시아 대사
금번 성회는 상트 페테르부르그 창건 300주년 기념 공식 행사로 등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결재를 직접 득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쉬따레프 상트 페테르부르그 부지사는 "창건 300주년을 맞는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귀중한 선물이 될 연합 대성회를 기대한다."고 말한 바 있으며, 테이무라즈 라미슈빌리 주한 러시아 대사도 본교회에 보내온 성회 관련 축하 메시지를 통해 "금번 성회는 양국의 우호 증진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러시아 방송사와 CTC, 상트 페테르부르그 방송사를 포함한 총 7개의 채널에서 성회 개최의 소식을 담은 광고가 나오고 있으며, 본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를 통한 권능의 역사를 담은 영상물이 NBN 채널과 OTB 채널을 통해 방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라디오, 기독 신문, 잡지, 시내 주요 게시판 등을 통해서 성회가 활발하게 전해지고 있다.
6. 러시아 연합 대성회 개최의의와 향후 선교 방향
「2003 이재록 목사 초청 러시아 연합 대성회」가 열리는 올림픽 스타디움은 유럽 전체에서 2,3위로 꼽힐 정도의 큰 규모로 약 2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국내 최초의 찬양 전문 오케스트라인 「닛시 오케스트라」와 우간다, 일본, 파키스탄, 케냐, 필리핀, 온두라스, 인도 대성회에서 공연한 바 있는 세계적 찬양팀 「할렐루야선교단」, 그리고 힘 있는 무용과 율동으로 기독 문화의 새 장을 열어 가고 있는 「파워워십팀」의 수준 높은 공연이 펼쳐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강사 이재록 목사의 간증 수기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가 러시아어 판으로 발간되어 판매됨으로 러시아 전역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지식층과 상류층이 대거 참석하게 될 금번 성회는 62개국을 커버하는 Express 6A와 PanAmSat2, PanAmSat9, IntelSat 904 등 4개 위성을 통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한국어 등 6개 국어로 생중계될 예정이며, 위성을 통해 생중계되는 성회 실황을 수신하여 러시아 5개 지역과 독일, 이스라엘에서 스크린 성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또한 금번 러시아 연합 대성회는 러시아 전역은 물론, 주변국가와 유럽 전역에 전파되어 향후 독일에서 대성회가 열릴 예정이며, 인근 국가인 중국에도 이 소식이 전해져 북방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오는 11월 12일(수)부터 14일(금)까지 러시아 교회 협의회(ACCR, 회장: 이고르 니키틴 목사) 주최 「2003 이재록 목사 초청 러시아 연합 대성회」가 상트 페테르부르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개최됨으로 인해 러시아 교계의 영적 부흥은 물론 유럽과 중국과 북한 등 북방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1. 문화와 예술의 긍지가 높은 대륙적인 나라, 러시아
러시아는 유럽 동부 및 아시아 중북부에 걸쳐 위치한 나라로, 전 세계 영토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광활한 영토를 소유한 나라이다. 면적이 1,708만Km2 (한반도의 78배, 미국의 1.8배)이고 국토 동서 양극 지역간 시차만 해도 총 11시간이나 된다.
인구는 약 1억 4,445만 명(2001년 현재)으로서 러시아인(83%), 타타르인(4%), 우크라이나인(3%) 기타 100여 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러시아의 기후는 대륙성 기후로 모스크바 겨울 평균 기온 영하 10도, 여름 평균 기온 영상 17도 정도이며, 1인당 GDP는 2,145달러(2001년)로서 우리나라의 약 4분의 1 수준이다.
우리나라에도 익히 알려진 차이코프스키를 비롯해 각 분야별로 예술적인 거장을 배출한 나라로 명성이 높으며 문학, 고전음악, 발레 등 문화와 예술의 긍지가 대단히 높은 나라로서, 크렘믈린 궁은 세계적인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2. 구 소련의 붕괴로 다시 태어난 러시아의 종교 현황
구소련 공산 정권 하에서는 종교가 억압되었지만 1991년 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자유의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활발한 종교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종교는 러시아 정교이며, 이슬람교는 중앙아시아 지방의 제1의 종교인데 러시아 내에는 타타르인(人)을 비롯한 일부 소수집단이 신봉하고 있다.
천 년이 넘는 러시아 정교의 역사는 러시아인의 마음 속에 종교 이상의 사상적 차원의 개념으로 자리잡혀 있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인의 50%는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이지만 종교를 선택하라면 러시아 정교라고 말한다. 나머지 50%의 종교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인 중 러시아 정교 65%, 이슬람교 10%, 카톨릭 8%, 개신교 6%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이슬람교가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종교이며, 카톨릭은 러시아 정교의 영향으로 그리 많이 분포되어 있지는 않으나 꾸준히 신도를 보유하고 있다.
개신교는 공산 치하 시절 지하교회로 면면히 유지해 오다가 개혁 후 지상으로 올라와 지금은 급속히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가고 있으며 침례교와 오순절 교단이 주류를 이룬다.
3. 이재록 목사 초청 러시아 연합 대성회의 개최 배경
러시아는 988년에 비잔틴으로부터 기독교, 즉 동방정교(그리스 정교)를 수용해 국교로 정한 후, 타타르의 지배와 1917년 볼세비키혁명 등의 파란곡절을 겪으면서도 1천 년 이상의 오랜 기독교 역사를 안고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1991년 구소련 붕괴 이후, 독립국가 탄생과 자본주의 등 체제 전환에 따른 정신적 공허감을 겪으며 영적 각성 부흥이 절실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작년 10월에 개최된 「2002 이재록 목사 초청 인도 연합 대성회」시 러시아 교회협의회 총회장 이고르 니키틴 목사와 부총회장 안드레이 볼챠코프 목사, 그리고 TKV 보리스 크릴로프 프로듀서가 성회에 참석하여 이재록 목사를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의 역사에 큰 은혜를 받아 금번 성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러시아 교회 협의회 산하에는 러시아 전역에 약 300여 개의 교회가 있는데 성공적인 성회 개최를 위해 혼연일체가 되어 홍보해 온 결과, 러시아 성회는 개최되기 전부터 언론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4. 성회 개최지인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그'
1. 성회가 개최될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그 올림픽 스타디움
2. 성회를 알리는 포스터
3. 이삭성당
1. 예카테리나 궁전
2. 피의 구원 사원
3. 에르미타쥬 박물관
바실리 성당(왼쪽)과 크렘믈린 궁(오른쪽)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가 유럽에서 가장 아시아적인 도시라면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러시아에서 가장 유럽적인 도시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럽 도시들과 항공편으로 이어져 있기도 하며 유럽의 관문으로 자리잡고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성 베드로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이 길 양편에 즐비해 있는 모습은 모스크바를 능가한다. 역사적으로 1917년 2월 혁명과 10월 혁명의 현장으로,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독일군의 극심한 포위공격을 끝까지 버텨낸 곳으로 유명하며, 건축적인 면에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조화로운 도시의 하나로 명성이 높다.
무엇보다 제정 러시아 시대 200여 년간 수도였던 상트 페테르부르그 시는 약 500만 인구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찬란한 문화유적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 중 하나이다. 그러나 70여 년간 사회주의 체제로 말미암아 기독교 신앙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은 신앙회복과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과 마지막 때의 섭리를 이루시기 위하여 유럽 복음화와 북방선교의 관문인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2003 이재록 목사 초청 러시아 연합 대성회」를 개최하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5. 대통령을 비롯해 언론의 관심을 받는 러시아 연합 대성회
1. 푸틴 러시아 대통령
2. 쉬따레프 상트 페테르부르그 부지사
3. 테이무라즈 라미슈빌리 주한 러시아 대사
금번 성회는 상트 페테르부르그 창건 300주년 기념 공식 행사로 등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결재를 직접 득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쉬따레프 상트 페테르부르그 부지사는 "창건 300주년을 맞는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귀중한 선물이 될 연합 대성회를 기대한다."고 말한 바 있으며, 테이무라즈 라미슈빌리 주한 러시아 대사도 본교회에 보내온 성회 관련 축하 메시지를 통해 "금번 성회는 양국의 우호 증진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러시아 방송사와 CTC, 상트 페테르부르그 방송사를 포함한 총 7개의 채널에서 성회 개최의 소식을 담은 광고가 나오고 있으며, 본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를 통한 권능의 역사를 담은 영상물이 NBN 채널과 OTB 채널을 통해 방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라디오, 기독 신문, 잡지, 시내 주요 게시판 등을 통해서 성회가 활발하게 전해지고 있다.
6. 러시아 연합 대성회 개최의의와 향후 선교 방향
「2003 이재록 목사 초청 러시아 연합 대성회」가 열리는 올림픽 스타디움은 유럽 전체에서 2,3위로 꼽힐 정도의 큰 규모로 약 2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국내 최초의 찬양 전문 오케스트라인 「닛시 오케스트라」와 우간다, 일본, 파키스탄, 케냐, 필리핀, 온두라스, 인도 대성회에서 공연한 바 있는 세계적 찬양팀 「할렐루야선교단」, 그리고 힘 있는 무용과 율동으로 기독 문화의 새 장을 열어 가고 있는 「파워워십팀」의 수준 높은 공연이 펼쳐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강사 이재록 목사의 간증 수기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가 러시아어 판으로 발간되어 판매됨으로 러시아 전역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지식층과 상류층이 대거 참석하게 될 금번 성회는 62개국을 커버하는 Express 6A와 PanAmSat2, PanAmSat9, IntelSat 904 등 4개 위성을 통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한국어 등 6개 국어로 생중계될 예정이며, 위성을 통해 생중계되는 성회 실황을 수신하여 러시아 5개 지역과 독일, 이스라엘에서 스크린 성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또한 금번 러시아 연합 대성회는 러시아 전역은 물론, 주변국가와 유럽 전역에 전파되어 향후 독일에서 대성회가 열릴 예정이며, 인근 국가인 중국에도 이 소식이 전해져 북방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국영방송 『이재록 목사』 설교 송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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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0년 2월 3일 목요일
출처
조회수9467
지난 2월 5일(토)부터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국영방송을 통해 본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의 설교가 매주 토요일 오후 10시부터 30분간 「만민의 시간」이라는 프로명으로 정기 방송되고 있다. 금번 방송은 북방선교 전문 라디오 방송인「국제복음방송」(AM1503 KHz)의 요청으로 이루어 진 것으로, 가청 지역으로는 러시아 사할린 등 연해주 지역, 중국 연변과 북한 전 지역 등이며 가청 한인(韓人) 동포만 해도 5,000-8,0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어 북방선교에 큰 역할을 감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복음방송」(IBRA-KOREA)은 스웨덴에 본사를 둔 국제방송협회((IBRA)의 한국지사이며, 국제방송협회는 50개 언어로 100여 개국에서 방송 선교를 하고 있는 권위있는 단체이다.